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은 애써 같이 웃는다 에세이 '사랑의 방명록'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2년 05월 28일(토) 19: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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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평생 내 고향을, 아니 자신의 집을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곳에 내려온 지 이제 두 번째 봄을 맞이하고 있다.
나의 아저씨뻘이면서 동창인 그는 키 크고 등치도 우람했던 아버지를 술 때문에, 그가 결혼도 하기 전 여의었다. 그도 아버지를 닮아 훤칠했지만 도회로 나갈 생각을 접은 채, 아버지가 남겨놓은 월출산 자락 밑, 돌이 많은 야산을 혼자 개간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광주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를 찾아왔다.
“단감을 심고 싶은데 전망이 괜찮을까?”
그는 당시 그런 애였다. 자신이 결정을 마음속으로 이미 했어도 꼭 먼 길을 마다하고 나를 찾아와 나의 의향을 묻고는 했다.
“그 땅에 심을 것이 그게 제일 낫지 않을까?”
그래야 그는 안심을 하고 돌아갔다.
어느 날은 내가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수원까지 찾아와, 결혼을 하려는 여자가 있는데 나더러 한 번 봐주라며 사진과 신상명세서를 들고 온 적도 있었다. 그는 그 여자와 결혼을 했고 딸만 셋을 낳았으며 내가 귀향을 한 그 겨울, 그녀가 나에게 김장김치를 한 아름 안고 혼자인데 잘 먹으라 하며 주고 갔다. 지금도 가끔 먹을 것이 있으면 가져다주곤 한다.
그는 3천 평이 넘은 야산을 혼자서 개간했다. 들지 못할 돌이나 바위가 나오면 체인블록을 이용해 경운기에 실어서 밭에다 쌓았다. 그러한 연유로 인하여 그의 몸은 늘 피곤이 쌓였고 그것을 견디기 위하여 술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때는 하루 한 말이나 되는 막걸리에 의존하기도 했다.
내가 모든 사업을 말아먹고 빈털터리가 되어 다시 광주에 스며들었을 때는 이미 40대 중반이었다. 그는 해마다 감 농사를 잘 지어 어지간한 부농이 되었고 개간한 한쪽 터에다 새집도 지었다. 그는 광주까지 나를 찾아와 자신이 기르는 흑염소를 잡아 가지고 오곤 했다.
오십이 다 되어가던 어느 날, 내가 고향에 내려가 그를 보았을 때 튼튼했던 그의 몸이 뼈와 상접하도록 말라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간경화라고 했다. 그동안 몸이 좋지 않아 술을 끊은 지 상당한 시일이 지났으나 이미 예전의 술독이 그의 간을 서서히 죽이고 있엇던 것이었다. 내가 치료 방법을 묻자, 자신은 간경화 말기라서 자신의 간과 비슷한 성질의 싱싱한 간을 이식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 어차피 사람 몸에 간은 잘라도 잘 자라니 딸들에게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더니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내가 낳은 자식인데 나 때문에 무슨 일이 나면 내가 어떻게 되겠어?”
“그럼 내 간이라도 줄까?”
내 말에는 약간의 진심이 섞여 있었지만 그는 농담으로 받아들었다.
하지만 그는 어느 날인가 모처럼 얼굴에 생기를 띠며 말했다.
“중국에 가면 2억이면 이식을 할 수 있대. 어쩌다 황하에는 장기가 빈 시체가 떠내려 오기도 한대.”
내가 귀향하기로 마음먹은 3개월 전에 그는 병의 진행 상태를 점검하러 간 서울 어느 병원에서 죽었다. 내가 오면 자기가 알고 있는 농사짓는 일을 다 가르쳐준다고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내가 오면 자신이 알고 있는 좋은 사람을 소개시켜준다고 그렇게 으스댔는데.
나는 마당에 나서면 그가 자랐던 그의 집을 바라보곤 한다. 이제 그의 어머니도 요양병원으로 몇 달 전 실려가고 아무도 없어 허물어지고 있는 담과 처마를 보면서 내 간을 주지 못한 것에 대해 울컥한다.
싫다고 하는 나에게 그냥 얼굴이나 보라며 내 죽은 친구의 어머니가 계시는 요양병원에 요양보조사로 일을 하고 있는 여자동창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잘 아는 동생이 남편이 간암으로 죽은 지 오래됐다며 내 이야기를 했더니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읍 한가운데 자리 잡은 커피숍에서 만나 얼굴을 마주했다. 자식은 남매를 가졌고 술을 전혀 하지 못한 남편이 그만큼 자신에게 잘 해주었으나 B형 간암을 오래도록 앓고 난 후 간경화가 생기고 그것이 결국 간암으로 발전하여 죽었다고 했다. 내 친구의 퀭한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사람은 말이죠. 혼자는 살 수 없는 동물인가 봐요. 남편이 그리울수록 같이 있을 사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하는 것은 뭐죠?”
나는 내 앞에서 남편 이야기를 자주하는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저는 10년 넘게 혼자로 살아서 혼자 사는 것이 편합니다. 다만 설거지할 때만큼은 예외지만요.”
“저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해요. 다 비운 그릇을 치우고 난 후 개운함도 좋고요.”
이 여자와 같이 있으면 모든 것이 편하겠구나 하는 마음이 일었지만 느닷없이 집 주변의 초저녁 적막이 생각났다. 나만 이 마루에 앉아 바라보는 밤하늘과 별들, 나무들의 어두운 침잠. 고요 속에서 피우는 담배가 주는 외로움의 단절. 이제는 그것들이 내 삶에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너무 오래 혼자 였기에.
다음날 나는 텃밭에 멀칭을 한 다음 땅콩을 심고, 흐르는 땀을 씻기 위해 샤워를 하려고 내 손길르 다듬어진 목욕탕에 들어섰다. 조그만 창문으로 친구 집이 보이자 그가 생각났고, 뱃살이 처진 알몸에 뜨거운 물을 흘리자 그녀가 생각났다. 참 인생이란 그립고 어렵구나 하며 뿌옇진 거울을 바라다보았다. 거기 한 추레한 사내가 일그러진 모습으로 애써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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