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죽 단상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1년 04월 22일(목) 14: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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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동진이의 집 뒤에는 사르르 넘어가는 깔끄막과 함께 옹기종기 논들이 밑으로 내려가며 계단식 터를 마련하였고, 그 중간 위 부분에 가로 세로 30m 정도의 감산 할아버지네 방죽이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내가 처음 헤엄을 배운 곳.
월출산 무내미라는 작은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쫄쫄거리며 이 방죽에 닿는 동쪽 부분은 내 어린 시절이라도 무릎 정도 밖에 차지 않았고,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깊어지긴 했지만 흙으로 쌓아놓은 제방 부분도 그 시절 우리들의 목 정도만 잠길 정도였으니, 제일 깊어보았자 1m가 조금 넘는 깊이였을 것이다.
그곳은 우리들의 물놀이 천국이었다.
가을엔 방죽가 수초에서 가끔 날개를 숙이고 쉬고 있는 물잠자리 잡기에, 동네 냇가에서 납작납작한 돌멩이들을 골라 웃옷이 미어지게 보듬고 와, 누가 멀리 누가 물 위로 많이 튀어 오르게 하는 물수제비 놀이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겨울엔 그나마도 물이 쭉 빠진 방죽이 얼면 대나무로 만든 스키와 나무로 만든 썰매를 타고 방죽가를 뱅글뱅글 돌았고. 해가 돋고 점점 시간이 지나면 얼음이 녹아가면서 빠지직빠지직 금이 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겁 많은 애들은 집으로 돌아갔지만, 몇몇은 누가 늦게 빠지나 내기를 하고는 썰매를 몰고 방죽 한가운데로 돌진하곤 했는데, 그 작은 몸무게에도 얼음이 깨지는 소리를 들으며 내려갔다 올라갔다하며 휘어지는 스릴도 우리들에게는 그만이었다.
결국은 모두 얼음물에 빠지고 논 밑에 있는 까끔에 모여 잔솔가리며 싸리나무를 꺾어다가 모닥불을 피워놓고 몸과 옷을 말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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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엔 제방에 앉아 막 물이 오른 삐비를 뽑아 단물을 빨면서 제비꽃을 꺾어 서로의 꽃목에 걸고 탁 잡아당겨 누구의 제비꽃이 강한 가 손목 맞기 내기도 하였고, 개구리가 왕왕 거릴 대면 싸리나무를 꺾어 회초리를 만들어 방죽 주변과 논두렁을 다니며 개구리를 잡곤 햇는데, 싸리나무에 정통으로 맞으면 네 다리를 쫘악 벌리고 바르르 떨고 있는 얼룩무늬 참개구리를 꿰미에 꿰어, 냇가 돌무더기에 간단한 아궁이를 만들고 불을 피워서 개구리 다리를 구워 먹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 방죽에서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은 단연 여름이었다.
해가 중천으로 향하고 매미가 가끔 참나무에서 용쓰며 날개를 떨 때면 온 동네아이들은 거의 그곳에 모여 첨벙거렸다. 바닥이 온통 흙바탕이어서 조금만 출렁여도 흙탕물이 되었으나 누구 하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동동거리며 물싸움을 하는 여자애들.
기세좋게 제방으로 물로 뛰어드는 남자애들.
누가 빨리 헤엄을 잘 치나 내기하는 나이 좀 먹은 녀석들.
물속을 기어 남의 다리를 잡아당겨 빠트리는 녀석.
헤엄에 약해 나무판자를 잡고 물장구만 치는 조그만 애.
그리곤 우리들의 손바닥이 물에 불어 오글오글해질 때면 제방 둑에 앉아 몸을 말리곤 했다.
그때쯤, 흰 머리칼을 휘날리며 감산 할아버지는 작대기를 들고 “요오놈들. 어서 안 나올래?” 하면서 우리들을 쫒아왔다. 그러면 우리들은 자기 옷을 잽싸게 집어 들고 논두렁이나 마을 쪽으로 냅다 도망을 쳤다. 지금 생각하면 흙으로 만든 제방이 우리들 때문에 조금씩 무너지는 것을 염려한 때문이리라.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감산할아버지가 집으로 돌아가는 기색만 보이면 우리들은 어느새 모두 돌아와 다시 첨벙거리고 있었다.
물속에 가만히 있으면 우리들의 부른 때를 콕콕 찍어 먹는 피라미들 때문에 간지러워 손을 휘휘 젓던 기억.
또 그곳은 거머리가 많았다. 우리들이 물 밖으로 나오면 거머리 한두 마리가 몸 어딘가에 꼭 붙어 있곤 했는데, 거머리가 눈이 없어서인지 가끔 남자애들의 불알이나 여자애들의 그곳에도 달라붙어 있었다. 남자애들이야 자신들이 잘도 떼어냈지만 여자애들은 질겁하였는데, 그걸 떼어주는 일도 몇 번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농지정리로 방죽은 네모반듯한 논으로 변했고, 까끔조차도 벌써 논으로 변한지 오래.
현숙아, 내가 네게 붙은 거머리를 떼어준 것 아니? 모르니?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