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의 죽음, 국가의 역할, 인간 본성 철학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1년 04월 04일(일) 20:48
김충열 교수
조선대 출강. 정치학박사



인간이 얼마나 괴물 같은 존재인가! 이 얼마나 새롭고 얼마나 괴물 같고, 혼란스럽고, 모순되고, 천재적인 존재인가!

만물의 판단자이면서도 진흙 속에 있는 어리석은 벌레이고 진리를 간직한 자이면서도, 불확실함의 오류의 시궁창과 같고, 우주의 영광이면서도 우주의 쓰레기 같은 존재가 아닌가?


<블래즈 파스칼 Pensées 164, 1658년 6월 초판에>


(팡세의 글을 서두에 쓴 것은 정인이 부모가 아동학대 처벌 강화 국민청원을 독려했고 EBS 방송에 출연하여 입양의 소중함의 일상을 보여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인이를 학대, 사망케한 이중성에 파스칼의 글을 인용함.)



1. 죽음의 상처


‘인간은 자연 가운데 가장 연약한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고 파스칼은 주장했다. 기독교적 사상을 기초한 파스칼이 인간의 이중성을 이렇게 참혹하게 비판했던 사실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 것같다. 세계적 스타인 BTS의 최고의 노래인 칼 융의 페르소나(Persona), 인간의 가면에 세계의 젊은이들이 열광하고 있으니까요. 이 땅에서 고구마 줄기처럼 계속되고 있는 학폭과 아동 폭력이 대부분 합법적 가정이라는 사적 부분에서 일어나지만 이 참혹한 현실 앞에서 법의 윤리, 최소한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하였는가? 그 질문이 나의 내면에 유령처럼 배회를 계속하고 있다. 누군가의 사소함으로 한 송이 꽃을 짓밟은 것은 전체의 꽃을 죽이는 행위요, 한 송이 꽃을 환하게 피우는 행위는 세계의 꽃을 피우는 세계일화(世界日花)입니다. 코로나가 계속되면서 온 우주가 인다라망(因陀羅網)으로 마치 하나는 전체에게 전체는 하나라는 촘촘한 구슬에 그물망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화엄사상을 사유해 정인이를 회상해 본다.

우리에게 과거의 사건을 기억하는 능력과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이 있지만 이 모두는 현재의 과업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 주어진 것이다. 미래의 삶은 믿을 수 없고 현재야말로 우리가 속한 전부이니 전부인 현재의 문제 해결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 왜냐하면 삶은 오직 현재에만 있고 현재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톨스토이의 잠언은 언제나 필연의 생존 조건이다. 정인이 사건은 지난 3월 17일 서울남부지원에서 심리가 열렸다. 정인이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다. 유사한 아동학대 사건이 우리 사회에 계속 발생하고 있기에 진행 중이고, 피해자들에 대한 처벌이 확정되지 않았기에 진행 중이다.


난 고백한다..
2020년 10월 13일 이후 생후 16개월의 삐뚤빼뚤 거리며 내게 다가올 것 같은 정인이가 양무모 학대로 주검이 된 사건에 대해 모두가 분노할 때 나는 가능한 한 이 일에 대해서 모른 채 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내가 사랑하는 어린 딸아이를 잃어 본 서글픈 비애가 내 심연에 배태되어 있어 슬픔의 공포로부터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동학대 사건을 비롯해 정인이 사건을 다루는 언론 보도를 의도적으로 보지 않았고 이 사건이 한국을 알리는(?) 세계적 핫이슈가 되고 중국 엄마들은 1억 명이 SNS를 통해 아픔과 분노의 메시지를 전했다고 했지만 나는 그것을 피해 다녔다. 모네의 ‘수련’ 수채화로 그린 듯 예쁜 정인이. 반달처럼 환하게 웃는 정인이가 금빛으로 그린 금시조가 되어 하늘에 별이 되어 내 곁에 살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난 참혹하게 알고 있기에..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었는지.. 캄캄하고 두려운 공포 속에서 숨이 끊어져 갔는지... 양모 정 씨, 양부 안 씨가 우리가 일상에서 보는 존경받는 인물의 아들, 딸이라는 것을 안다고 한들 의미가 없어 보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불안, 허무, 고독의 삼각편대의 민둥산에 포위되어 있다. 우리 미래의 중력의 꿈인 세월호의 아이들부터 구하지 못한, 수많은 목숨들을 떠올리다 지친 나머지 차라리 외면하는 게 낫다고 여기는 나는 자기보존만을 우선하는 꼰대 어른인지도 모른다. 나를 비롯한 이기적인 일부 인텔리겐차들이 멀리 보는 통찰은 부족하고 자기반성의 성찰은 없으며 365코너의 현찰만 쫓는데 이것을 최고의 선(summun bonum)으로 위장한 채 군림하는 세상에서는 쉽게 바뀌지 않음을 알기에 외면하고 싶었다. 하지만 때로는 김용균의 어미처럼 자신의 몸을 불살라 등신불같은 같은 낮은 사랑의 실행, 관심, 분노가 또 다른 아이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에서 작은 소명 의식의 분열의 틈이 없는 몰아의 결기를 느낀다. 정인은 성모 보석같은 사람이다. 아무 저항할 수 없는 여린 아이가 악마에 의해 무자비하게 주검이 되었기에 내 가슴에 남는다. 오직 벌거벗은 생명만이 진정한 모태가 되어 정치적으로 승화될 수 있다(아리스토텔레스, 정치학, p.245)는 나의 스승의 충고에 정인에 대한 잔잔한 심상의 포로가 된 채 또박또박 한 자씩 글을 써본다.

