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3월 24일(목) 13:27
박석구 시인
‘부자가 천당을 간다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힘들다’라고 성경에 씌어 있지만, 지금의 우리나라 부자들은 돈만 있으면 대한민국의 발달 된 제철업과 세공업 덕분에, 낙타가 들락날락한 바늘귀가 있는 바늘을 만드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내 이름은 석구(錫九)다. 한자로 풀이하면 주석이 아홉 개라는 뜻인데 이름을 석만이나 석억, 석조라고 지었으면 지금처럼 팍팍한 삶이 아니라 아마 내 인생이 훨씬 풍족했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해볼 때도 있다. 더구나 초성과 종성이 코를 꽉 막고도 아무런 막힘이 없이 온전하게 발음되는 닿소리뿐이어서 딱딱한 그 느낌 때문에 차라리 돼지란 별명을 얻을지라도 석돈이란 이름이 낫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5학년 가을이었을 게다.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가 성난 수소의 얼굴을 하고 지게 작대기를 휘두르면서 다짜고짜 홈쳐간 돈을 내놓으라고 다그쳤다. 내가 영문도 모르고 엉덩이와 종아리를 피가 나도록 맞고 있을 때, 옆에서 말리지도 않고 잃어버린 돈에 대한 설명을 하는 어머니의 말은 이러했다. 장롱 아래 서랍에 소를 판 돈을 넣어두었는데 지폐는 보자기에 말려 그대로 있었지만 옆에 두었던 동전이 몇 개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나는 사실 그 돈이 거기에 있다는 것도 그때까지 몰랐으며, 가져가지도 않은 돈을 내가 가져갔다고 확신하며 무조건 때리는 아버지가 미웠다. 더구나 예전에는 아버지가 시험을 잘못 보았다고 회초리를 들면 항상 말리던 어머니가 같이 다그치는 것에 억장이 무너졌다. 부모의 모든 말이나 꾸지람에 한 번도 반항하지 않던 내가 웃옷이 축축해지도록 눈물을 쏟으며 산길을 따라 도망쳤고 오후 내내 뒷산을 헤맸다. 눈물이 마르고 허기를 느꼈을 때는 밤중이 되어 있었다. 할 수 없이 집 가까이가 소나무 등걸에 숨어 집을 바라보았지만 마당에 불만 켜졌지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집에서 그리 멀지 않는 큰아버지 댁 마구간으로 들어가 볏짚을 몸에 끌어안고 잠을 잘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사방으로 나를 찾으러 다니던 아버지가 혹시나 하고 찾아온 마구간에서 나를 발견하고는 꼭 끌어안고 집으로 가는 도중이었다.

알고 보니 위 서랍에 넣어둔 동전이 서랍 문을 열고 닫을 때마다 닳은 틈새를 통해 아래 서랍으로 떨어져 생긴 일이었다. 그때 그 어린 나이에도 내가 확실하게 느낀 건 ‘돈은 아무리 동전이라도 큰아들보다 낫다’였다.

‘친구가 돈을 꾸러 올 때까지는 친구와의 우정은 영원하다.’라고 미국의 저명한 작가가 이야기한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지만 거의 평생을 돈만 꾸어보았지, 꾸어줄 돈을 가져본 적은 손가락을 한 번이나 구부리다가 다시 펼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나이가 되어 손전화기의 연락처를 열고 명단을 보면 2백 명도 넘은 것 같은데, 친구 비슷한 놈들은 열 손가락도 안 되고 있다. ‘돈과 친구는 비례한다’는 명제를 놓고 심각하게 누군가와 밤새 토론을 벌인다면 나는 단연 ‘비례한다’에 바닥에 튀긴 침이 고이도록 열변을 토할 것이다.

첫사랑의 여자가 나를 보고 달려오며 환하게 웃을 때, 마침 그녀 옆 은행나무 가지에 달린 마지막 잎사귀가 그녀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녀의 웃음이 너무 예뻐 이파리도 제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스스로 떨어지는 것을 선택하는구나’라고 내 나름대로의 상상에 온몸을 부르르 떨 정도로 사랑에 빠진 그녀와 나는 결국 결혼을 하지 못했다.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다니던 직장 근처의 술집에서 간첩과 이야기를 나누었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며칠 후 실직을 하게 되었고 그 후 집안은 급속도로 기울기 시작했다. 대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화장품 회사에 입사했던 그녀를 찾아가 사정을 이야기하고 군대를 지원하였다. 서럽게 눈물을 흘리며 기다리겠다고 맘매김을 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돌아섰을 때, 그녀는 소실점이 될 때까지 한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 내가 첫 휴가를 나와 첫걸음으로 찾아간 그녀의 직장에는 그녀가 없었다. 옆에서 안타깝게 바라보던 여직원이 나에게 던진 말이었다.
“한 달 전에 시집갔어요. 그것도 돈 많은 남자에게.”

