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붉은 여왕 에세이 ‘사랑의 방명록’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2년 03월 03일(목) 10:18 |
|
초등학교 5학년 시절, 하굣길을 혼자 터덕터덕 걷고 있는데 현숙이란 여학생이 머뭇머뭇 내게 다가오더니 내 귓속에 대고 조그맣게 한 말이었다. 내게 사랑이란 말은 처음 그렇게 왔지만, 그때 나는 말의 뜻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때까지 그 말을 들어본 적도 없었고, 어떤 의미로 그녀가 속삭였는지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사랑해가 뭐야?”
뜨악한 표정으로 묻는 나를 그녀는 한심한 얼굴을 하며 잠시 쳐다보다가 눈을 흘기며 입을 샐쭉거리더니, 딸랑딸랑 책보 속에 든 빈 도시락 소리를 내며 내 앞을 가로질러 신작로 길을 냅다 달려가 버렸다.
나는 영암 산골 마을에서 광주로 유학 온 중1 때야 사랑이란 말의 뜻을 알았다. 아니, 그것도 남과 여가 사귄다는 연애란 말의 유사어로 인식했다. 중2가 되어 어느 날, 학교에 가기 위해 내가 스스로 교복을 다리기 시작했을 때야, 그리고 옆집 누나만 보면 내 얼굴이 붉어지고, 골목길 중간에 사는 여학생이 나를 쳐다보면 고개를 푹 숙이고 잰걸음으로 대문을 밀칠 때야, 사랑은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랫도리가 거뭇거뭇해지고 그것이 신기해 밤중 팬티 끈을 벌리고 바라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그 행동이 무심해지는 중3이 다 지나가는 어느 겨울날, 나의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그 당시 졸업을 앞둔 몇몇의 아이들은 설문지 같은 것을 만들어 아는 이들을 통해, 졸업을 같이하는 남녀 학생들에게 배포하고 수집하여 그 내용의 답변을 보며 낄낄거리는 것에 졸업의 의미를 가지는 이상한 유행이 있었다.
‘당신의 혈액형은?’ ‘당신이 좋아하는 옷 색깔은?’ ‘당신이 좋아하는 이상형은?’ ‘당신은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어디로?’ 등의 유치한 질문이 대부분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반응도 좋았고 여학생들의 마음속 한 부분을 들여다보는 호기심에 나도 설문지를 돌렸던 한 명이었다. 그런데 한 여학생이 ‘당신은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어디로?’라는 질문에 ‘안방에서 건넌방으로.’라고 대답을 해왔다. 나는 그 충격적인 답변에 그녀가 어떤 심정과 감정을 가지고 이런 말을 했을까, 호기심이 일어서 연락을 하고 그녀를 만났던 것이다.
고혹적인 느낌일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그녀는 청순한 모습이었다. 바로 내 가슴에 그녀가 사랑으로 물들여지고 내가 군대를 갈 때까지 5년간 우리는 사랑하는 사이의 젊은이였다.
언젠가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런 답변을 했어?”
그녀는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몰라. 내가 미쳤었나 봐.”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여자들도 자신의 내면에는 성욕이 부글부글 끓고 있다는 것을.
그렇다고 내가 첫사랑에게만 눈을 돌리고 있지는 않았다. 그녀와 잠시 소원해진 고2 때, 얼굴이 하얗고 백치미 가득한 내 집 가까이 살았던 N에게 몇 달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었고, 사랑의 감정이 아니었다고 지금도 애써 고개를 흔들지만, 문학 동아리에서 만난 두 살 위인 누나의 포근한 모습과 다정함에 어리광을 부리기도 했었다. 그리고 내가 군대를 간 사이 서둘러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린 첫사랑이 잊힐 무렵, 5.18 민주화운동으로 몇 달을 고향에서 보냈던 대학 3학년 때, 초등학교 동창인 여인과 사랑에 빠진 적이 있었다. 나는 이때의 사랑을 ‘옛사랑’이라고 지금도 호명하고 있다.
이성이 나를 좋아하는 경우도 있었다. 고1 때, 탁구장에서 만난 여학생이 그냥 인사만 하고 지나친 나의 소심한 행동을 지금도 후회하고 있으며, 재수생 시절 같이 공부했던 1년 선배의 여동생이 내 어설픈 시를 쪽문을 사이에 두고 애절하게 읊은 사연도 있었다. 고3 때, 시내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운치가 대단한 고택에 살고 있던 같은 나이인 여학생이 자신의 생일이라고 초대를 하였다. 하지만 그녀가 몰래 가져다준 술 몇 잔에 나는 고꾸라졌고, 나중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내 머리맡에 다소곳이 앉아 젖은 수건으로 내 이마를 가분가분 누르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 이상형은 아니었지만, 하마터면 고개를 들어 강한 입맞춤을 할 뻔했다.
