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놀룰루 전쟁 박물관 & 자유가 넘실대는 와이키키 해변 자하 옹의 '자하산방'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1년 12월 24일(금) 16: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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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호놀룰루 전쟁박물관’ 답사.
1941년 12월 7일 일요일.
여명이 밝아오기 이전, 일본의 기습 폭력이 있던 진주만. 마침 일요일이라서 미군 병사들은 들뜬 기분으로 외출·외박을 하고 감히 상상도 못했던 작은 나라, 일본이 대 아메리칸, 미국의 자존심을 산산이 무너뜨려버린 진주만 침공.
그때 처참하게 함포 한방도 쏘아보지 못한 채 태평양 물속에 침몰되어 버린 항모(미드웨이)의 위용을 과시하려는 듯 그때 그대로의 ‘항모’를 새롭게 건조하여 전시한다니...
지금 이 자리 역사의 현장에 선 수많은 관광객에겐 환희와 충만과 축복으로 들뜬 마음들일 테지. 그러나 전사들의 그 처절했던 절규와 함성과 핏빛 선연한 아비규환의 불사조 같은 충절과 죽음.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투혼을 불살랐던 역사의 증언들이 이 자리에선 산자의 마음에 과연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말 할 수 있단 말인가.
끝없이 쟁취하고 더 많은 것을 탐하려는 사악한 위정자들의 전쟁 놀음들이 결국은 향유 뒤에 오는 비극과 피폐인 것을.
역사는 언제나 산자의 아니 승자의 편에 서 있을 것을.
그 누구를 위한 죽음이었을까? 포화 속에 스러져 버린 작은 불씨이듯, 그 수많은 영혼들이 사라져버린 진주만.
축복의 인파로 출렁이는 이 바닷가에서 형언할 수 없는 착잡함에 이방인인 내 마음도 숙연해지는 것을.
자유가 넘실대는 와이키키 해변
호놀룰루 와이키키 해변. ‘서울정’ 간판만 보아도 정겨워 포근하구나. 김치·깍두기에 설렁탕, 풋고추에 된장. 오랜만에 대하는 한식, 한결 속이 평온하구나.
맥도날드 버거킹, 버펄로 피자, 스테이크의 천국에 와서 까지도 촌티를 벗어나질 못하는 자신의 식습관에 마음 속 슬며시 웃어 본다. 어떤 심리학자가 말했던가. 음식에 대한 향수와 센서는 수많은 세월이 흘러도 뇌 속에 감지되어져 향수 같은 그리움에 연연해 한다는.
물고기에 불과한 연어의 회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기가 태어난 모천이 그리워 죽어가는 힘을 다하여 그 넓은 태평양을 거슬러 연곡남대천 개울로 돌아와 결국은 죽어가면서 산란을 하고 스러져 가는 자연의 섭리를 음미해 본다.
오후, 와이키키 해변.
모래 언덕을 거닐다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깡마른 체형도 잊은 채 첨벙 바다 속으로 뛰어 들었다. 차지 않은 미지근한 물 온도, 밀려오는 파도와 더불어 멀리 수영해 가본다.
그 누구도 위험하다고 제재하지 않는 자유인의 방종처럼. 우리나라 해수욕장 같으면 줄을 쳐 놓고 그 이상 넘으면 호루라기를 불고 위험 방송을 하며 수다를 떨 테지만.
자신의 안전은 자신이 지키는 인종을 초월한 그 수많은 사람들, 타인에게 혐오감을 주는 행위나 행동은 그 어느 곳 하나 찾아볼 수 없는, 서로를 배려하면서 따스한 눈인사와 미소로 다정스레 맞아주는, 비록 벌거숭이의 나체이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 교감되는 원초적인 인정을 맛본다.
여기에 과연 도덕과 체면의 굴레들 같은 군더더기가 무슨 필요가 있단 말인가. 옷이란 결코 치부를 가리기 위한 겉치레에 불과한 것을.
야자수 그늘 아래 끝없이 펼쳐진 고운 모래알들, 세찬 파도에 휩쓸려 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설치된 바다 속의 방지벽.
해변의 아열대 수목들, 꽃들, 바나나, 야자수, 관음죽, 문주란, 골드샤위치, 피아데.. 이름 모를 꽃들.
거리 전체가 잔디나 공원과 쉼터 그리고 낭만적인 분수대들, 게곡의 물이 평화스럽게 흐르는 듯 단아하고 남태평양의 노을은 아침의 찬란한 태양의 솟아오름 못지않게 또 장엄하구나.
바닷물 전체가 붉게, 이글거리는 은빛 파도와 어우러져 푸르디푸른 쪽빛 물결은 검붉은 주황색으로 물들이게 하다니.
이때 해변에는 백열등 전기가 아닌 횃불이 X자 묶음으로 켜지고 (해가 저물면) 알로하 음악들이 첼로, 통기타, 드럼, 소리 나팔에 맞추어 여기저기에 펼쳐진다.
어떤 곳에선 시끄러운 전자 올갠에 맞춰 재즈의 파열음이 청소년을 유혹하고 우리 같은 실버들은 남미의 감미롭고 서정적인 컨츄리음악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러나 이속에서도 고성방가나 저질스런 속물들은 찾아 볼 수 없는 질서의 아름다움.
길을 가다 조금만 스쳐도 Excuse Me (미안합니다)라고 예를 지키는 신사의 나라를 배운다.
식당에서도 화장실에서도 문을 열고 들어가며 다음 손님에게 문을 잡아주며 기다려주는 그리고 햄버거 가게에서도 목로 커피점에서도 줄을 서서 끝없이 기다릴 줄 아는 그 마음의 여유와 넉넉함을 느끼며,‘빨리’가 없어지는 우리나라, 큰목소리로 소리치는, 식당에서도 사소한 의견갈등에서도 목소리 큰 자가 우선하는 사회, 요령과 줄서기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모습이 없어지길 바래본다.
군사문화의 40년이 인간의 심성을 이렇듯 황폐하게, 피폐하게 만든 것일까?
GNP가 만불이면 어떻고 수출이 몇 억불이면 또 무엇하나. 인간의 내면에 내재해있는 잠재의식의 정서의 문제다. 갑자기 졸부가 된 저질의 군상처럼.
영암일보 ya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