정인이 다닌 유치원 교사가 증언을 했다. 정인이를 처음 보았을 때 쾌활하고 예쁜 아이였다. 그런 정인이가 시간이 지나면서 피부가 검어지고 체중은 볏단처럼 가벼워졌다고...
그런 정인이 학대 의심 신고를 3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차량에 홀로 방치되고 쇄골 부위가 실금이 가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도 수사는 종결되었다. 또 정인이 입양을 담당했던 홀트아동복지회 역시 4개월 동안 아동학대 의심 정황을 인지했음에도 행정절차를 진행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폭력을 행사한 양모 정 씨는 심리분석 결과 거짓말의 반응이 발견되었는데도 싸이코패스 진단으로 반성을 하기보다는 형량을 줄이려는 노력의 형태가 우리를 매우 불편하게 한다.


이러한 아동학대 가해 발생 원인은 크게 사회학습이론과 자아통제이론이 있다고 한다. 사회학습이론은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서 어떻게 폭력에 대한 생각을 학습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또 모든 학대 가해자들은 자신을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고 가해자들의 낮은 자아 통제력은 어렸을 때 부모의 훈육 과정에서 결정된다. 정인이 가해자 양모 정 씨와 양부 안 씨가 어떠한 양육 환경에서 야뉴스적 훈육 받으며 성장했는지 살펴봐야 할 이유라고 하겠다. 우리의 미래가 오롯이 담겨있는 한 아이가 국가기관을 대변하는 경찰 수사 과정에서 아동 폭력의 암묵적 묵인이라는 목적 없는 공허한 합목적성(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중 개념)으로 표현하면 너무 과격한가? 경찰과 홀트 아동복지회의 단순한 실수라면... 당연시되는 관례의 묵인하에 우리 강한 영혼의 허탈감과 분노를 우리는 어떻게 평정시킬 것인가? 친엄마가 생존을 위해 떠난 후 홀로 남겨진 정인은 엄마 옷깃에 떨어진 장미향의 채취를 찾아 칭얼대며 회색빛 도시에서 홀로 잠들었을 것이다. 이런 경계의 지평선(eventhorijan)에 서 있는 내가 아동학대의 위협 앞에 고통의 기억을 언제까지 늘 소환해야 하는 오늘의 현실에 유효한 생동감을 잃어버렸다.

대한민국. 국가. 국가는 그동안 무엇을 하였는가 묻는다...
겉 포장만 몇 겹으로 포장한 선물처럼 펀드 멘탈이 너무 약하게 꾸며진 내면은 허접한 상품처럼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생활이 된지 오래이다. 이젠 불편해도 한국사회의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현실적으로 성장의 뒤편에 불평등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것은 돈이 종교가 된 시대의 국가에서는 평등에 대한 열망이 인간적 삶이 얼마나 허망하게 내동댕이쳐 맷돌에 갈려가는지 의미한다. 이젠 우리는 솔직하게 독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사실이 곧 진실이라는 베이컨의 잠언이 나열되는 우리의 민낯이 그것을 반증하게 한다.

