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1)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1년 08월 19일(목) 14:02
금정면 이영주 면장

절대긍정이 기적을 만든다.
아이들에게 동기 부여를 해 줄 것이 없어 고민이다.



딸은 수능이 끝나자마자 대학 원서도 쓰지 않고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며 서울로 올라갔고, 아들도 대학에 가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아빠이고 훌륭한 아빠일까를 항상 고민했었는데 지금까지는 아이들이 잘 자라 줬다. 대학에 가지 않는 아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많은 생각을 했다. 공자 왈 맹자 왈 하는 것보다는 내가 살아왔던 얘기를 해 주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51살의 나, 이영주.

내가 살아온 것을 보면 나도 내가 재미있는 놈이야.

어렸을 때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어. 부모님 고생 엄청나게 시켰다는 얘기지.

몸이 약해서 남들 아픈 것은 전부 다 아프면서 살았고 교통사고로 죽을 뻔했다가 몇 달 만에 살아난 나.

그렇게 아프면서도 남에게 절대로 지기 싫어했던 나.

돈키호테 같은 무모한 정의감을 가졌었던 나. 아마 잃을 것이 없어서 그랬을 거야.

아픈 아들을 돈이 없어 병원에도 못 데리고 가는 어머니께 “엄마, 의사 선생님께서 내일 병원 오라고 한 날이지?”라며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까지도 생존 본능이 강했던 나.

고등학교 때까지 성격이 너무 까다로워 진정으로 친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면 마음을 주지 못했던 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집에 있을 때 학창시절 친했던 그나마 몇 안 되는 친구들에게 배신감을 느끼고는, ‘이건 뭔가 잘못됐다’라고 생각했어.

“친구는 진정으로 친한 사람 한두 명만 있으면 된다”라는 선생님의 말대로 가려 사귄 결과 나는 외톨이가 되어 있었던 거야. 쉽게 말해 ‘스스로 왕따’가 된 거지. 왕따가 된 기분 알지? 외로움 덕분에 많은 고민을 하고 나서 친구에 대한 생각을 재정의했어.

“친한 사람만이 친구가 아니라 내가 아는 사람은 모두가 친구다. 그 사람들이 나를 친구로 생각하지 않더라도 나는 친구로 생각하겠다. 앞으로 남녀노소 불문하고 모든 사람에게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겠다. 그리고 절대로 바라지 않겠다”라고 마음먹었지.

그동안은 내가 해 준 만큼 다른 사람들이 해 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배신감을 느꼈고 친구가 없었던 거야. 그렇게 생각을 바꾸니까 정말 행복하더라? 기대만 하지 않아도 그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

이렇게 나는 다시 태어난 거야.

역경이 사람을 성장시킨다.

‘이 세상의 중심은 나다. 내가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은 어리니까 내가 책임지고, 나보다 나이 많이 먹은 사람들은 늙었으니까 내가 책임져야 한다. 어떤 것도 해내야 하는 나가 돼야 한다’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되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어.

고등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병을 치료하고 있을 때 형님 권유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되었어. 어쩌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는 그 외로움의 고통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거야. 1년간 책을 놓아 버린 상태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는데 거의 대부분 잊어버려서 기억나지 않았어. 학원에 제일 먼저 가서 제일 앞자리에 앉아서 수업시간에 내가 이해가 돼야만 진도가 나갔어. 너무나 간절했기 때문에 많은 학원생들의 원성을 무시할 수 있었던 거야. 간절함의 힘이지.

용돈과 음식을 가지러 시골집에 갔을 때, 짐을 가지고 혼자 가겠다고 몇 번을 말씀드려도 따라오시면서 동네 언덕까지 와서야 몸빼 속주머니에서 꼬깃꼬깃 구겨진 돈 1만 5천 원을 내 손에 꼭 쥐여 주시며

“영주야 미안허다. 이참에는 이놈배끼 준비 못 했다. 일하러 오라는 디가 없드라”라고 하며 눈물을 글썽이시는 어머니.

나는 심장이 터지는 것 같았어. 어려서는 아파서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 이제는….

영암에서 광주 자취방까지 완행버스와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 시간이 2시간 이상 걸리는데 나는 그 시간 동안 피눈물을 삼키며 다짐했어.

‘이번에 떨어지면 나는 죽어야 한다.

우리가 2주 동안 생활하려면 최소 3만 원 정도 필요했지. 시내버스비와 약간의 반찬을 살 수 있는 돈이야.

당시 어머니가 하루 일하고 받는 돈은 3천 원. 어머니는 2주 동안 5일밖에 품팔이를 못 하셨다는 거야. 자식들에게 돈을 줘야 하는데 못 해 주는 어머니의 안타까운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지.

(다음호에 계속)





- 책 <좋은 아빠 훌륭한 아빠> 중에서



영암일보 yailbo@daum.net
이 기사는 영암일보 홈페이지(www.yailbo.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yailbo.com/article.php?aid=1136946443
프린트 시간 : 2026년 09월 27일 00:1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