33년 만에 마이산에서 첫 초등학교 동창회 모임을 가졌을 때 현숙이도 아직도 큰 가슴을 과시하며 참석을 하였다. 산행을 하고 서로 안부를 묻는데 하루를 보낸 뒤 저녁식사 중, 나는 좌중 속에 그녀가 보이자 그때의 일이 생각나 너스레를 떨었다.
“저것이 5학년 때 나보고 사랑한다고 했다? 그때부터 너 까졌던 것 아냐?”
그러자 현숙이는 손사래를 쳤다.
“아냐. 나도 그때는 그 뜻을 몰랐어. 총각이었던 이경철 선생님 알지? 그 선생님이 우리 동네 영숙이 언니랑 몰래 만난 것을 지나가다 봤거든? 그런데 이경철 선생님이 ‘사랑해’하면서 언니에게 입을 맞추더라? 그래서 나는 ‘사랑해’가 입을 맞추는 말인지 알았어.”
그러면 나의 이런 고백에 당신의 첫 키스와 첫 경험은 언제고 누구예요? 라고 누군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물음의 대답은 아내와 결혼하기 두 달 전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다. ‘붉은 여왕’은 나를 자신의 품에 늘 일찍 안으려 했지만, 이 여인들과 의외로 나는 젖은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마음은 늘 그런 쪽에 있었지만 그냥 순진한 척, 착한 척했던 마음 여린 사내였다. 결혼 날짜를 잡고 결혼하기 두 달 전에야 어느 여관에서 아내가 될 여자와 첫 키스와 첫 경험을 한꺼번에 해결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아내는 신혼여행 중 입덧을 했고 첫애가 결혼일로부터 여덟 달밖에 안되어 세상에 태어났지만.
가로, 세로, 대각선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여왕(Queen)은 1872년까지 체스 위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 해, 루이스캐럴에게 붙들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속편 격인 『거울 나라의 엘리스』에서 ‘붉은 여왕’으로 등극했다.
붉은 여왕은 엘리스의 손을 잡고 체스 모양의 벌판에서 제자리에 서 있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나무들과 그 주변의 것들은 결코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다. 어리둥절한 엘리스는 ‘모든 것들이 우리를 따라 움직이는 걸까?’하고 생각했다. 그때 붉은 여왕이 외쳤다.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곳에 가고 싶으면 두 곱은 더 달려야 하고.”
이 말 때문에 붉은 여왕은 100년이 지난 1973년, 시카고 대학의 벤 베일론 교수의 부름으로 생물학계로 진출했다. 모든 생명체는 다른 생물의 진화에 발맞춰 끊임없이 진화하지만, 그만큼 그 주변도 빨리 변화하므로 진보가 점점 둔화한다는 ‘붉은 여왕 이론’을 발표한 것이다. 즉, 생물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도태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다하여 살아가는 것이라고, 지구상에서 태어나 사라져버린 많은 생물들은 적자생존의 경쟁에서 결국 붉은 여왕의 손을 놓쳤다.
우리 인간의 무수한 사랑도 이 범주에 벗어나지 않는다고 강변하고 싶다. 사랑의 본질은 결국 종족 번식이고 우성인 자손을 갖기 위해 마음에 드는 이에게 다가가는 행위가 사랑이 아닐까.
그런데 요새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은 자기자손들의 도태를 도외시하며 사랑의 본질을 무시하고 의식주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 같다.
박연준※의 시 「두 마리 물고기」를 읽을 당시, 내게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어린 시절 목도한 부모의 교합 장면은
지느러미를 잃은 두 마리 물고기가
진흙 속에서 허우적대는 모습 같았다.
(…)
어쩌면 그때, 그 슬픈 몸부림을 빌려
동생이 태어났는지도 모르겠다.
※박연준 ; 1980년 서울 출생.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졸업. 2004년 중앙신인 문학상에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창비(2007).
발설한다는 것 자체가 자신과 가족의 모독이라는 선입견이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내 주변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슬픈 몸부림’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동생이 태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붉은 여왕’이 슬며시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나보다 11살이 아래인 막내 남동생은 나보다 아버지 어머니께 극진하고 지금 사랑스럽고 건강하고 풋풋한, 사춘기를 막 지난 딸과 막 사춘기에 들어선 아들을 두고 있다.
[약력]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영암일보 ya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