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청하건대 내 주여 산 아이를 그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다른 여자는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열왕기상 3:26)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3월 31일(목) 13:43
김종수 목포산들교회 목사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솔로몬 왕의 지혜로운 재판이 있다. 창녀인 두 여자가 한 아기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며 다투다가 그 아기를 데리고 솔로몬 왕에게 찾아왔다. 솔로몬 왕은 칼을 가져와 아기를 둘로 나누어 두 여자에게 반씩 주라고 명령한다. 공정한 분배를 통하여 이 소송을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가짜 엄마는 이 분배에 동의하지만, 친엄마는 차라리 아이를 저 가짜 엄마에게 주라고 말하면서 아이를 죽이지 말 것을 호소한다. 친엄마에게 중요한 것은 아이의 생명이었다. 이에 솔로몬이 아이의 친엄마를 가려낸다.

이 재판은 모든 것을 소유권이나 양적인 분배의 문제로 돌리려는 시각으로부터, 생명의 문제로 시각을 바꿀 것을 우리에게 요청하고 있다. 문제는 생명이다. 생명이 죽는 문제 앞에서는 소유권도, 공정한 분배도 아무 의미가 없다. 가짜 엄마 스스로가 말하듯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모두의 죽음뿐이다.

솔로몬의 재판 이야기는 결코 솔로몬의 지혜를 부각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두 엄마는 솔로몬 사후 남과 북으로 분단된 두 이스라엘을 뜻한다. 아이를 나누면 죽듯이 남북 분단은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며 서로 강대국의 힘을 빌려 침공하여 국력을 소진하더니, 결국 남쪽 유다와 북쪽 이스라엘 둘 다 처참한 종말을 가져왔다.

이것은 이스라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의 분단된 현실이다. 이념이라는 솔로몬의 칼로 우리도 나누어졌다. 강대국의 이해관계라는 칼로 나뉘었고, 38선이 생기고 휴전선이 생겼다. 이렇게 나누어진 분단의 현실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현실인가? 결국 제 형제를 서로 죽이는 결과밖에는 없지 않았던가?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모두를 죽이는 현실이 60년간 이어져 왔다. 생명의 문제 앞에서 이념이 그토록 중요한 것일까?

두 여자는 창녀이다. 창녀가 낳은 아이의 아버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므로 자식이 아버지의 소유라는 고대법에 비추어 보면 두 여자들 누구도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 남과 북 어느 누구도 정통을 주장할 수 없다는 말이다. 분단의 현실에서 우리는 모두 창녀와 다름없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우리 모두 ‘내 나라’임을 주장할 수 없다.

이것이 남북 분단의 문제뿐이겠는가? 영남과 호남으로 나뉘어 제 형제를 원수처럼 여기는 지역감정이 애향심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가? 또 오늘의 노사 관계가 서로 분배의 문제에만 집착한 나머지 상생보다는 서로를 죽이는 관계에 있지는 않은가? 지나가 얘기지만 환자의 고통과 죽음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의약 분업 사태는 또 무엇이었던가?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생명의 문제로 돌아와야 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55년이 되고 있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들이 최소한 이념 분쟁으로부터는 해방되었는데 오직 우리나라만 분단국가로 남아 있다. 생명(生命)이란, 말 그대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뜻이다. 생명의 절대 가치를 인정한다면 분단의 갈등과 반목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6.25 이 아침, 비가 내린다. 아직도 자르는 것이 정의인 양, 목소리를 높이는 이 나라에 흐르는 하늘의 눈물이다. 아직도 내 편, 네 편을 가르며 살고 있는 우리 스스로 흘려야 할 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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