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있는 사람

김종수 목사의 ‘하늘샘물 흐르는 곳에’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7월 06일(수) 16:04
김종수
목사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시편 1:1~2)

1절이 복 있는 사람을 부정적으로 말했다면 2절은 긍정적으로 말한다. 그러나 '오직'이라는 말이 붙는다. 행복은 단 한 가지에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단 한 가지가 우리가 거북살스럽게 느끼고 있는 '율법'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 생각에 '율법'이라는 말은 왠지 우리를 얽매이게 하는 것으로 보인다. 부자유하고, 경직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런데 시편 기자는 그것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일반적인 행복관을 뒤집는다.

급하게 길을 건널 때 빨간 불이 켜져 있으면 짜증이 난다. 왜 이럴 때 빨간 불인가 싶다. 그러나 그 빨간 불이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불이다. 율법이 시시콜콜한 잔소리로 느껴진다. 잔소리 많은 부모 같다. 이것은 해라, 저것은 하지 마라 하는 부모의 잔소리 같다. 알고 보면 모두 다 내 행복을 위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법에 매이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한다.

행복한 부부는 서로에 매인다. 부부의 행복은 매이는 것을 즐거워하는 것에 있다. 부모 자식 간의 행복은 부모는 자식에게 매이고 자식은 부모에게 매이는 것을 즐거워하는 데 있다. 매이는 것을 즐거워 해야 성숙한 행복을 이룰 수 있다. 감각적이고 찰나적인 행복이 아니다.

결혼 생활의 행복은 가정에 매이고, 학교 생활의 행복은 학교에 매이고, 신앙 생활의 행복은 하나님과 교회에 매이는 것이다. 언젠가 '질서란 자유롭고 편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는 표어를 본 적이 있다. 질서는 사람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자유를 준다. 행복한 자유는 제멋대로의 자유가 아니다. 행복한 자유는 낮아지는 자유, 절제하는 자유, 양보하는 자유, 참는 자유, 희생하는 자유이다. 율법의 이런 깊은 의미를 아는 사람은 오히려 행복하다. 그렇기에 그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하라는 것이다.

거지 스님 중광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중광은 꼴초가였다. 밥 먹을 때도 피울 정도이다. 하루는 친구가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중광이 담배를 안 피고 있었다. 그래서 친구가 "자네 왜 담배 안 피나?"라고 물었다. 그러자 중광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여보게, 피울 줄 알면 끊을 줄도 알아야지."

주어진 삶 자체가 율법이다.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해야 될 것을 하는 자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는 자유, 이것이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의 행복한 자유이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이 기사는 영암일보 홈페이지(www.yailbo.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yailbo.com/article.php?aid=1289315851
프린트 시간 : 2026년 09월 26일 15:44: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