OECD(선진경제개발협력기구) 국가 중에서 가장 빠른 고령사회로 진입하는 국가에서 대한민국은 2020년 기준 세계 저출산 1위 국가(0.84%), 청년 청소년 자살률 1위 국가, 결핵 사망률 1위 국가, 여성 자살률 최고 1위 국가, 산업재해 사망률 1위 국가, 노인 빈곤률 1위 국가, 1인당 라면 소비율 세계 1위, 청소년 행복지수 꼴등 국가, 경제 불평등 1위 국가(미국과 공동 1위), 세계입양수출 상위국가(인도에게 1위 국가 빼앗김)¹⁾ 가장 신체적으로 건강한(여성의 난자가 영롱한 상태)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이의 소중한 생명마저도 지켜내지 못한 우리의 일상이다. 스티브 잡스라는 미혼모 조앤 심슨이 낳은 아이 하나가 만든 기업(애플 시가 총액 세계 1위, 2200조... 한국 모든 기업 시가 총액 2135조 정도) 이 세계를 쥐락펴락하는 오늘의 현실. 우리의 미래를 도둑맞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스티브 잡스가 세상의 혁신의 아이콘이 되어 세상을 구원하고 있는 현실에 우린 깊은 반성과 겸손이 필요하다 하겠다.(세계에서 정치인, 공무원이 실리콘밸리를 제일 많이 방문한 나라 1위, 그분들의 열정에도 혁신은 안됨.) 전국 보육원의 아이들 중 만 원도 후원받지 못하는 아이가 절반이 넘는 냉혹한 현실. 한강의 기적, 반도체 생산 최상위 세계 무역대국을 이룬 국가에 살고 있다. 그러나 단 한번도 이 땅에 사랑과 자비의 틸엔스토로피 스피리트가(philamthropy benevolent spirit) 실현 못 한지 오래이다. 그들은 남의 빵이 얼마나 쓰고 남이 사다리 오르내림이 얼마나 힘든지를 너 스스로 시험하라. 만물의 성스러움은 사랑에 의해 움직인다는 신곡의 경구는 잊은 채 독약 같은 희망만 노래하고 있는 성장 낙관주의자들은 과연 누구인가? 아동이 행복하지 않은 위험사회에서 출산 생각 없다는 30대 가임 여성의 고백에서... 그 아이의 탄생이 어찌 그 여성만의 일이며, 국가는 그동안 어떤 정책에 정당성을 부여해 왔는가? 출산율을 증가시키겠다고 매년 수십조씩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고 홍콩, 싱가포르, 마카오, 대만보다 더 출산율이 낮은 것은 국가의 정책이 잘못된 것이다. 여성이 아이를 가져도 국가와 사회가 보살피고 돕는 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2. 국가의 울타리


아동보호를 정책으로 상정하는 근대국가는 1684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형성됐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경제의 초석은 아담 스미스이다. 그는 1776년 쓰여진 ‘국부론’에서 국가의 기본 의무는 물론 사회 약자들 보호에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스미스의 사상을 이어받아 자유주의 사상을 완성 시킨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은 1869년 <여성의 예속>에서 힘주어 국가의 역할을 분명히 쓰고 있다. 국가는 생산과 분배의 영역을 모두 시장에 맡기는 것보다는 부의 분배 영역은 국가가 개입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다. 특히 여성의 평등, 어린이의 교육, 빈민들 구제, 사회적 병폐 문제는 국가가 나서 법률로 변경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일반 가정에서 교육의 역할은 부모의 책임이나 그러나 부모가 금전적 능력이 부족하다면 국가는 우수 교원을 선발하여 모범 모형 학교 운영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밀은 강조하고 있다. 18세기에 스미스가 <국부론>, <도덕감정론>에서 주장했던 국가의 정의적 책무가 19세기 말에 밀의 주장이 21세기 우리 국가, 공직자들에게 윤리적 판단, 양심, 자유의지가 얼마나 보편적 가치로 승화되어 디테일하게 실천되고 있는가? 묻고 싶어진다.

