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왓슨만에서 만난 연주자 가족 & 72세인 박 기자의 어머니 <1> 자하 옹의 ‘자하산방’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2년 06월 25일(토) 16: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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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만톤 급의 거대한 유람선이다. 승선 인원 4?5층에 3,800명, 대형버스? 화물차(1층)/중형차고지(2층)/승용차(3층). 500대를 적재할 수 있다니.(앞뒤가 터져 있다) 쾌적한 선실 분위기들이며, 카페, 식당, 아이스크림. 그러나 선상 발코니에서 내려다보는 스왓슨만과 빅토리아섬 해협의 바닷물은 검붉게 죽어버려 찌들은 물. 종말처리장에서 여과되어져 나온 물 색깔 그대로였다. 비록 기름띠는 없었지만 갈매기도 찾아볼 수 없는 빅토리아 아이슬랜드.
제주도의 21배라니. 그 큰섬의 광활함은 가히 짐작이 간다. 숲 속의 평화로운 저택들. 거리에도 공원에도 잉카 문명의 잔해가 살아있구나. 목신들의 그 부릅뜬 눈이며 유별나게 표출을 강조한 남근사상. 원색의 문양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가람의 사찰 일주문을 지나 사천왕상 앞, 그 무시무시하게 부릅뜬 눈망울로 호통을 칠 듯해 그 위압에 섬짓해졌던 기분이구나.
역마차가 오가며 그리고 자전거 뒤에 매달은 인력거로 섬 관광을 한단다.
부츠를 신은 팔등신 미녀가 마부였다. 빅토리아 항구의 밤은 더욱 호화찬란했다. 바닷물에 비춰지는 평온한 조명들, 그리고 그 옆에 주지사 건물의 방울 조명은 크리스마스 이브를 연상케 하고, 거리의 악사들, 파이프피리를 부는 멕시칸, 악사의 바구니는 동전 몇푼 뿐. 자신의 슬픈 자화상을 파이프피리에 담아 부는 쓸쓸함에 1$ 지폐를 넣어주는 내 마음. 한참이나 되었을까. 같이 동행했던 일행들은 아무도 없고 나 혼자였으니. 항구 산책로를 한참이나 갔을까. 반가운 박 기자의 부름. 그도 역시 혼자였다.
선착장 통나무에 앉아 젊은 날 좌절하며 방황하고 고뇌했던 시절. 대학에 낙방하여 전라도 어느 산사(변산 내소사)를 눈 내리는 겨울밤 혼자 걸으며 대학(명문)에 꼭 들어가야 하는가? 화두처럼 독백하고 사유했던 이야기들을.
신부님 앞에서 고해성사처럼 털어놓고 싶단다. 가슴 속에 묻어둔 채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했다는 아픈 과거들을. 아버지(그는 소년 시절 아버지를 잃었다한다)나 선생님같은 따스함을 느꼈기에 자신의 아픈 생채기를 건드린다면서.
속 깊었던 아픔들이 많았던 모양이다. 지금의 서울 압구정동, 아버지는 의붓아버지.(소년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는 말에 대해서) 그의 쾌활하고 구김살없는 미남형의 얼굴과는 너무도 상반된.
이렇듯 우리 저마다의 가슴 속엔 그 누구라도 대신해서 풀어줄 수 없는 아픈 생채기들이 딱지처럼 항상 붙어있기 마련이다.
72세인 박 기자의 어머니
그의 고운 피부와 교양있는 매너에선 어느 곳 하나 어둠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는, 잔 주름도 없는 아름다움이었으니. 까맣게 비록 염색은 했지만.
바람결에 피아노 연주음악이 들린다. 관람객 하나 없는 그 옆엔 돌도 채 되지 않은 듯 보이는 아기를 안은 아빠(피아노 연주자의 남편)가 밤바람이 차갑다고 아내 무릎에 담요를 덮어준다.
왠지 평화스러워 보이면서도 그들 부부가 한없이 불쌍해보였다. 박기자와 내가 동전 몇 푼 있는 빈 바구니에 지폐 2$를 넣어줄 때 눈가를 스치는 슬픈 미소의 감사 표시.
마음같아서는 10$를 주고 싶었지만 그들에겐 ‘동정’같은 정서가 실례될 것 같아서. 위대한 사랑, 유모레스크. 마음에 와 닿는 연주 음악들에 왠지 마음이 자꾸 무거워지는 것일까.
음대를 나와서 무대 위의 스포트라이트와 환호, 갈채를 받아야 할 나이에 저토록 쓸쓸하게 빅토리아 항구 선착장에서 빈 바구니의 썰렁함 앞에서 연주를 해야 하다니.
다음 호에 계속…
영암일보 ya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