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가지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1년 05월 20일(목) 11: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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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저 사립문 밖 물푸레나무의 여린 잎에 한 겹 푸른 색 칠을 더하면, 부모님은 마당 앞 밭둑 언저리나 뒷마당 까끔 언저리, 우리 집 초가 추녀 네 귀퉁이에 장독만큼 커다란 구멍을 파셨다. 그리고 그곳에다 남동생 석용이가 빠졌던 측간에서 합수合水를 똥바가지에 퍼서 반 정도 채우고 얼마큼 흙을 덮고 거기에 씨앗을 서너 알씩 심고는 정성을 다해 덮었다. 집 네 귀퉁이에는 대나무를 추녀까지 세워두든지, 추녀 끝에 칡넝쿨을 매달고는 팠던 구멍에다 대나무를 박아 고정을 시켰다.
한 달 후, 그 씨앗들은 햇빛을 따라 부지런히 자라기 시작하여, 밭둑 언저리나 가끔 언저리의 씨앗들은 호박넝쿨이 되었고, 집 네 퀴퉁이 씨앗들은 대나무나 칡넝쿨을 감고 초가지붕으로 올라가 박넝쿨이 되었다.
한 여름, 내 동생들과 가문 배추밭에 물동이나 바가지로 오후 내내 냇가에서 물을 퍼다 주다 서쪽 해가 해무리와 함께 잔등을 넘어가면, 어머니는 평상에다 수제비를 끓여 내오셨다. 수제비를 다 먹을 때쯤 아버지는 오전에 논둑에서 베어온 풀들로 모깃불을 피우셨고, 그때쯤 하늘에 별이 총총 박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월출산 위로 달이 떠올랐다.
그때야 하얀 박꽃은 달빛을 받아 어두운 까끔 소나무 음영을 배경으로 초가집 여기저기서 또 다른 별이 되어 하얗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별들이 시들면 동그란 달의 자식들이 초가지붕을 요람으로 달빛의 젖을 빨며 서서히 성장을 거듭했다.
그리하여 가을이 되면, 십 수 개의 달의 자식들이 옹기종기 지붕에 둘러앉아 조그만 아이부터 커다란 애까지 둥그런 모습으로 하얗게 익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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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서리가 내리고, 그 동안 달빛과 이슬로 익어간 박들이 성장을 멈추고 박넝쿨이 시들면, 어머니는 귀밑머리에 바늘을 꽂고는 몇 번이고 처마 끝에 세워둔 나무사다리를 타고 지붕에 올라가 박에다 바늘을 꽂아보곤 했다.
“요 썩을 놈의 박대가리들이 요로코롬 안 익은 다냐?” 하고 다시 내려오곤 했다.
어머니가 박을 따 가지고 내려오면 아버지는 톱으로 박을 썰어 박 속을 파내고는 박을 솥에다 삶았고, 다른 솥에는 파낸 박속을 삶아서 바가지에 담아내왔다. 어머니는 된장을 퍼와 삶은 박 속과 함께 비벼 우리에게 주었다. 늘 보리밥과 수제비가 대부분이던 저녁이 모처럼 부드럽고 알싸한 만찬이 되어, 박 때문에 볼볼 끓는 아랫복에 누워 배 터지는 기쁨을 온 식구는 만끽하였던 것이었다.
작은 박은 됫박, 중간 박은 한 끼 박, 큰 박은 뒤주 박, 장을 푸는 장바가지, 똥을 푸는 똥바가지, 물동이에 물바가지, 술독에 술바가지, 오줌싸개 소금바가지, 돼지나 소 우리에 여물바가지, 각종 씨앗을 담아 놓은 씨앗바가지, 부엌에 밥바가지, 펌프 옆에 물마중 바가지, 걸인들의 동냥바가지, 우리가 칼로 모양을 내어 벽에 걸어놓은 얼굴바가지, 어머니가 꿰맨바가지, 옆집에서 제사를 지냈다고 이바지해 온 바가지, 비가 오면 비 가리개, 뒷물 바가지, 이 바가지 저 바가지.
요즘의 인생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꾸지람을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라는 말로 표현하는바, 그 용도를 알며 지껄이는지.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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