정치 경제학에서는 벤담 이후 주류 학자들은 성경책을 읽고자 하는 사람의 욕망, 포르노그래피를 보고자 하는 사람의 열망, 에, 샤, 루 명품 핸드백을 사고자 하는 사람과 그 돈으로 석 달 동안 가족 생활비로 쓰겠다는 사람들의 욕망에는 위계질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사회 병리적인 징후를 관찰하면서 인간 위계질서의 서열을 만들어 낸다. 그 대표적인 학자가 칼 멩거(Carl Menger, 1840~1921)이다. 그가 죽고 난 다음 출간한 <국민경제학의 기본 원리,1923>를 보면 인간 행위의 내면의 실천성을 강조하면서 욕망서열을 분명히 나누고 있다. 그는 가장 절박한 욕구를 요구한다. 첫 번째 욕구는 호흡에 대한 욕구이다. 어떤 생명체든 호흡에 대한 욕구는 보장되어야 한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 하나 쓰는 것도 이렇게 불편한데 천안에서 여행용 가방 안에 9살 아이를 넣고 테이프로 가방의 공기 유입을 막은 것은 호흡의 권리를 박탈한 것이다. 두 번째 욕구는 배설에 대한 욕구이다. 정인이 사건 등 모든 아동학대 사건에서 용변처리로 학대가 시작된 것이다. 세 번째 욕구는 식욕의 욕구이다. 한 인간으로서 국민으로서 존엄의 식사가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칼 멩거의 주장이다. 칼 멩거의 주장은 오늘날에도 절대 선의 이성적 대안이다. 유효하다. 눈만 뜨면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는 요즈음 토마스 홉스의 명 귀절인 만인을 위한, 만인의 투쟁(BELLUM OMNIUM CONTRA OMNES) 사회가 오늘날에도 계속되는가 착각이 든다. 아이들이 곳곳에서 풍요의 시대에 가난의 쇠사슬로 묶인 차별의 현실 앞에 국민의 기본권리인 아동이 행복할 수 있는 UN 아동권리헌장이 지켜지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현실에 국가가 선제적으로 아동폭력을 예방 못하고 옛날 동동구루무 장사 뒷북치는 격의 정책은 우리를 실망케 한다.


요즈음 뉴스를 보면 세상엔 모르는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남보다 공부를 좀 더 했다고 내심 우쭐했는데 갑자기 나 자신이 왜소해지고 민망해진다. 공익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이기심과 사적 이익을 담보로 신도시 개발 정보로 맹지나 그린벨트에 투자해 이익을 보고 있다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들도 농촌의 미래를 걱정해서인지 일반 국민의 15배의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농사를 지을 땅이라고 거짓으로 신고해도 별 탈이 없다는 것을 지금까지 난 알지 못했다. 땅에 버드나무를 그리도 촘촘히 심어 보상을 받는다는 소식이 너무 신기하기만 하다. 그런 정보를 가지고 돈을 버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위쪽 지방의 공직자들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국가를 대신하는 사람들이 공공의 외투만 입고 오직 살아남으려는 의지, 재화를 번식하려는 의지로 충만되어 있는 위정자들의 공공 선(Common Good)을 어떻게 확장할 것인가? 국가를 어떻게 더 정의롭게(Justice) 할 것인가에 대한 명료한 해답은 있다. 미국과 한 판의 씨름을 하고 있는 중국정치에서 배우면 된다. 모택동은 붓대, 총대, 전대를 장악하고 서방의 위협으로부터 자국의 이익을 지켜내고 오늘날 시진핑은 철저한 부패 척결 운동과 정풍운동으로 중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는 현실이 왜 그리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또, 정치학의 아버지로 명명되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을 무기로 삼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또박또박 정독으로 두 번을 읽으면 정확한 해결책을 발견할 수 있다. 한 국가의 영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4가지 선결 조건 도덕성, 시민의식, 공정사회, 공공의 선을 애국가처럼 실천하면 된다는 사실을... 제발 어려울 때는 고전에 기대어 진리의 파편이라도 담아 소중히 간직해 길을 찾으시라.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가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격언이 있지 않던가. 프리드리히 헤겔은 <법철학요강> 서문에서 명료하고 간결하게 이렇게 쓰고 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녁에야 날개를 편다.²⁾ 이 정부는 한 번 남아 있는 황혼의 마지막 9회 말 찬스마저도 놓치게 되면 어디에선가 구슬픈 연가 ‘봄날은 간다’가 들리고 저음이 낮게 깔리며 매력 넘치는 문주란의 ‘동숙의 노래’ 끝자락이 바다의 요정 사이렌의 노래처럼 들리면 그때는 늦어버릴 것이다.

