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시대 최고의 상소는 누가 올렸을까?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1년 09월 23일(목) 1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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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성균관 유생들과 5부 학당의 생도들이 앞장섰다. 조선 중기에 성리학이 정착되자 지방 유생 등 소위 글줄이나 쓰는 선비들은 죄다 상소를 올려 승정원의 승지와 임금은 상소를 처리하느라 골머리를 앓았다.
상소를 통해 임금의 정책과 당파를 비판했고 나라가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선조 때 조헌과 고종때 면암 최익현은 도끼를 등에 지고 올리는 ‘지부상소’도 감행했고, 심지어는 정조 때 ‘사도세자를 신원하라’고 선비 1만 57명이 연명으로 서명한 ‘만인소’도 등장했다.
상소로 인해 귀양을 가거나 참형에 처해 지는 일도 잦았다.
명상소의 대표적인 6인방을 소개한다.
먼저 ‘조의제문’을 남긴 점필제 김종직을 으뜸으로 꼽는다.
김종직은 그가 쓴 ‘조의제문’으로 인해 죽은 후 다시 파헤쳐지는 부관참시를 당하고, 그의 제자들이 대부분 죽거나 귀양을 가야 할 만큼 참혹했다. 김종직은 왕도정치를 부르짖던 소위 영남학파의 시조요. 사림파의 거목이다. 그는 세조에게 폐위됐다가 사사된 어린 단종의 운명을 비통해하며 재야시절 ‘조의제문’을 지었다. 이 조의제문은, 그의 제자 탁영공 김일손이 사초에 기록하면서 무오사화의 큰 참변을 불러온다. 연산군의 폭정과 희대의 간신 유자광의 정치 술수에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제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게 했다. 그러나 김종직의 올곧은 정신은, 그의 제자 김굉필이 사화로 귀양을 갔다가 어린 조광조와 운명적으로 만나 정신은 이어진다.
다음으로는 임금을 비웃었던 석주 권필의 ‘풍자시’를 꼽는다.
임숙영이 과거시험지의 대책문에서 “전하를 원망치 않는 이가 없습니다”라고 척신들과 광해군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 대책문의 합격 여부를 두고 임금과 조정 신하들이 3개월 동안 설전을 벌리다 결국 임숙영은 합격이 취소된 삭과 처분이 내린다. 이를 지켜본 석주 권필이 ‘임숙영의 삭과 소식을 듣고’라는 상소로 광해군과 중전의 외척들이 권력을 농단하는 것을 풍자한 상소를 했다. 그의 상소는 사대부들의 갈채를 받았지만, 광해군이 친히 국문할 만큼 노여움을 샀고, 그 일로 조정은 발칵 뒤집힌다. 조정과 사대부들은 일제히 권필을 변호하지만 결국 심한 고문과 매질을 이기지 못하고 귀양길에서 장독으로 죽고 만다.
다음은 너무 올곧아서 꺾인 젊은 개혁주의자 정암 조광조의 ‘옥중상소’다.
중종의 총애와 사림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던 그는 공신들의 위훈삭제를 놓고 임금과 첨예하게 대립하다가 중종에게 차갑게 버림을 받는다. 하루아침에 옥에 갇혀 피 끓는 옥중상소를 올렸던 그는, “선비가 세상에 태어나서 믿는 것은 오직 임금의 마음뿐”이라고 호소하지만 변심한 중종의 마음을 돌려놓지 못한다. 도학정치의 이상국가 건설을 위해 줄기차게 개혁을 주장했던 꺾이지 않는 선비의 기개는, ‘기묘사화’란 사림의 가혹한 탄압을 불러오게 된다.
또 천주교의 정당성과 유교의 허위를 질타했던 정약용의 조카 성 바오르 정하상의 ‘상재상서’가 있다.
1839년 포도청에 끌려간 정하상이 옥에 갇혀서 상서(上書)를 올린다. 당시 박해를 주도했던 우의정 이지연에게 올린 것이라 하여 ‘상재상서’라 한다. 천주교의 정당성과 종교탄압의 부당함을 간곡하게 호소하는 정하상의 문장은 당시의 천주교도들을 모두 울게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아버지와 형님이 처형된 데 이어 정하상 역시 기해박해로 서소문 밖에서 목이 잘렸다.
동학농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최시형의 ‘신원금폭소’도 명상소로 평가된다.
신원금폭소는 동학 교주 최시형이 보은집회 이후에 ‘동학인들이 나라에 지은 죄도 없고 도적질을 하지도 않았는데 탄압을 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면서 처절하게 항의하는 글이다. 이 신원금폭소를 올린 뒤에 전봉준은 ‘호남창의문’을 띄워 동학혁명으로 봉기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건창의 ‘전기추석’을 소개한다.
이건창은 불과 15세 때 별시문과에 급제해 암행어사를 지낸 청백리로서 세인들을 놀라게 한 귀재였다. 강화학파인, 그는 ‘유림 1백 년 이래 가장 깐깐한 상소였다’고 평가할 정도로 뛰어난 문장가였다. 그의 상소 ‘전기추석’은 가난한 시골 추석의 풍경을 아름답게 그린 명작으로 손꼽힌다. 마치 한편의 단편소설처럼 탄탄한 구성으로, 홀로 아이를 키우는 시골 아낙의 신선한 삶을 리얼하게 표현했다. 세곡을 받으러 온 아전을 등장시켜 과부의 슬픔을 극대화해 근대시의 효시가 된 상소였다고 한다.
[약력]
다산학회 회원
영암학회 회윈
광주시인협회 회원
한국지역문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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