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사람들의 의리

김오준의 ‘심심풀이 한국사’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2월 23일(수) 17:01
월봉 김오준
시인 / 광주문인협회 이사
우리가 살고 있는 전북. 전남. 광주를 호남지방이라 했으며 줄여서 '호남'이라 불러왔다. 호남이란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학설이 많으나 일반적으로 호남은 고려 초에 금강 이 남쪽이라 강남도 라 부른 데에서 유래되었다. 중국의 '당서'에 의하면 금강의 옛 이름인, 호강(湖江)의 남쪽에 위치하는 지방이기에 '호남'이라는 지명이 되었다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며 전라북도 김제시에 있는 '벽골제'의 남쪽에 위치한 지방이라는 데서 기인 되었다는 일부 의견도 있으나 신빙성은 약하다.

호남의 자연환경을 살펴보면 북쪽으로는 금강. 동쪽으로는 소백산맥이 형성되어 호서지방인 충청도와 영남 지방인 경상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충청도는 마한과 백제의 같은 땅에 문화가 거의 비슷해 동질감이 있어 그런대로 우호적이었으나 조선 시대에는 중기까지는 율곡 이이와 학포 양팽손의 아들 양응정의 과거시험 좌주 문생 관계로 기호학파가 형성되었으나 선조 때 붕당으로 갈라지기 시작하더니 남인이 숙청되고 후기에 이르러선 우암 송시열의 서인 노론의 일당독재로 인하여 동인. 남인. 소론 계열이 많은 전라도는 중앙 고위 권력에서 배제되었고 문관보다는 무관이 훨씬 많이 배출되었다.

태백산맥을 기준으로 나누어진 경상도와는 삼국시대부터 심한 영토 경쟁과 통일 후에도 여러 가지 원한으로 견원지간처럼 지내왔고 지금까지도 선거철만 되면 민심이 서로 갈리어 깊은 골은 쉽게 메꾸어질 기미가 보이질 않았고 앞으로 해결해야 할 커다란 과제다.

호남 지방은 소백산맥에 이어 노령산맥이 남서쪽으로 뻗어 있어 동고서저의 지형을 나타내며, 노령산맥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의 경계를 형성한다.

원래 호남은 삼한시대에는 마한의 땅이었으며, 삼국시대에는 백제, 후 삼국시대에는 견훤이 후백제를 창건한 지방이기도 하다.

고려 초에는 전라북도를 강남도, 전라남도를 해양 도라 하였으나, 1018년 현종 때에는 양도를 합하여 전라도라 하였다. 전라도라는 명칭은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지명이다.

1392년 조선이 개국하고 태종 이방원이 전국을 8도로 나누었고 1895년에는 23부로, 1896년에 다시 13도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전라 남북도로 분리되었고, 전남도에 속했던 제주가 1946년에 제주도로 승격하면서 호남지방의 실질적 범위는 오늘날의 반도와 연안 도서에 국한하게 되었다.

1986년에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하면서 전라남도에서 분리되었으며, 광주직할시는 1995년에 광주광역시가 되었다. 전라남도 도청은 2005년까지 광주광역시에 위치하였다가 현재의 무안군으로 이전하였다. 전라북도의 도청은 전주에 위치, 호남지방은 이미 마한 시대와 백제 시대에 바다를 통하여 왜. 서진. 동진 등 해외의 여러 나라들과 교류했으며 백제 시대에는 영암 출신 왕인박사가 미개한 왜국에 진출해 아스카문화를 꽃피웠고 동진의 마라난타에 의해 472년 불교문화를 일찍이 받아들였다.

법성포와 불갑사라는 지명은 불교의 전래에서 유래하였다.

호남 지방 전라도가 '의향'.'이라고 불린 채 지금은 자긍심 속에 고향을 지키며 모두들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연유와 까닭도 없이 수백 년 동안 의향 전라도는 '개똥쇠'. '홍어'. '하와이' 등 온갖 비속어의 푸대접 속에 취업이나 혼인 기피. 승진 기회 박탈 등 많은 제한 속에 오랜 세월을 아픔으로 감내해 왔고 전두환 신군부와 현 야당의 친일 잔재세력들에 의해 5.18광주 민주화 항쟁이 폭도로 매도되는 등 아직까지도 수모를 겪고 있는 현실이다.

설상가상으로 호남의 아픈 역사와 정서를 외면한 채 구차한 변명 속에 개인의 정치적 야망을 달성키 위해 의리도 줏대도 없이 정치판을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철새 정치인들의 면면을 보고 있노라면 구역질이 난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는 전라도는 1592년 임진왜란 때 졸군 선조의 무능한 관군이 초반에 대패하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수군과 의병들이 위기의 조선을 구할 때 전라좌수영과 전라우수영의 수군 중 절반이 전라도 출신들이었고 의병에 참여한 총 5만 명의 의병 중 3만 명이 전라도 출신이었으며 1894년 갑오 동학 농민운동 때도 전라도 출신 동학군이 절반이 넘었고 한말 정미의병의 중심세력 또한 우리 전라도 출신들이었다.

