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대화, 미국과 북베트남 평화 협상 실패

‘관군에서 의병으로’ 시평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3월 24일(목) 13:29
이병록 소장 덕파통일안보연구소
베트남은 평화체제와 평화협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반면에 가장 성공적이며 지금도 잘 작동되고 있는 평화체제는 이스라엘과 이집트, 요르단과 이스라엘 평화조약이다. 이스라엘은 가장 긴 국경의 요르단, 이집트와 평화체제를 만듦으로써 적대적인 아랍국가와 대결에 있어서 선택과 집중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 내용은 베트남 전쟁 당시에 국방부 장관과 국무부관리들이 북베트남 군인과 외교관들이 대화를 통해서 적과의 대화와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체험한 생생한 얘기이다. <적과의 대화>라는 책은 1997년 하노이에서 두 나라 전쟁 책임자들이 3박 4일간 토론을 벌였던 내용이다. 미국과 북베트남은 처절한 전쟁으로 베트남인 3백만, 미군 5만 8천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베트남 전쟁에 대한 미국 관점미국은 1965년 3월 본격적인 지상군 전개를 시작한다. 그해 여름 국무차관 조지 볼이 “이길 징후가 전혀 없는 이상, 남베트남에 집착하기보다 가능하다면 협상을 통해 가능한 한 빨리 발을 빼야 한다”고 한다. 맥나마라는 베트남 현지에서 수차례 증파 요구에 7월 21일, “북베트남이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시키고, 전쟁 흐름을 바꿀 수 있기에, 충분한 미군과 남베트남군 세력을 증강”하자고 존슨 대통령에게 제안한다.

그러나 맥나마라는 “군사적인 전개와 동시에 정치적인 행동을 활발히 해야 한다. 시기가 무르익었을 때 정치적 협상이 가능하도록 협상 통로를 준비해 두어야 한다. 미국에 유리해질 때 협상을 통한 해결을 해야 한다” ····중략“····이러한 노력은 전쟁 흐름이 바뀌기 전에는 헛수고가 될지는 모른다. 그러나 노력을 해야 한다”고 협상 여지를 남긴다. 미 정부 내에서 감내할 수 없는 비용과 희생자, 믿을 수 없는 부패한 남베트남 정부 때문에 전쟁에 대한 의문이 늘어난다. 이에 맥나
마라는 1965년 12월 17일 대통령에게 “이대로는 군사적 승리 가능성이 1/2 혹은 1/3에 불과하다” 다른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우선 잠정적으로 북폭 중지요청을 했다. 군부는 북폭이 하루가 중지되면 미군이 심각한 피해를 본다며 맥나마라와 격렬하게 대립한다. 1966년 1월 말 북폭이 다시 시작되었으나, 군사작전도 실패하고 일곱 차례에 걸친 비밀 평화협상도 실패한다. 북폭을 계속하면서 평화협상을 제의하는 미국에 대한 북베트남 입장 북베트남에서는 북폭이라는 민간인 폭격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의 평화협상 제안을 위장 전술로 판단한다.

미국에서 북베트남을 접촉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여러 나라를 통해서 중재 요청을 한 것을 오해한 것이다. 또한, 평화협상 제안을 북폭을 개시하고, 지상군을 투입하고 나서 제안한 목적이 협상할 마음이 없다면 목을 졸라 죽이겠다고 협박하는 것으로 느꼈다. 그리고 폭탄이 쏟아지는 가운데에 폭탄을 투하한 장본인과 평화협상
을 하고 있다고 국민에게 설명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굴욕을 갚기 위해서는 지상전에서 미군을 쫓아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확신했다.미국은 협상할 의사가 있다면 북폭을 중지해야 한다고 각국으로부터 경고를 받고 있었다, 미 대통령은 힘이야말로 하노이에 대한 올바른 처방전이라는 생각을 바꾸지 않았다. 북폭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이 점차 드러나고, 도중에 맥나마라와 중앙정보국도 북폭에 반대했다. 그러나 전시라도 공습을 중지할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군인들에게 이해시키는 것은 매우 곤란하였고 설명할 수도 없었다.

전시에 정부 내에서 민간과 군인 사이에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는 문제가 있다.마리골드 협상이 회담이 가장 근접한 협상이었다. 미국과 베트남 대표가 폴란드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11월 10일 이후에 북폭이 중지되어 북베트남이 적극적으로 응한 것이다. 그런데 12월 3일과 4일에 하노이 폭격이 다시 시작되어 미국이 협상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한다. 기상 불량으로 미뤄졌던 폭격이 시작된 것이다. 미군은 전황이 악화하여 오히려 북폭을 늘리자는 압력이 날로 증가했고, 40일간 중지를 실패라고 생각했다. 미군은 “지금 폭격을 그만두면 미국 병사가 죽는다. 그래도 좋은가?” 그런 말을 들으면 평화 협상파는 더는 말을 할 수 없었던 분위기였다. 악천후로 잠시 북폭이 중지된 사에 협상이 일부 진전한 것뿐이다.

1967년 말 소련 수상이 미국에 와서 평화협상을 다시 제안한다. 미국 제안은 정전, 군대철수, 선거, 베트콩 정치 참가, 통일 인정이었다. 북베트남 조건은 정전, 미군철수 및 폭격중지, 제네바협정준수, 외국군 철수, 남베트남 미래는 국민이 결정, 평화적 통일은 베트남인에 의해 실현하는 것으로써 1973년 제네바 협정과 별 차이가 없다. 1968년 존슨은 북베트남의 조건에 동의하고 북폭을 중지했다. 그 결과 협상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미국은 북폭이 계속되는 사이에도 양국 지도자들 행동 여하에 따라 평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북베트남은 폭격을 당하는 상황에서는 평화 기회 따위는 없다고 일관했다.

폭격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큰 인식 차이가 있었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권력은 군의 논리에 강하게 지배받는다. 정치인들은 평화가 깨지는 상황에서 평화를 회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정전상태이지만 평시 상황에서 주적, 선제타격 등 적대 상황을 조성하는 야당 집권정책은 한반도 평화를 위태롭게 한다. 미국은 1954년 제네바 협정 총선 약속을 지켰다면, 전쟁 과정을 겪지 않고 현재 상황에 이를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 양국은 포괄적 동반자 관계로써 정치인들이 냉철하게 판단했다면 필요 없는 전쟁에 국민만 희생된 것이다.

[약력]
예비역 해군 제독
정치학 박사/수필가
100북스학습독서공동체 이사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동명대학교 교수 역임
서울대학교 외교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평화통일시민연대 공동대표
전)서울특별시 안보정책자문위원
전)합동참모본부 발전연구위원
영암일보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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