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에서 만난 다양한 군상들 & LA 한국의 거리 자하 옹의 ‘자하산방’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2년 03월 03일(목) 15: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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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베버리 부호들의 저택들. 에덴동산의 낙원처럼 꽃 속에 숲속에 묻힌 요술 궁전처럼 척박한 준 사막의 LA에 천국과 지옥이 존재하는 것을 보았다.
홈리스, 멕시칸. 이래서 LA 폭동이 일어났던가. 함께 나누고 베푸는 인정 앞에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순한 양이 된다. 샤일록(베니스의 상인)의 냉정과 교만 뒤에 언제나 원망과 보복이 뒤따르는 자업자득의 때가 오는 순리처럼. 산타모니카 해변을 따라 글로벌 거리의 낭만적인 전동차가 달리고 건물 옥탑의 시간대 따라 망치를 두드리며 종탑 시계를 치는(중세의 거리에 와있는 착각이듯) 그리고 분수대 주변 잔디 위에 간이공연장, 어느 대학의 동아리인지 노오란 유니폼에 젊음을 발산하고 만끽하는 록 음악 밴드에 맞추어 춤을 추는 모습이 발길을 멈추게 하는구나.
거리의 벤치에 앉아 커피 한 잔을 사고 그들의 마음의 동화를 맛보면서 서부영화 웨스트사이드스토리가 생생하다. 먹자골목엔 또 실버들의 노래잔치. 80이 넘은 할머니는 매일 출연한단다. 이제 은박이 주렁주렁 달린 레이스의 무대복까지 차려입고 나온다니, 이를 관람하는 내 마음은 왠지 무겁구나. 거나하게 취하여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그들 속에 내가 있으면서도 왠지 무대 위의 허리 굽은 그들에게서 연민 같은 쓸쓸함을 읽어본다.
정열의 팝, 클래식을 열창으로 부르지만, 그 행동 모습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것을 본다.
‘워싱턴 비치’를 지나고 ‘Redon NA 비치’ ‘한국횟집’ ‘목포 삼학도’. 200석, 100석이 넘는 큰 식당인데도 대기했다가 식탁에 앉아야 하는 식당으로 성업 중이다.
며칠 전 강남회관에서 대접받았던 허벅한 생선회가 생각나, 우린 매운탕에 소주를 시켰다. 하와이 어느 식당에선가 소주 한 병에 1만 8천 원에 마시던 감회가 새롭구나.
역시 우리 연안해서 잡히는 생선의 맛을 어찌 이곳 생선회와 비교할 수 있을까.
롱비치 항구, 컨테이너 물류기지항. 광양만의 몇십 배 하역용량을 소화한단다.
우리의 현대상선도, 한진해운도 정박 중이구나. 하역 기지라고 하기엔 너무도 조용한 부두의 풍경에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낀다. (늦은 밤이라서 하역작업이 끝나서 일터이지)
다시 *돌아오라 쏠렌토로*를 불러본다. 그리고 *라파로마*(배를 타고 하바나를 떠날 때 내 마음 슬퍼 눈물 흘렸네.....)를.......
LA 한국의 거리
거듭나지 않고 조용함 속에 질서와 예의가 바로 서고 법을 준수할 줄 아는 국민의 의식, 그리고 일과 여가를 즐길 줄 아는 정서와 낭만이 함께 숨 쉬는 무한한 잠재력의 미국을 하나, 둘 읽어본다. 배워본다.
한국의 거리. 떡 방앗간, 옷 수선, 해장국, 떡볶이, 튀김집, 덕지덕지 붙은 간판들. 간판들 뒤에 가려지워진 업주의 얼굴마다 배움의 지성들이 물씬 풍겨왔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고국에선 감히 엄두도 못 냈던 구멍가게의 음식점으로 전략해버리다니. 그 표정에서 애환 서린 삶의 편린을 읽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사업을 한다는, 듣기에 화려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 가리어진 그늘의 내면을.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 뒷골목 포장마차 좌판의 액세서리 여인네들이듯. 신대륙 아메리칸.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리도 선망의 유토피아(이상향)란 말인가. 의아해지는 자신의 마음이 더 이상 하리만큼 연민 같은 갈등들이 왜 자꾸 비켜 가는 것일까.
무엇보다 병, 의원의 초라한 건물과 간판들. 너무나 초라하고 가난해 보이다니. 시골 면 단위 보건 진료소 같은 실망을 느낀다. 고국에 있으면 최 상류사회의 일원일 텐데. 그들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을 것을 왜, 자꾸 나의 잣대로 재려 하는 것일까. 왜 자꾸 내 마음의 시각으로 측정하려 드는가.
영암일보 ya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