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암 조광조와 학포 양팽손의 우정 이야기

김오준의 '심심풀이 한국사'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7월 06일(수) 15:55
김오준
논설주간
‘정암 조광조’는 조선 왕조 500년 이래 최고의 올곧은 사대부로 꼽힌다. 본관은 한양, 호는 정암이며 1482년 한성부 출신으로 조선 개국공신 조온의 5대손이다. 아버지는 사헌부 정 6품 감찰 조원강이요, 어머니는 여흥 민씨 부인이다.

조광조는 17세 때 역참을 관리하는 종6품 어천찰방으로 부임하는 아버지를 따라가 ‘조선 5현’ 중 으뜸으로 꼽는, 무오사화로 희천에 유배 중이던 점필재 김종직의 수제자 한원당 김굉필에게 수학해 훗날 사림파의 영수가 되었다.

그는 오직 학문에만 전념해 ‘광인(狂人)’이라는 별호에 항상 의관을 단정히 갖추고 언행도 신중해 매사를 절제한 선비의 표상이었다.

1510년(중종 5년) 28세에 사마시 진사과에 장원으로 합격,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 들어가 수학했다.

같은 해 여섯 살 아래인 사마시 생원과 장원 합격의 전라도 화순 출신 학포 양팽손을 만나 성균관에 함께 입교했다. 학포를 ‘전라도 촌놈’이라고 무시하던 성균관 유생들을 나무라며 끝까지 학포와 지란지교의 우정을 꽃피웠다.

1506년 중종반정을 주도했던 공신들이 대거 사망한, 1515년(중종10년) 성균관 유생들과 이조판서 안당의 추천으로, 정암은 종6품 조지서 사지에 초임되었다. 여론이 분분하자 그 해 가을 알성문과에 을과로 입격하여 전적, 감찰, 예조좌랑을 지냈으며 중종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다.

정암은 유교로 정치와 교화의 근본을 삼고 지치주의에 입각한 왕도정치의 실현을 꿈꾸고 경연 때마다 역설했다. 사간원 정언의 언관으로 재임시절, 중종의 제1계비 장경왕후 윤씨가 죽자 계비 책봉문제가 거론되어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등이 중종의 원비 단경왕후 신 씨를 복위시킬 것과 신씨의 폐위를 주장했던 공신 박원종을 처벌할 것을 상소하다 김정, 박상등은 오히려 탄핵을 받아 귀양을 가게 되었다.

이때 조광조는 상소한 신하를 처벌함은 언로를 막는 행위로 나라의 존망에 관계되는 일이라고 강력히 주청해 ‘용기 있는 선비’로 각인되어 사림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수찬을 역임하고 이어서 정랑, 교리로 경연시독관을 겸임했으며, 향촌사회의 상호부조를 위해 향약을 조선 8도에 실시하도록 건의하였다. 주자학이 사장(詞章)에만 치우쳐 도학이 경시됨을 지적해 조선시대의 풍습과 사상을 유교식으로 완전히 바꾸어 놓은데 앞장을 섰다. 사대부는 물론, 백성들까지도 주자의 가례를 지키게 하고 상례 등 5례를 엄히 따르고 젊은 과부의 재가도 과감히 막아 버렸다.

1518년 정3품 홍문관 부제학이 되어 유교의 이상정치를 구현키 위해 군왕이 먼저 마음을 바로잡고 군왕수업을 철저히 하여 몸소 실천궁행하는 왕도정치를 펼치는 길만이 왕조를 보전하는 길이라 역설하며 중종을 압박했다.

정암은 미신 타파를 내세워 소격서의 폐지도 강력히 주청, 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소격서도 과감히 혁파했다.

그 해 11월에는 종2품 사헌부 대사헌으로 승진 되었다. 천거제인 현량과를 실시해 김식, 안처겸, 박훈, 김정, 박상, 이자·김구, 기준, 한충 등 소장학자들을 요직에 대거 등용했다. 때 묻지 않은 신진사류들을 중앙정계에 진출시켜 훈구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질서의 개혁에 나섰던 것이다.

1519년(중종 14)에는 훈구세력인 반정공신들을 공격했다. 중종반정의 정국공신이 너무 많음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유자광 같은 인물들은 반정에 참여하지도 않았는데 공신에 뽑혔고 이러한 잘못된 논공행상은 소인들이나 꾀하는 것이라며 신랄하게 비난했다. 공신들이 권좌에 올라 국정을 다스리는 데 이(利)를 먼저 추구하고 있으므로 바로잡지 않으면 나라를 지탱하기 힘들다고 주창하였다. 반정공신록을 개정해야 하고, 공이 없으면서 녹을 함부로 먹고 있으므로 삭제함이 옳을 것이라는 위훈삭제를 강력히 주청하고 나섰다.