30대 후반, 지금도 이름을 대면 대부분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큰 회사에 납품하는 소규모 과자회사를 설립하여 운영한 적이 있었다. 거기다 내 아이템을 알아본 오퍼상이 일본과 대만으로 수출도 도와주어 초반 회사는 순조로운 출발이 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었고 착각이었다. 지금은 그런 세상이 아니겠지만 스티로폼 패널로 조그만 2층짜리 공장을 지을 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설계 도면을 가지고 공장 허가를 받으러 간 군청의 ‘건축과’는 ‘스티로폼 패널이 식품 공장에 적합하냐?’ ‘근처에 집 몇 채가 있는데 동의를 받아와라’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3개월을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돈 몇 푼을 집어주자 허가가 나왔다

식품 허가를 받으러 간 ‘식품 안전과’는 시설 기준에 대해 계속 거부권을 행사했다. ‘수질환경과’는 오수처리 문제에 엄청난 크기의 정화조를 요구했다. ‘소방과’는 소방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목록을 보여주었는데 대기업 수준이었다. ‘재무과’는 터무니없는 지방세를 부과했다. 나는 할 수 없이 세무사를 찾아가 돈을 주고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생산에 들어가 납품을 하고 수출을 하면서도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수출면장을 가지고 세관에 가면 제품의 내용과 컨테이너 속의 제품 비교에 꼬박 하루가 걸렸다. 납품 회사의 ‘구매과’는 납품 단가를 내리려고 닦달했고, ‘개발과’는 제품과 포장 용기에 늘 클레임(claim)을 걸었고, ‘총무과’는 어음을 남발했다. 세무서는 매출과 인건비의 비율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는다고 세무조사를 나와 어쩔 수 없이 주머니 속에 돈이 든 봉투를 쑤셔 넣어야 했다.

관련된 부서의 담당자에게서 심지어 이런 요구도 있었다.
“오늘 내 친구 아들 결혼식 날이라고 하네? 차가 없어 그러는 데 식장에 좀 데려다줄래요?”
“밤에 우리 부서 회식이 있으니 와주면 좋겠어요.”
“나 출장을 가는데 같이 좀 갑시다.”
나는 제품 개발과 생산 쪽을 거의 방치하고 회사 운영을 위해 한 달이면 거의 20일 정도를 이리저리 뛰어다녀야만 했다. 그러니 회사가 잘 될 리가 없었다. 매출에 비해 결국 오히려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고, 이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에다 공장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퇴근용 12인승 봉고차가 출근길에 뒤집힌 사고가 나버렸고 모든 상황을 정리하고 나자, 무일푼이 되어 있었다.

여동생의 배려로 광주에 전세로 집을 마련해 놓았다고 연락이 왔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는 아내와 어린애들을 데리고 밤 봇짐을 싸서 도망치듯 삶을 다른 세상으로 옮겨버렸다.
그 후 나는 모든 제조업에 관한 제의나 권유, 욕망을 접었다. 다시 제조업을 하면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다짐도 잊지 않았다. 큰돈을 향한 집착을, 지나가는 바람 속에 가벼운 한숨과 함께 날려버리고 오로지 내 몸뚱이를 내던져서 살아가는 일만 찾아 헤맸다.

광주로 내려온 어느 날 나는 강을 따라 걸었다. 강은 검었고 어두웠다. 강둑에 서자 강물은 오직 비스듬한 동쪽의 산 하나와 상현달과 별들을 담아 내 눈으로 전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강둑을 천천히 걸어 내려가자 어느 순간 물소리가 들리고 물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을 때, 산과 달과 별이 강물 위에 흔들리고 있었다. 흔들린다는 건 아픔도 같이 간다는 뜻일 것이다. 흔들려 이지러진다는 건 저 아래 강이 넓어지면서 다시 어루만져 제 모습을 찾아서 비추어가도록 흐른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 삶도 강물과 같으리라. 나는 강과 강둑을 따라 남서쪽으로 내려가며 계속 울었다. 이제 더 이상 절대 눈물을 흘릴 일은 하지 않겠다. 영산강이었다.

[약력]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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