3. 인간 본성의 발자국


우리가 기대한 만큼 국가의 역할이 부응하지 못한 오늘의 현실에도 인류사에 폭력이 감소하고 평화가 증대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있다. 퓰리처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고 빌 게이츠가 가장 존중하는 스티븐 핑거(Steven Pinker, 1954~)는 그의 저서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The Better Angels of Our Nature)³⁾에서 인류는 역사 속에서 어떻게 폭력과 싸워왔는가? 어떻게 하면 평화를 확보할 것인가? 라는 대의 명제에 정확한 대안과 해답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철학, 심리학, 정치학, 경제학, 문화인류학에 근거해서 과학적 토대 위에 단초를 제공하여 우리를 설득하고 있다.⁴⁾ 책 내용을 가장 간략히 찰지게 요약하면 인간사회 발전과정에서 폭력의 원인을 도구적 폭력, 가학적 폭력, 인간의 우세경쟁 이데올로기가 인간 역사에 폭력성을 증대시키는 요인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류사에서 가장 많은 인구가 폭력에 희생당한 것은 1. 2차 세계대전이 아니라 안록산의 난(세계 인구의 1/6이 희생됨)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인류사에서 평화가 증대되고 폭력이 감소된 것은 한국전쟁을 정점으로 지금 현재 시기라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폭력 감소의 요인으로 1) 인간 본연이 타인의 불행에 감정이입을 하는 이타심에 주목하면서 2) 사회적 법규범의 확장으로 도덕성이 확장되고, 3) 인간에게 인쇄술의 발달로 교육의 기회가 증대되고, 4) 모든 인간에게 이성이 확장되고, 5) 인간에게서 자기통제와 여성성의 확장이 긴 평화의 시기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결정적 요인이라고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스티븐 핑거의 주장에 동조하는 학자의 책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는데 그는 뤼트허르 브레흐만(Rutger Bregman, 1988~)이다. 스티븐 핑거가 세계적인 지성인이라면 브레흐만은 유럽에서 가장 주목받는 현재의 지성인이다. 그는 2021년 신간 <휴먼 카인드(Human Kind)>에서 인간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지만 협력과 보살핌으로 고난을 극복해 나갔다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이기심과 지금 세계의 신자유주의 경제, 정치, 사회교육 시스템 토대가 악이다. 인간은 애초에 선했는데 문명사회가 타락하게 했다는 루소의 호소 대신 이 책에서는 만민의 투쟁을 외치는 홉스의 구호를 내재화시키고 있다. 휴먼 카인드는 인간의 폭력, 살인 등 잔인한 범죄는 후천적 교육의 결과물이며 악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것은 판매 부수와 시청률을 높이려는 엘로우 저널리즘의 언론과 국가 억압 장치로 대변되는 권력을 배후로 꼽는다. 그 권력의 우리 안의 선함을 의심케 하고, 그 권력은 악을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억압 기관을 정당화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책 끝자락에서 호모사피엔스가 지금껏 살아남은 것에 대해 이타심, 사회적 모방, 연민, 협력이 얼마나 빨리 전염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학자들이 인간의 선함을 강조하고 있지만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1975)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의 개념으로 정반대 편에서 논리를 펴고 있다. 역사에서 악행은 오늘날에도 반 사회성 인격장애자들이 아니라 국가에 순응하며 자신의 행동을 정상이라고 여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악의 근원이라고 그녀는 주장하고 있다. “악이란 무엇인가”를 평생동안 연구과제로 질문한 그녀는 말하기의 무능성, 생각의 무능성, 타인의 입장에서 사유하기의 무능성이 멈출 때 개인도 국가도 악의 평범성에 노출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기독교에서는 인간의 약함과 악함으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것은 인간 본성의 타락이라 했지만, 예수는 그 죄를 모두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그녀는 악은 단지 악덕 행위, 실제 악(the real evil)이 인간에게는 공포이므로 타락과 결함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실제 악을 막기 위해서는 우리는 악을 멈추지 않고 계속 그것을 경계, 사유해야 한다고 그의 마지막 저서인 책임과 판단(Responsibility and Judgment)에서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실제 악이 내재화되어 있는 현실 속에서 우리 사회의 절대 약자인 아동에 대한 학대는 국가가 나서 보호해야 함은 지상명령이다. 그녀의 돌직구는 벌교 꼬막요리처럼 씹을수록 깊은 재미가 있는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에 관한 훌륭한 정책이다.


우리 사회의 아동학대의 사건을 예방하기 위한 실천적 대안으로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첫째, 전국 경찰서, 공공기관에 아동학대 전문가를 육성하여 전진 배치해야 한다.(현재는 광역시도 전문 학대 전문가가 부족한 실정) 둘째, 학대 아동을 전담 수용할 수 있는 국공립 아동 트라우마 어린이집을 모든 지역에 설치할 수 있도록 예산을 증액한다.(학대아동 보호시설은 전국 70곳에 700명 보호만 할 수 있는 실정, 아동학대 신고는 2020년 기준 3만 건) 셋째, 전국 학교, 약국, 편의점, 대형마트와 협력해 아동학대 신고 포상제를 도입해야 한다. 넷째, 베이비 박스를 도시 언덕배기에, 민간에게 맡기지 말고 소방서, 병원, 관공서, 준 국가기관과 협력하는 미국의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아동 발견 5시간 후 부모가 찾지 않으면 국가가 재정, 제도, 정신적 지원을 하고 있음. 10개 주에서) 다섯째, 한국 사회의 저변에 학폭 역시 충분한 조사를 통해서 학폭이 확인되면 피해자 중심주의(Victim-centered opproach)에 입각해서 처벌은 엄중하게 자신의 잘못은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여야 한다.