그러나 신진사류들의 이같은 주장을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들이 쉽게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이미 반정공신들은 원로가 된 채 신진사림들의 개혁을 거부했고 중종도 내심으로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래도 끝까지 밀어붙여 2, 3등 공신의 일부와 4등 공신 전원을 포함 76인의 훈작을 삭탈면직 시켰다. 이러한 급진적인 정암의 개혁은 마침내 훈구파의 강한 반발과 원한을 사 홍경주, 남곤, 심정 등은 경빈 박씨 등 후궁을 움직여 왕에게 조광조 등 신진사류를 무고하도록 공모했다.

대궐 나뭇잎에 과일즙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는 글자를 써 벌레가 파먹게 한 다음 궁녀로 하여금 왕에게 바쳐 의심을 조장시켰다.

홍경주와 김전 남곤, 이장곤, 심정 등은 밤에 신무문을 통해 비밀리에 중종을 만나 조광조 일파가 당파를 조직, 조정을 문란하게 하고 있다고 탄핵하였다.

이에 평소부터 신진사류를 비롯한 조광조의 도학정치와 과격한 신진 사류들의 언행에 염증을 느낀 중종은 탄핵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 조광조와 김정, 김구, 김식, 윤자임, 박세훈 등을 투옥했다. 김정, 김식, 김구와 함께 정암도 사사의 명을 받았으나, 영의정 정광필의 간곡한 상소로 화순 능주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정적인 훈구파 김전, 남곤, 이유청이 각각 삼정승에 임명되자 이들의 주청에 의하여 그 해 12월 사약이 내려졌다. 이때가 기묘년이었으므로 이 사건을 ‘기묘사화’라 한다.

결국 신진사류들이 거상들과 검은 거래를 일삼았던 부패세력인 훈구파를 축출, 새로운 정치질서를 세우려던 개혁은 실패하고 말았다. 실패 원인은 그들이 대부분 젊고 또 정치적 경륜도 짧은데다가 개혁을 급진적이고 너무 과격하게 이루려다가 노련한 훈구세력의 반발로 되치기 당한 것이다.

군왕의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은 중종의 작은 그릇도 한 요인이었다. 율곡 이이는 ‘석담일기’에서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류들의 실패를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옛 사람들은 반드시 학문이 이루어진 뒤에나 이론을 실천했는데, 이 이론을 실천하는 요점은 왕의 그릇된 정책을 시정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질고 밝은 자질과 나라 다스릴 재주를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학문이 채 이루어지기 전에 정치 일선에 나간 결과 위로는 왕의 잘못을 시정하지 못하고 아래로는 구세력의 비방도 막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가 도학을 실천하고자 왕에게 왕도의 철학을 이행하도록 간청하기는 했지만, 그를 비방하는 입이 너무 많아, 비방의 입이 한 번 열리자 결국 몸이 죽고 나라를 어지럽게 했으니 후세 사람들에게 그의 행적이 경계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기득권 세력인 훈구파의 강력한 저항과 신진사류들과 정암의 도학정치와 과격한 언행에 염증을 느껴오던 중종은 탄핵을 받아들여 정암을 능주에 유배시켰다.

학포 양팽손은 소를 올려 정암의 무고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자 정5품 홍문관 교리의 벼슬을 사직하고 고향인 화순으로 내려와 날마다 정암과 학문을 논하며 위로했다. 정암은 북쪽 한양도성을 바라보며 꿈속에서도 중종을 그리워하며 돌아갈 날을 고대했다.

짧은 25일의 유배 기간 동안 학포의 아들 송천 양응정은 이때 정암의 제자가 되었고 양응정이 훗날 중앙정계에 진출해 율곡 이이의 과거 시험관인 좌주문생이 되어 기호학파의 호남인맥 구축의 단초를 정암이 제공한 것이다.

38세 한창 일할 나이에 정암은 아깝게 생을 마감했다. 약사발을 마시는 순간까지도 유배의 현실을 인정치 않았다. 눈발 속에 사약을 마시는 친구 정암의 죽음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학포는 피눈물로 통곡했고 죽음을 무릅쓰고 역적으로 몰려 죽은 친구의 시신을 뒷산에 가매장했다. 그 골짜기를 ‘조대감골’이라 부른다.

선조 때에 이르러 정암은 신원이 되어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정암 조광조가 사림의 영수로서 본격적인 활동을 한 것은 1515년부터 1519년까지의 만 4년 동안의 짧은 기간이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일 정암이 흔들림 없는 중종의 계속된 신임 속에 그가 꿈꾸었던 개혁이 완수 되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크게 바뀌었으리라 애석해 했다.

예나 지금이나 완전한 개혁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닌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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