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어리석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1년 04월 22일(목) 13: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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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최선은 최선일수록 최악이다.
아이들이 커 갈수록 스스로 하지 않아 불안하고, 야단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관계도 나빠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심정을 아이들에게 야단치기보다는 하소연을 했다.
나 자신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리석다.
실망스럽고 서운하다. 아이들이 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다. 내 기대치가 너무 높다. 내가 지금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10년 후에도 옳을 것인가? 틀려 버리면 어떻게 책임져야 하는가?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하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되는가? 그럴지는 모르지만 잘못돼 버린 그 아이들의 인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중2, 고1인 아이들에게 큰 목표를 세우라고 주문한다. 아이들은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라 내가 무서워서, 내가 좋다고 말한 것을 기준으로 목표를 잡는다. 그 계획을 거의 지키지 못한다. 아니, 하기 싫을 것이다. 스스로와의 약속을 잘 지켜야 한다고 늘 말하면서 계획대로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야단친다. 그것은 아이들이 정한 목표가 아니라 내가 하라고 해서 정한 목표라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면서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실망하고 서운해한다.
아이들이 커갈수록 더 불안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어렵다. 그들에게 좋아하는 것, 잘하는 것을 목표로 정하라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뭘 잘하는지도 모른다.
편한 것을 좋아하고 어렵고 힘든 것을 싫어한다. 편한 것을 잘한다고 행복할 수 있는가? 쉬울지 모르지만 행복하다고 할 수 있는가? 솔직히 그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아직 모를 수 있다. 어렵고 힘든 일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닥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비하기도 어렵다.
내가 정한 목표를 아이들이 달성하지 못할까 봐 걱정한다. 아이들은 야단 맞을까 봐 불안해하고 스트레스 받는다. 잘하면 나는 기분 좋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은 힘들어한다. 힘들어한다고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더 발전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인내와 끈기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도 안다. 계속 시키면 조금은 좋아질 것이다. 하지만 야단쳐도 크게 나아지지 않을 뿐 아니라, 계속 야단치고 감시하는 것도 내가 힘들어서 못한다.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그냥 두어야 하는가? 아이들이 정말로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마흔여덟이나 된 나도 법과 도덕, 다른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관리가 없으면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스스로 알아서 해라”라고 말하는 것은 아이들이 잘못되었을 때 책임지지 않겠다는 비겁한 말이다. 스스로 못할 것이라는 것을 빤히 아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성격상 나 자신을 용서하지 못할 일이다. 그렇다고 정확한 답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답을 모르는데 가르친다는 것도 무모한 짓이다. 잘못된 답을 가르치는 것은 파멸로 이끄는 것과도 같다. 비약했지만 잘못된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다. 혹시 내가 그러지 않는가 두렵다. 그렇다고 대충 편안한 수준에서 협상하는 것 또한 비겁한 일이다. 책임지지 않아도 될 적당한 선에서 안주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정답이 없다.
훌륭한 답을 만들기 위해 노력을 더 해야 하지만 겁난다. 강하게 하자니 따라올지 장담할 수 없고 알아서 하도록 두자니 잘못될까 봐 두렵다.
지금 내가 이렇게 쓰는 것도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책 <좋은 아빠 훌륭한 아빠> 중에서
영암일보 ya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