4. 데메테르(대지의 생명을 키우는 여신)의 미덕


나는 앞글에서 정인의 죽음에 대한 부당함, 국가의 역할, 폭력의 감소와 평화에 대한 학자들의 주장을 열거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나열된 주장보다 더 훨씬 나를 감동의 휘몰이로 몰아넣은 것은 정인이 재판이 열리는 날이면 국가가 아닌 뜻있는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남부지원 앞에서 이 땅에 제2, 3의 정인이를 막겠다고 새벽의 전령이 되어 횃불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페미니즘의 바이블인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 1921~2006)의 <여성의 신비 The Feminine Mystique>라는 심오한 책의 내용을 알지도 못한 채 단지 그 여성들이 자기 심장의 어미 젖가슴으로 아이를 안아주지 못하고 보살피지 못한 통한을 토로하며 동물적 본능으로 탁월한 실천자일 뿐이다. 그래서 괴테는 보살핌의 여성성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고 단언했나 보다.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묻고픈 것이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축적된 사람은 누구인가? 사자처럼 용맹한 우두머리의 삶인가? 낙타처럼 묵묵히 자신의 짐을 지고 성실하게 사는 삶인가? 여우처럼 잽싸게 자가 이익을 추구하는 삶인가?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준 것을 먼저 계산하지 않는 삶인가? 과연 누가 가장 힘이 있고, 축적된 자인가? 또다시 묻는다. 사자도 낙타도 여우도 최종 목적은 자기의 후손을 위하여 사냥과 무거운 짐, 이기적인 꾀로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주역의 박괘편의 석과불식(碩果不食)의 동양적 텍스트와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가언명령(hypothotisch imperative)과 정언명령(kategorischer imperative)의 뜻인 서양 텍스트를 비교하면 더 이해가 빠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이념에도 물들지 않는 어린 마음의 순수성은 수행자의 깨달음의 마지막 단계인 ‘유아행’(幼兒行)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에 위아래가 없는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 anuttarā-samyak-saṃbodhi)의 중도 철학이다. 한국의 대표 선승인 경허 스님이 8세 동자승을 부처님처럼 극진히 모셨고 홀연히 산사를 떠나 함경도 갑산에서 자신의 신분을 철저히 숨긴 채 자신의 이름이 높아짐을 스스로 경계하며 평민의 서당 훈장으로 열반에 들었다. 또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은 어린이와 소꿉놀이, 공기놀이,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늘 하셨다고 한다. 가장 쉽게 설명하면 어린아이의 계산하지 않는 순수성의 절대가치의 함수가 어른의 이익에 함몰된 가변의 함수를 제압한다. 이 ‘유아행’(幼兒行)이 가장 실천하기 어려운 부처로 가는 경계임을 안다면 누구든 이미 아라한의 깨달음의 초입에서 묘각의 이치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5. 무늬의 여운


나는 선택된 가난 속에서도 의기소침하지 않는 자유를 배웠다. 하지만 날마다 과부하가 걸린 듯한 삶, 결핍 속에서도 작은 알곡들을 챙겨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모든 사람이 행복을 꿈꾸지만 자신만 행복하다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다’라는 ‘페스트’의 구절을 기억하는 난 가부장적 원정주의(Patermalisom)자인 줄도 모르겠다... 경제적 불평등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망명지처럼 생경하게 그려지는지 다른 이는 모른다. 그 생경한 그림들이 나 자신을 부조리한 현실은 망보게 하고 대결하게 하는지 나는 잘 알고 있다. 성인의 마음이란 고정 불변된 마음은 없고 늘 백성의 마음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고 노자의 가르침을 체득했기에 내가 통섭의 정신이 더 확고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체득된 삶 속에서 정인은 몇 겁의 생을 지나온 물살 무늬처럼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에게 머무름(In Andern besicich selbstsien 헤겔 법철학 199절)의 얼굴이 된 지 오래라서 나의 실핏줄까지 희게 만드는 것 같다.

