작은 아이디어가 지역을 바꾼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1년 04월 01일(목) 13:05
전)전남도행정부지사/행정학박사 배용태
토끼는 온순하면서도 지혜와 꾀가 많은 영민한 동물로 알려져 있다. 민족 구전소설인 ‘토생전’에 묘사된 토끼는 자라의 꼬임에 빠져 자기 간을 용왕의 병을 고치는 약으로 제공하고 죽임을 당할 뻔했다가 재치를 발휘해 위기를 탈출한다.

또한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는 사자성어가 상징하는 토끼는 평소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3개의 굴을 파놓고 위험을 슬기롭게 피해 목숨을 보존한다는 지혜많은 동물이다. 세계와 경쟁하는 지방시대에, 지방이 자기개성을 지키면서 남다른 지역발전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토끼와 같은 반짝 반짝 빛나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어려운 여건과 환경을 극복하고 지역의 비교우위 경쟁력을 찾아 이를 발전의 계기로 승화시킨 지역발전 사례, 즉 작은 새로운 아이디어 하나가 지역주민과 지역에 큰 결실이 된 사례들은 열악한 우리 지역 발전에 필요한 훌륭한 교과서이자 지침서이다. 우리는 그런 사례들을 주변에서 종종 듣고 보고 있다.

사례① 강풍을 기회로 만든 ‘합격사과’
1991년 가을 강풍을 동반한 태풍으로 일본의 최대 사과 주산지인 아오모리현의 사과 90% 이상이 떨어졌다. 대부분의 과수농민은 넋을 잃고 실의에 빠졌지만 이때 절망하지 않고 남들과 전혀 다른 역발상으로 재기를 노리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강풍에 떨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10%의 사과를 떨어지지 않는 ‘합격사과’라는 이름으로 수험생들에게 팔아 보기로 했다.
이 엉뚱한 시도는 입시를 앞둔 수험생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일반사과보다 열배 이상 비싼데도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이곳 농민들은 태풍으로 인한 손실을 만회하고 더 많은 수익을 거두게 됐다.

사례② 이화여대 정문이 촬영명소가 된 까닭
최근 이화여자대학교 정문 앞은 중국 관광객, 특히 여성 관광객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필수 코스가 됐다. 여기에서 사진을 찍으면 시집도 잘 가고 돈도 잘 번다는 공공연한 믿음이 그 이유이다. 중국 관광객을 안내하는 가이드들이 이화(梨花)라는 발음이 중국어의 ‘리화’라는 발음과 비슷한데다 ‘리’는 이익을 얻는다는 의미에 ‘화’는 돈을 번다는 뜻의 동사라는 데 착안했다.
이화여대가 ‘한국에서 공부 잘하는 여학생이 들어가는 대학, 한국에서 일등 신부감이 다니는 대학’이라고 사설을 곁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입소문이 났고 중국인의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었다. 하루 평균 200~300명의 중국인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간다. 이런 이야깃거리 하나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주변상권에는 예상치 못한 호황을 누리게 해주고 있는 것이다.

사례③ 고로케 마을의 물레방아 소바집
일본 이와테현의 구즈마키마치 지구의 고로케 마을에는 성황리에 운영되는 ‘물레방아 소바집’이 있다. 마을 물레방아를 이용해 지역 토산물인 소바를 만들고 마을 어머니들 사이에 대대로 이어 내려온 소바면 뽑는 기술로 만든 음식을 제공하는 전통 산골마을 식당이다.
이 마을 어머니들은 100여 년 전부터 손으로 소바면을 뽑는 기술을 대대로 가족으로부터 전수받았다. 면 뽑는 기술은 백화점에 초대되어 시범을 보일 정도로 유명했으나 상품화되지 못하고 사장돼 있었다. 이를 아쉽게 여긴 지자체 직원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소바와 소바면 뽑는 기술을 활용해 지역을 활성화할 방법을 연구했다. ‘고로케 어머니’를 발족하고 직원으로 일할 어머니를 모았으며 낡은 민가를 개조해 소바집을 오픈했다. 지역에 묻힌 자원과 기술을 상용화하여 산골마을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사례④ 스페인 대표 문화관광 도시 빌바오
빌바오는 도시재생사업을 성공시킨 스페인의 대표 도시다. 철강산업 도시였던 빌바오가 문화관광 도시로 변모할 수 있었던 것은 도심재생사업 덕분이다. 도시재생사업의 리딩프로젝트는 건축비는 물론 25년간 운영비를 제공하는 조건의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였다.

정치권과 대다수 시민들의 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빌바오시 당국은 정치적 이해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오로지 도시 장래를 생각하며 소신과 용기를 갖고 추진했다. 그 결과 1997년 준공 이후 구겐하임 미술관은 연간 130만명의 관광객이 몰려오는 관광의 명소가 됐다.


한국에서 지역과 지방행정이 처한 현실과 여건은 상당히 어렵고 힘들다. 특히 지방재정의 경우 열악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총 조세수입 중 중앙과 지방간 세입‧세출의 비중이 지방자치 실시 이후에도 변함이 없어 2할 자치(국가와 지방간 세입 비중 세입 8:2, 세출 4:6)에 그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자립도는 평균 50%선에 머물러 있으며 농촌 군의 경우는 대부분 10~20% 정도에 불과하다. 지방세로 공무원의 인건비를 해결하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약 46%에 달한다. 재정규모는 확대되고 있으나 이전재원 중심의 세입구조, 가용재원의 부족 등으로 지방행정은 만성적인 어려움에 처해있다.

무한경쟁이 펼쳐지는 세계화 지방화 시대다. 현재의 어려운 지역여건을 극복하고 조금이라도 지역경제와 공동체에 활력을 불어넣을 방법은 무엇일까? 지역발전의 새 패러다임은 지역의 적극적이고 독자적인 창의성과 노력, 다른 곳과 차별화된 독특한 아이디어와 자산을 필요로 한다.

지역발전 전략 중 장소판촉(place marketing) 전략이 있다. 지역만의 고유한 자산을 상품으로 개발하여 기업이나 관광객 거주자 등을 끌어들이는 전략이다. 반짝이는 작은 아이디어가 개인은 물론 지역과 나라를 먹여 살리는 시대가 됐다. 특히 수도권에 비해 발전이 뒤진 지방의 경우 공무원이나 민간인의 좋은 아이디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배용태 교수

세한대학교 석좌교수
더불어민주당 전남도당 고문

제27회 행정고시 합격, 행정학 박사
고대법대, 서울대 행정대학원 졸업
5.18 민주 유공자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영암 부군수·목포 시장권한대행·광양부시장
행안부 자치경찰 추진단장
대통령소속 지방분권지원단장
더불어민주당 중앙당정책위 부의장
더불어민주당 중앙당교육연수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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