또한 1929년 11월 광주학생항일운동과 1980년 5.18광주 민주 항쟁 등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전라도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끝까지 항거한 고장이 바로 우리 전라도였고 전라도 백성들이었다.

이런 전라도가 1589년 10월, 전주 출신 정여립의 기축옥사로 말미암아 졸군 선조와 송강 정철로 인해 동인과 남인 등 전라도 출신 1000여 명이 역모로 몰려 쑥대밭이 된 후, 서인 노론파의 일당독재로 1905년 조선의 국권이 침탈되자 의병이 전라도 곳곳에서 거병되어 1909년 일제에 의한 '전라도 의병 대토벌 작전'과 해방 후 이승만의 친일 노선에 의한 친일 경찰 세력의 만행을 거부한 제주 4.3사건. 여순사건과 6.25 남북전쟁의 좌익활동에다 김성수. 송진우. 김병로 등 한민당 친일파 계열 정치인들에 대한 정치적 반감이 누적되어 전라도는 교묘한 정치적 기류에 휩싸여 본의 아니게 집권 세력과 기득권 세력들의 눈밖에 벗어나 경멸과 핍박 속에 수많은 희생 속에 굴곡 된 역사를 감수하면서 살아야 했다. 마치 조선 시대 평안도 이북인들이 받았던 차별 대우를 답습했다.

전라도 사람들이 푸대접 받게 된, 근거가 미약하고 단편적인 기록들을 대강 살펴보면, 해방 후 서울대 교수 이진숙은 '8도인의 성격에 대한 선입관념'이란 그의 논문에서 '대다수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전라도인들에 대하여 간사하다는 잘못된 선입관념을 갖고 있다. 서울, 경기, 충청도의 사람들은 예의가 바르고 경상도는 인심이 좋고 평안. 함경도 사람들은 무뚝뚝하나 의지가 굳고 고집이 세며 전라도 사람들은 간사하며 인색하다는 극도로 좋지 못한 인식을 갖고 있다.'라고 기록했다. 거기에다 '전라도 하와이'란 용어의 원조인 강원도 고성 출신의 월남인으로 전라도에서 한 번도 생활한 적도 없이 전라도 사람과 무슨 원한과 앙금에서인지 그의 졸작 시 "하와이 근성 시비"라는 필화 사건을 일으켜 우리 전라도 사람들을 결정적으로 비하시켜 버렸다.

조영암은 문예 잡지에 전창근이란 필명으로 "전라도는 간휼과 배신의 표상"이며, "전라도 출신들은 우선 인류권에서 제외해야겠고, 동료권에서 제외해야겠고, 친구에서 제명해야겠기에"라는 "하와이 말살론'을 전개한 손목을 잘라버려야 할 천하에 못된 후레자식이다.

전라도 사람들은 절대로 조영암이란 이름 석자를 머릿속에 내내 기억하며 저주 해야될 만고의 간흉이다.

분명한 것은, 전라도 사람들은 의가 아니면 절대로 따르지 않는다. 그 한 예가 1963년 대선에서 윤보선과 박정희가 대결해 15만 표로 박정희 후보가 승리했는데 박정희는 전라도에서 윤보선보다 35만 표를 더 득표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전라도 유권자들이 윤보선을 지지하지 않은 가장 큰 요인의 하나로 그 당시 윤보선의 민정당은 일제강점기 친일파 출신들이 중심이 된, 김성수. 송진우 김병노가 주도한 한민당의 맥을 이은 정당이라고 간주해 친일파 경찰들에게 큰 피해와 온갖 수모를 당한 전라도인들의 앙갚음이었고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특히 이승만은 전라도 출신을 정부 요직에 중용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린 채 초대 내각에서 단 1명의 장관만을 임용하는 거짓을 남발했다.

이승만 정권에서 겨우 4%에 불과하던 호남 출신 장관 비율이 박정희 정권에서는 15.3%로 늘어났고, 고위 관료도 6.2%에서 13.5%로 늘어났다.

그래서 그 이후 선거에서도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경상도 출신 박정희에게 많우 지지를 보내 주었다. 그러나 3선 개헌 등 박정희 독재 정권이 장기화되자 가장 맹렬하게 저항한 곳이 우리 전라도요.

전태일, 이재호, 이철규, 이한열, 박관현, 백남기, 등 수많은 민주화 운동의 투사를 우리 전라도가 배출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바르게 알고 양심과 정의를 지키며 대의명분을 지킨 채 의연하게 남은 삶을 추구해 부끄럽지 않은 전라도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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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역문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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