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할머니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1년 07월 29일(목) 09:58
박석구 시인


달과 할머니



할머니는 여섯의 자식을 두셨다. 큰아버지, 큰고모, 둘째큰아버지, 아버지, 가운데 고모, 막둥이 고모 순이었지만 내가 이것을 인지할 만큼 자랐을 때는 할아버지와 둘째큰아버지는 계시지 않았다. 6·25때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돌아가실 때까지 딱 한 번 내게 들려주시곤 가족사에 대해선 일체 입을 다무셨다.

할머니는 나를 ‘갑’이라고 불렀다. 내가 태어난 해가 바로 할머니의 환갑이었기 때문이다. ‘갑을’ 산 것도 그 당시에는 대단한 삶이었지만 손자까지 태어나서 그 기쁨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던 것 같다. 그만큼 나는 할머니의 사랑을 받고 자랐다.

할머니는 우리 동네에서 그만한 나이의 어르신들 중에 유일하게 한글을 읽고 쓸 수 있는 분이었다. 붓으로 세로쓰기로 쓰인, 끈으로 책갈피를 묶은, 닳고 닳아진 『옥단춘전』이나 『심청전』을 호롱불 아래서 돋보기를 끼고 자분자분하게 읽고 있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겨울이면 따스한 할머니 방에서 할머니가 내 손을 잡고 들려주는 그 책들의 이야기는 더없이 가습 속에 파고들었다.

할머니는 어느 해인가 일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 동그란 차반茶盤에다 먹물을 갈아 반쯤 부은 다음 먹물에 비친 해가 검게 먹어 들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었고, 월식 대는 동쪽으로 난 방문을 열어젖히고 방안에서 손잡이 거울로 달이 이지러지는 광경을 보여주며 검은 개가 달을 삼킨다는 월식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할머니는 내가 군대를 가 첫 휴가를 나올 때가지 사셨다. 석달을 앓아 누우셨는데 앓아눕기 전,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편지를 보냈다. ‘가비야 보고시푸다. 마당에는 달구새끼드리 와따가다 하는데 일하러 가야 하는데 몸이 아푸다. 때리는 사람은 업느냐.’ 이런 내용의 편지였다. 나는 이 편지를 받고 오열했다. 시골에 내려갔을 때는 할머니는 막 숨을 거둔 후였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보지 못한 게 그렇게 가슴이 먹먹할 줄 몰랐다. 그것도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를 찾았다고 어머니가 말했을 때는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할머니의 삶은 한마디로 ‘부지런함’ 그 자체였다. 새벽부터 해가 질 대가지 항상 할머니의 손에는 호미가 들려있었고 저녁을 먹고 난 후에는 베틀에 앉아 밤이 늦도록 베를 자셨다. 모든 밭의 잡초를 매는 것은 할머니 몫이었고 봄에는 누에를 키우고 여름엔 모시를 베었고 가을엔 목화를 따셨다. 늘 물레를 돌리는 할머니의 모습은 일상의 풍경이었다.

그런데 중학교 때 여름방학을 맞아 시골로 내려갔던 어느 날 밤, 내가 잠에 개어 타닥타닥 베틀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할머니 방에 갔을 때, 할머니는 베틀에 앉아 모시 베를 짜다 말고 방문에 비치는 달빛을 보고 있었다.

[그림=김덕남]

할머니가 방문을 열어젖히자 달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인자 베 짜는 일도 그만두어야 할 것 같구나. 손에 힘이 없구나.”

그러면서 할머니는 나를 베틀에 앉게 하고 방문 틀에 주저 앉더니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뭣하러 날 에린 나이에 시집 보냈을까이

서방 쌍판대기 한번 못보고 시집 와

새벽부터 방애찧고 호맹이가 반이나 닳아지게 풀을 매고와서

밤에 베틀에 앉허 북 앞 주둥이가 손꾸락을 때려 피멍이 퍼렇게 들어도

고개가 땅으로 떨어졌어야

고추가 맵다마는 시집살이만 할라디야

낳다 본께 육남맨디

*인공 때 나간 둘째 놈은 아즉까지 소식조차 없고


*인공 :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북(북한)’의 준말. ‘인공 때’라 함은 통상 6·25 동란 때를 가리킴.

느그 할애비는 그 다음 해 첩년 품에 죽어버렸어야

그란디 이십 년 넘게 맛나게 제사밥 차려줘도

꿈에서도 얼굴 한번 안 나타나야

그랬으면 아들들이라도 잘 되게 하믄 존디

놈의 집으로 간 딸들보다 못한다냐

전번에 달을 보는 디야

썩을 놈의 달이야

몸시 베틀에 앉아 있는디야

슬금슬금 뒷문으로 기어들기에 문을 여니까야

확 앵겨온디 이상스리 삭신이 주저앉고

어째 오줌이 마려온지 모르겠드라야

인자 갈 나이도 넘었는디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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