환상을 초월한 자신의 불안전한 자아의 에로스가 투영된 소중한 심미안의 어린 벗을 난 잃었다. 인간에게 죽음은 또 다른 새로운 창조이며 기억되는 죽음은 누군가에 의해서 언젠가는 평등점을 이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간들은 죽음을 거부하며 죽음을 늦추기 위해 자신의 재화까지도 기꺼이 내놓는다. 하지만 정인의 죽음은 어른 같지 않아서 이 세상을 넘어 지구촌 모두가 애도하는 꼬마 거인이 되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둡고 긴 터널. 폐허의 추운 겨울 같은 브람스 교향곡 5번이 들릴 것 같은 시각 난 예언적 묵시록의 전율의 시대를 보내고 있는 환영의 유형지의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시대 깨달음의 선지자는 입으로 글로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 삶과 죽음의 경계를 아는 자들이기에 그들의 진실한 독백은 많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 헤르메스(Hermas)가 삶과 죽음의 강 하데스(Hades)를 건너 주피터의 메시지를 전달하듯 정인이의 짧은 생과 그 죽음은 또래 친구를 이 땅에서 안전하게 만드는, 경찰서장이 직접 총괄 책임지는 학대정책계를 모든 경찰서에 신설하게 한 거대한 프로메테우스가 되지 않았는가. 예수께서도 ‘친구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은 내 모든 것을 내어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정인의 죽음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듯한 잠언이 쓰여 있다. 어떤 사람의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이의 죽음은 새 깃털보다 훨씬 가볍다고 하였다. 혹중우태산(或重于泰山) 혹경우홍모(或輕于鴻毛)


마지막으로 나는 간절히 원한다.
이승의 공덕으로 다음 생에서 정인과 함께 1년만 보낼 수 있다면 안나푸르나(지상의 식량이라는 뜻) 봉우리가 보이는 산속에서 같이 살고픈 몽상가적 상상을 의지해본다. 이념, 종교, 국가도 모른 채 옥수수, 감자로 끼니를 때우고 다래 줄기로 만든 설피를 만들어 신고 너, 나 새하얀 눈송이 내리면 눈 속에서 뒹구는 강아지처럼 놀고 싶다. 은백의 설원은 천상의 화원이 되고 천지가 백설이 된 그곳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자크라캉의 시공의 초월한 4차원의 세상이 될 수도 있겠지. 문명의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사하라 사막 가운데 작은 오아시스가 있는 곳에 모여 사는 원시인들과 함께 정인과 나, 하루에 2시간만 열매를 따고 모두 저녁이면 모래언덕에 앉아 은하수 율동의 별들은 보면서... 환하게 웃고 별들의 자전과 공전 속에서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이 다시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⁵⁾

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약자인 씨앗의 나침판의 글을 쓰면서 부분적으로 무당의 광기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을 떠올렸다. 아기천사를 잃은 허탈감과 편린에 극단의 희열과 상상 속에서 복수를 넘나드는 통제불능의 감정 기복마저도 느꼈다. 우리 시대의 대표 문인 중 고대 영어까지 완벽하게 해석해내는 나의 절친이 선운사라는 시에서 꽃이 피는 것은 힘들어도 지는 것은 잠깐이더군.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이라고 읊조렸었다. 시인 정호승은 꽃이 진다고 서러워 마라. 꽃이 져도 난 널 잊지 않는다 했다. 인간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이미 태어났다면 빨리 죽어야 한다고 니체는 비극의 탄생이라는 책에서 인간에게 최상의 선택이 무엇인가의 질문에 실레노스를 통해서 말하고 있다. 정인아, 하늘의 별이 되렴. 내가 늘 고개 들어 별을 보며 눈빛으로 말을 건넬게. 삶이란 영원 속에 찰나가 있고 찰나 속에 영원히 깃들어 있는 법...

이젠 내 영혼을 달래기 위해서도 쟈크 오펜 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자클린 뒤 포레, 정인처럼 가장 슬픈 바이올리니스트)을 듣고, 고난에 지친 자들에게 들려주고프다. 피아졸라의 백미 ‘천사의 죽음’(La Muerte Del Angel)과 ‘망각’(oblivion)을 들어야겠다. 망각이란 새로운 기억을 덧씌운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니까. ‘신이시여! 왜 정인이를 버리시나요’가 잊혀질 때쯤 우리 시대에 정인이 같은 아이를 순간 잃어 본 아비로서, 구구절절 슬픔이 배어있는 마르크스의 삶의 일기들과 가사 내용이 너무 흡사한 에릭 클랩튼의 ‘티어스 인 해븐’(Tears in Heaven)을 들어봐야겠다.⁶⁾ 사물놀이에 휘몰이장단이 있고 오페라에는 피날레가 있는 것처럼 좋은 노래의 한 구절은 우리네 삶을 고양시키고 근사하게 기품일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러나 반대의 저급한 노래들에 우리의 삶에 포위될 때 볼품없이 쪼그라들게 된다. 오늘 난 대낮에 등불을 들고 찾아봐야겠다. 아름다운 몰입의 경지로 우리의 삶을 살 맛나게 꾸며줄 예술적 표효를 하는 가수가 있는지...


