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1년 06월 24일(목) 10:28
박석구 시인

바람이 분다. 연鳶이 난다.
솔개가 난다. 연이 난다.
눈발이 날린다. 연이 난다.
내가 난다. 연이 된다.


작수골을 지나 월출산 도갑봉 쪽으로 부는 바람은 어느 땐 매섭게 신경질을 내며, 싸리나무에 달려있는 마른 잎을 훑어 도갑봉 너머로 날려 보낸다.

연들은 이때 심하게 흔들리고 연줄은 피잉 소리를 내며 우리들의 긴장을 머리끝까지 곧추세운다. 얼른 얼레를 풀어보지만, 어떤 연은 심한 날갯짓을 이기지 못하고 실이 팽팽해지는가 싶더니 기어이 툭 끊어지면서, 몸을 놔바러니 상태로 뒤척이더니 흔들흔들거리며 하늘 위로 한없이 오르다, 끝내는 싸리잎사귀만한 크기가 되더니 도갑봉을 넘어가버린다.

그 이별의 연민은 한참동안 멍한 표정으로 연이 사라진 도갑봉 능선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이며 글썽이는 눈물을 떨구는 것으로 헤아릴 수 있다.

[그림=김덕남]

“아버지, 연 만들어 주세요.”

올 겨울 세 번째다.

할머니가 가을 내내 만드신 한 타래를 경윤이 양쪽 팔에 팽팽하게 끼우고, 내가 오전 동안 돌판 위에 놓고 빻은 사금파리 가루를 밀가루 풀에 섞어서 마른걸레에 묻힌 다음, 현숙이에게는 얼레를 감으라 하면서 실에 꼼꼼하게 바른다.

정월 대보름이 돌아온 것이다.

연을 가진 동네아이들은 점심이 끝나고 그 바람의 날카로움으로 유명한 태천봉풍太天峰風이 불기 시작하면, 하나 둘 연을 가지고 마른 밭들이 넓게 펼쳐있는 우리 집 헛간 옆으로 모여든다.

유유자적하게 도갑봉과 주지봉을 빙빙 돌던 솔개 두 마리도 움찔하더니 도갑봉을 넘어가버린다.

눈이 몇 점씩 흩날리기 시작한다.

각자 비장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숨을 고른 아이들은 자신의 연을, 연을 갖지 않은 아이에게 들게 하여 저만큼에서 띄우게 하고 연줄을 잡아당긴다. 십 수 개의 연들이 응곡아제까끔 위로 파르르 떨며 용트름으로 날아오른다.

휘청, 상걸이의 연이었다.

피잉, 재규의 연이었다.

투둑, 경윤이의 연이었다.

오매, 달재의 외마디였다.

연싸움에 진 이 방패연들은 산판山坂을 지나 몸들을 비틀면서, 결국은 작수골 어디론가 제각기 사라졌다.

오, 이제야 처음으로 내 연만이, 오로지 내 연만이, 저 먹먹한 하늘 위에서 옷깃을 펄러이며 우리를 쳐다보고 있구나.

연을 날린 이후 처음이었다.

나는 기쁨의 환성을 지르며 온 밭을 뛰어다니며 연줄을 풀어나갔다. 연줄이 다 풀렸을 때, ‘잘 가라 연아. 그동안 고마웠다’라고 속으로 중얼 거리며 이빨로 연줄을 끊었다.

연은 고고한 자태로 계속 하늘로 치솟더니 기어이 도갑봉을 넘었다.

어릴 때 연날리기는 내 최고의 놀이였습니다. 혼자서도 외롭지 않았고 추위에 콧물이 줄줄 흘러도 춥지도 않았습니다. 연처럼 날고 싶었고, 연을 타고 도갑봉과 주지봉 위를 솔개처럼 날고 싶었습니다. 연을 날리며 꾸었던 꿈은 이 나이에 다 시들어버리고 말았지만. 정월 내보름이 되면 액댐의 풍속으로 연을 날려서 연줄을 끊어 멀리 날려 보냈지요. 그 서운함은 컸지마는 이내 잊어버렸습니다. 잊어가는 것들이 너무 많은 지금에 연만은 내 기억 속에 아직도 또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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