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2)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1년 08월 26일(목) 17: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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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이렇게 힘들게 하면서까지 내가 공부하는데 이번에 떨어지면 또 1년을 어머니 가슴에 대못을 박는 불효자식이 된다’라고 생각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코피를 흘려 가면서 목숨 걸고 공부를 했어.
아침에 조깅하고 형이 밥을 준비할 때 나는 옥상에서 근력운동을 하고 단전호흡을 했어. 숨 쉬는 것을 2분 이상 참으면 졸도를 하더라? 죽을 각오로 참지 않으면 안 돼. 최근에 해 봤는데 절대로 안 되더라. 죽어도 좋다는 각오로 매일 아침마다 졸도하면서 다짐했지.
나는 어렸을 때 체구도 작고, 항상 아파서 친구들이 얕잡아 봤어. 그러면 싸웠고 대부분 내가 이겼어. 왜냐하면 나는 목숨을 걸고 싸웠기 때문이야.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은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말이다. 목숨을 걸어야 진짜로 최선을 다한다’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렇게 행동했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을 들을 때면 ‘빠져나갈 핑계를 대는구먼?’이라고 생각했어. 최선을 다했다는 말은 자신의 노력이 자신을 감동시켰을 때 쓸 수 있는 말이야.
시험까지 80일 남았는데 1년 넘게 쉬는 동안 거의 다 잊어버렸더라? 학원의 다른 사람들은 정말로 잘하는데 나는 너무 형편없는 거야.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어머니를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니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었어. 계획을 내 방식대로 완벽하게 세웠어. 밥 먹고 화장실 가고 운동하고 버스 타는 모든 자투리 시간에 영어 단어와 그날 배운 것을 핸드북에 메모해서 당일 완전히 기억하겠다고 각오하고 했더니 되더라? 잠자기 전에 그날 요점 정리한 것을 다시 읽고 자면 꿈속에서도 공부했어. 집에서는 영어 3시간, 수학 5시간 이상 하고 암기과목은 토요일과 일요일에 1과목씩 독파했더니 그 방법이 효과가 더 좋았어. 모르는 것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날 알아내고 기억해야 했어. 그렇게 눈 깜빡이는 시간도 아까워하며 공부했는데도 내 실력이 너무 부족하더라. 군대도 안 갔다 와서 가점도 하나도 없어서 당연히 떨어졌을 거라 생각하고 합격자 명단을 봤는데…
[이영주 합격]
내 이름이 있는 거야. 머리는 좋지 않지만 목숨 걸고 공부했기 때문에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공무원 시험을 한 번에 합격한 거야. 내 이름을 보는 순간 기쁘기보다는 정말로 놀라웠어. 기적 같더라.
내 나이 22살, 1988년도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어. 신세계에 들어간 거야. 엄청난 부자가 되었지.
노동 강도에 비해 돈을 정말 많이 주더라. 당시 내가 하루 품팔이를 하면 5천 원, 하루도 쉬지 않고 1달 하면 15만 원 받는데 공무원을 하니까 월급을 거의 25만 원 주는 거야. 게다가 공휴일과 일요일은 쉬고, 토요일도 오전만 했기 때문에 시골에서 새벽에 시작해서 해가 져야 끝나는 일에 비해, 시간적으로나 노동 강도 면에서나 훨씬 쉬웠어. 시골에서는 추운 겨울에 움직이기도 어려울 정도로 옷을 여러 개 겹쳐 입고, 털모자 쓰고 장화를 신고 장갑을 두세 켤레 겹쳐 끼고 눈밭에서 일을 하거든? 허허벌판에서 칼날 같은 찬바람이 씽씽 불 때 일하는 것은 정말 힘들어. 콧물이 떨어지면서 고드름이 되는 경우도 있고, 귀가 얼고 발이 동상에 걸릴 때도 있어. 황토밭에 눈이 녹으면 찌럭찌럭한 황토가 장화에 붙어 무거워서 걷기도 힘들어. 이거에 비하면 따뜻한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은 일이 아니고 노는 거 같았어. 내가 어떻게 이런 공무원이 되었는지 좋아 죽겠더라.
당시 부모님은 약 1천 평 정도의 농사를 짓고 계셨는데, 부모님의 일 년 순소득과 비교했을 때 나는 하나도 투자하지 않고 2배 이상을 받는 거야.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 어머니는 물론 온 가족이 아주 힘들게 일해야 겨우 150만 원을 버는데 나는 혼자서 연봉이 300만 원 정도 됐어. 갑자기 엄청난 부자가 된 느낌이었어. 상상이 되니? 게다가 매년 월급이 15% 정도 올랐어.
3년 정도 지나서야 나는 진정한 ‘공무원’이 되었어.
9시 출근해서 18시에 퇴근하는 공무원이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는 말에 그전까지만 해도 동의하지 않았어.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노동자였지. 그런데 월급을 받기 때문에 했던 일을 사람들이 “고맙습니다”라고 말해 줄 때 왠지 쑥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더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는데도 사람들은 고마워한다는 것을 알고는 ‘이것이 진정한 국민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됐어. 내가 조금만 열심히 하면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고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는 것이 공무원이었어.
노동자라고 생각했을 때는 18시가 넘으면 화나고 손해 본다고 생각했는데, 국민에 대한 봉사자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사무실에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면서도 화나거나 기분 나쁘지 않았어. 나의 노동의 가치는 엄청나게 커졌고, 그에 따라 성과도 몇십 배 증가했어. 생각만 바꿨는데 그 가치가 엄청나게 커지고 행복한 거야. ‘돈보다 성취감’이 훨씬 더 컸어.
새로운 기획을 하면서 나는 ‘창조자’가 되었어.
공무원은 어떤 기획을 하느냐에 따라 모든 국민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국가를 발전시킬 수도 있으며, 우리나라 지도도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 공무원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창조자’라고 생각되더라. 그러면서 나는 남들이 하지 않은 뭔가를 더 하고 싶었어.
‘노동 대가를 받는 노동자에서 국민에 대한 봉사자인 공무원으로, 세상을 바꾸는 창조자로.’
나의 시간의 가치는 수십 배에서 수만 배로 커졌어.
내가 1시간 더 일해서 5천만 국민에게 1시간의 이익을 줄 수 있다면 그 가치는 5천만 시간의 가치가 있는 거야. 1시간에 1만 원이면, ‘5천만 인구×1만 원=5천억 원’이야. 나의 1시간은 5천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 과장이 너무 심했니? 개똥철학이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나는 그때부터 세상 최고의 부자가 되었어. 이런 기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아무리 어렵고 많아도 힘들다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었어. 월급을 받기 위해 일할 때와 많은 사람을 도와주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겠다고 생각하며 일할 때는 천지차이가 나더라.
(다음호에 계속)
- 책 <좋은 아빠 훌륭한 아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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