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씨조선은 왜 망했을까? 이민정 xlwldus@naver.com |
| 2021년 07월 22일(목) 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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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7월 17일 조선 건국, 518년이 지난 1910년 8월 29일 경술국치로 조선이 일제에 의해 강제로 병탄 되었다. 망국의 원인과 과정에 대해서 의견이 다양하고 주장도 분분하다.
망국의 싹은 1623년 3윌 12일 북인들에 의해 정권을 빼앗기고 생명의 위험을 느낀, 이서, 신경진, 구굉, 김류, 이귀, 김자점, 최명길 등 서인들이 주도한 쿠데타로 광해군 이흔이 쫓겨나고 군왕의 자질도 부족하고 군왕의 수업을 받지 못한 능양군 이종이 왕위에 오르면서부터다.
1627년 정묘호란과 1635년 병자호란 ‘삼배구고두례’의 삼전도 치욕에 조선 백성 30만이 청나라에 노예로 끌려갔건만 립서비스에 지나지 않는 북벌 운운 망발과 패륜으로 점철된, 조선역사 27명의 군왕 중 최고의 치사한 졸군이 인조다.
맏아들 소현세자가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간 지 7년 만에 귀국하여 아버지를 독대한 2달 후 비명에 갔다.
소현세자는 청나라 북경에 머물던 신부 주문모를 통해 국제정세의 흐름을 간파해 조선의 부강을 위해서는 맹목적인 청나라 비난과 저주가 아닌, 청나라의 새로운 문물을 하루바삐 받아들여 조선을 부강 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인조는 자기보다 훨씬 현실감각이 뛰어나고 영명한 소현세자의 모습에 위기의식을 느낀 나머지 아들을 꾸짖으며 청나라에서 가져온 나침판과 지구의와 벼루를 세자에게 내던지며 결국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 씨는 물론 어린 세손들까지도 무참히 희생의 제물로 삼은 치졸한 철면피였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일 소현세자가 인조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라 그의 이상을 맘껏 펼쳤더라면 조선은 훨씬 튼튼해졌으리라.
이후 조선은 서인들만의 세상이 되어 ‘국혼물실’과 ‘숭용산림’의 맹약속에 골수노론 우암 송시열 일당들이 비변사와 의정부를 장악하여 국가의 요직을 독식해 ‘재조지은’만을 염불하며 망국의 지름길로 질주한다.
다행히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었던 정조 이산이 온갖 역경을 딛고 등극하여 ‘만천명월’을 기치로 국정을 새롭게 개혁하여 회생하는 듯했으나 재위 25년에 49세의 일기로 갑자기 승하해 두 번째 기회를 놓쳤다.
사가들은 정조가 20년만 더 왕위에 있었더라면 개혁은 가속화되어 조선이 일신 되었을 것이라 아쉬워했다.
정조 승하 후 12살짜리 순조 즉위 후 헌종, 철종의 왕권 쇠약으로 안동김씨 60년 세도정치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고 1863년 흥선군과 신정왕후 조대비의 정략 끝에 고종 이명복이 왕이 되어 흥선대원군 이하응이 섭정해 10년간 권력을 잡아 왕권을 강화하며 중흥을 도모했다.
그러나 영남선비 최익현의 마부상소로 흥선군이 10년만에 권력에서 축출된 후 시아버지 이하응과 여우같은 며느리 민비의 권력 싸움으로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흥선대원군이 실각하자 우물 안 개구리식의 좌충우돌 외교에다 술과 커피에 중독되어 오후 3시가 넘어서야 근정전에 출근한 고종의 실정과 외교사절과 그 부인들을 불러 밤이 새도록 파티를 벌인 중전 민 씨의 사치 생활에 후사를 잇기 위해 무당 진령군을 불러 굿당을 차리고 금강산 일만이천봉에 떡 한 섬과 수백 냥의 동전을 걸고 백일기도를 강행하는 등, 마치 박근혜 정권 최순실의 국정농단사건과 흡사한 정국이 연출되어 망해가는 조선에 기름을 부은 것이다.
더욱 가관은 매관매직과 부정부패다. 안동김씨 집권 시절 일반 백성들은 굶어 죽는데 영의정 김좌근의 창고에서 고기 썩는 냄새가 온 동네를 진동했다는 일화를 뛰어넘는 민비를 등에 업은 민 씨 패거리들은 관찰사는 수십만 냥, 고을 사또는 수만 냥에 벼슬자리를 팔아 변방에 사또가 부임도 하기 전에 새 사또가 발령되는 진풍경도 반복되었다. 부임한 벼슬아치는 언제 파면될지 알 수 없어 본전 뽑기에 혈안이 되었으니 죽어나는 건 백성이요. 그 대표가 고부군수 조병갑이다. 이 같은 세태를 꼬집은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은 세간의 유행가였으며, 동학혁명으로 번져 1895년 청일전쟁이 발발, 민비는 외세를 끌어들여 망국을 앞당겼다. 매관매직의 재물은 사치 생활로 탕진된 내탕금 조달과 개인 치부에 쓰였다니 어찌 나라가 지탱할 수 있었겠는가.
망국의 과정중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나열해 보면,
1876년 병자수호조규
1880년 황준헌의 조선책략
1881년 영남만인소
1882년 임오군란
1884년 갑신정변
1894년 우금치 전투
1895년 청일전쟁
1895년 을미사변
1896년 아관파천
1904년 러.왜전쟁
1904년 한.왜협약
1905년 카스라 데프트 밀약
1905년 을사늑약
1907년 정미 7조약
1910년 경술국치의 수순과 과정을 거쳐 조선은 결국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더욱 안타까운 건 조선을 일왕에게 바치고 수십억원 은사금과 작위를 받은 자는 76명이다. 노론 67명, 남인 2명, 북인 7명으로 노론 67명 중 전주 이씨가 13명이나 차지해 할아버지 이성계가 세운 이씨조선을 그 후손들이 왜놈들의 주구가 되어 나라를 팔아먹고 추호도 부끄러움 없이 대대손손 부를 누리며 그 돈으로 유학을 마치고 해방 후 요직에 있었고 지금도 재벌이나 정치가로 큰소리치고 있는 우리 역사와 현실이 참으로 통탄스럽다.
고종의 친형 이재면과 조카 이준용, 순종의 장인 순정왕후 윤씨 생부 해풍부원군 윤택영은 수백억을 받아 은사금 순위 1, 2위를 기록해 더욱 기가 막힌다. 집안이 가난해 이호준의 양자로 간 을사오적 이완용을 매국노라 결코 탓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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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준 시인
금정면 출생
다산학회 회원
영암학회 회윈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한국지역문학회 이사
이민정 xlwldus@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