2021. 4. 6.
金井 亡名堂에서 片雲野鶴 書




1) OECD 선진경제 협력 개발기구 GDP 국내 총 생산량의 증대의 성장보다는 존 롤즈의 공리주의 참뜻을 실현시켜야 한다. 기회는 평등하고 결과는 공정해야 한다는 뜻. (OECD O:opportunity E: equality C:consecuence D:democracy 이다.
2) 로마신화에 지혜의 여신 미레르바가 황혼녁에 산책을 즐기는데 항상 자신의 부엉이를 데리고 다녔다. 헤겔은 인간이 생각 없이 살다가 실기를 하고 하루가 저문 황혼녁에 부산해진다는 의미를 절대 이성의 간지로도 표현한다. 국가의 법의 기반은 정신적인 것이며 의지이면서도 더욱이 자유로운 의지이다. “자유야말로 법 실체의 규정이며 또한 정신 자체로부터 산출된 제2의 자연이다”라고 멋진 말을 남긴다. 예나에서 1806년 탈고한 <정신현상학> 서문에 예나에 나폴레옹 군대가 입성하는 것을 보고 난 유럽의 말 탄 정신을 봤노라고라고 쓰고 있다. 그는 죽음에 즈음하여 내 제자들 중 내 사상을 제대로 이해한 자가 없다고 넋두리를 했다. 헤겔의 정신현상학, 루소의 불평등기원,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은 유럽 변화의 격동기에 철학의 근원을 제공했기에 인류 유산이라는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3) 마크 저커버그가 중국인 아내가 첫 딸 맥스를 낳았다. 그때 스티븐 핑거의 우리 본성은 선한 천사를 일주일만 읽고 영감을 받아 딸이 성장해 행복하고 빈곤없는 안전한 세상을 위해 페이스북 지분 99% 50조 기부를 결정한다. 이러한 스티븐 핑거의 책은 1800페이지의 방대하고 심오하고 인내력이 필요해서 불면증 환자에게 특효의 책이 될 수 있었다.
4) 세계를 지배해본 경험에 있는 국가에서는 고고학 문화인류학이 대학에서 제일 존중되고 그 다음 선진국가에서는 인문학, 철학이 그 다음 레벨의 국가에서는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전공자들이 존중 받는다.
5) 레비 스트로스(Levi strauss(1908-2009))는 우리 시대의 최고의 문화 인류학자이다. 프랑스 최상의 피아니스트였으며 그는 사하라 사막, 아마존강 유역에서 원시인들도 그들 나름대로 민주적 방식의 생활을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서구문명의 눈으로 보기에 원시인의 삶을 보는 습관도 야만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서구지식의 옹졸함을 비토했다. 무엇이 과연 발전, 진보, 문명, 문화인지는 어느 경계의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그의 저서<야생적 사고>에서 강조하고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슬픈열대>가 있다.
6) 마르크스의 노동의 관찰 개념은 칸트 헤겔처럼 인간의 가능성과 능동성을 강조하는 독일 관념론 철학의 연장선상에 있다. 마르크스는 자본론 1권만 쓰고 의도적으로 더 이상 쓰지 않았다. 토지, 소유, 국가, 세계무역은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가 2,3권은 편집하여 발표함. 마르크스가 최악의 악필이어서 그의 글씨를 부인 예니와 엥겔스만 읽을 수 있었기에 엥겔스는 맨체스터 방직공장 운영을 중단한 채..그 유작 탈고에 심혈을 쏟았다. 그래서 막스주의는 막스주의와 무관하다. 그는 독일 프로이센의 총리의 딸인 예니가 구걸을 하여 아이를 생존시켰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영국에서 수배 중이어서 절대 가난 속에서 오직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에드가즈, 에드워드가이 딸 애발린 프란세스 3명을 1850~1855년 사이에 굶주림으로 잃었다. 그 과정에서 쓴 마르크스의 아이들에 대한 일기와 사상은 성실하고 정직 할 수 밖에 없었다.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40년간 사상사를 강의한 스테드먼 존스의 <마르크스 위대함과 환상>이라는 책을 보세요. 깊이가 있어서 반대 논리가 쉽지 않을 것이다.




김충열 교수

그랜맘칠드런 재단
조선대 출강. 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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