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일본 총리 ‘아베 신조’의 가계 이야기

김오준의 '심심풀이 한국사'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07월 14일(목) 13:36
김오준
논설주간

지난 7월 8일, 일본 나라현에서 참의원 선거 유세하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총격당해 사망했다.

사인은 총상에 의한 과다출혈로 확인되었고 경호 실패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진 가운데 일본 전역은 큰 충격에 빠졌다며 매스컴들은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는 8일 오전 11시 30분이 나라현 나라시 야마토 사이다니, 지역 앞 거리에서 가두 유세를 하던 도중 일본인 야마 가미 데쓰야(41)가 쏜 총에 맞고 쓰러진 뒤 병원으로 후송됐지만, 오후 5시 3분께 결국 숨졌단다.

사인은 좌측 쇄골 아래 동맥 손상에 따른 과다출혈로 판명 났으며 부검을 마친 아베 전 총리의 시신은 도쿄 자택으로 옮겨졌고. 고인의 장례는 오는 12일께 치러질 전망이다.

8년 8개월이라는 일본 정치사상 최장수 재임 기록을 가진 전직 총리이자, 일본 극우 정치권의 상징적 인물인 아베는 사망 당일까지 자민당을 지원하는 유세를 펼치다 비명에 간 것이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사건 현장에는 나라현 경찰관과 요인 특별 경호를 담당하는 경시청의 'SP(Security Police)' 요원도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사건 당시 구체적인 경비 인력 상황을 밝히지 않았지만, SP 요원 1명과 나라현 경찰의 사복 경찰관 등 수십 명이 배치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비 병력은 아베 전 총리를 중심으로 사방 360도에 있었지만, 범행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경찰의 경호 실패로 전직 총리가 유세 도중 사망하는 최악의 총기 테러 사건이었다. 아사히신문 등은 야마가미가 경찰 진술에서 자신의 어머니가 심취한 종교 단체와 아베 전 총리가 연관된 것으로 생각한 단순 살해였다고 보도했으나 그 배경과 진실은 차차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

테러 용의자는 정치적으로 극우 우익 성향인 아베 전 총리를 노린 확신범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유로 행동한 '외로운 늑대'라고 애써 분석하며 정치적 테러가 아니라고 연일 보도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

야마가 미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가 종교 단체에 빠져들어 많은 기부를 하는 등 가정생활이 엉망이 됐다"라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신문들은 연일 전했다. 경찰은 야마가미가 총격에 사용한 검은 테이프로 감긴 사제 총을 압수하고 조사 중이다. 용의자는 해상자위대에서 자위관으로 재직했으며 당시 소총의 사격과 해체 조립에 대해서 배운 것으로 확인되며 범행을 위해 그 나름대로 준비를 철저히 했던 것 같다.

예기치 않은 아베의 사망 소식은 솔직히 만감이 교차한다. 지난 2019년 7월, 일본 총리였던 '아베 신타로'는 대일감정의 옹졸한 앙갚음 속에 우리나라에 대한 강경한 무역 제재로 한·일 양국 관계는 심각했고 우리나라는 매우 어려운 국면을 맞이했다.

이때 우리나라 일부 보수 언론과 친일 정치인들은 온갖 호들갑을 떨며 우리 정부의 외교 노선을 질타하며 당장에 아베에게 사죄하라고 주문했다.

1905년 11월 17일 덕수궁 중명전에서 이등박문과 을사오적들이 체결한 '을사늑약'의 그 장면이 오버랩됐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오히려 이 위기가 도약의 기회가 되어 일본만 무역전쟁에서 큰 피해를 보게 되었으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킨 계기를 만들었으며 2021년 6월 스위스에서 개최된, 국제 정상회의에서도 일본 총리 스가는 코로나19 극복의 모델이 된 우리나라의 문재인 대통령을 기피하여 세계 각국의 언론으로부터 질타와 비난을 받았다.

아베의 죽음을 놓고 세인들의 이슈가 된 현시점에 1894년 갑오 농민혁명 때부터 2022년 7월 8일 사망 직전까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에게 저질렀던 온갖 정치적·경제적 침탈행위를 저질렀던 아베의 가계사를 대충 살펴보고자 한다.

아베의 가계는 대일제국의 근대화를 정립한, 야마구치현 하기마을의 '송하학수'을 연, 일본 근대화의 선구자 '요시다·쇼인'으로부터 뿌리를 두고 출발한다.

'정한론자'였던 사이고 다까모리 을미사변과 을사늑약의 주역 이등박문. 가쓰라·태프트 밀약의 가쓰라.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노부유키·만주국 총독 기시 노부스케 등이 모두 요시다 쇼인의 문하에서 배출되었다.

아베 신조의 고조부였던, 기시 마루 미사 요새는 1894년 청일전쟁 때 일본 육군 소장으로 조선의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한 후 청일전쟁을 일본의 승리로 이끌었고 동학혁명군을 몰살시킨 전형적 쪽바리로 귀국 후 고향에서 시장까지 지냈다.

조부인 아베·노부유키는 조선의 마지막 총독으로 1944년 7월 24일부터 1945년 8월14일까지 재임했으며 제 2차 세계대전의 1급 전범이다. 아베·노부유키는 전범으로 몰리자 거짓 할복자살을 시도하고 친구였던 일본 점령군 사령관 미국의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의 도움으로 무죄판결을 받은 쇼맨십의 대가이다.

더글러스 맥아더 원수와 아베 가문과의 인연은 맥아더의 아버지였던, 아서 맥아더 육군 소장이 주일대사관 무관으로 일본에 근무할 때 사관학교를 졸업한 아들 육군 중위 더글러스 맥아더를 일본에 근무케 했다. 이때부터 5살 연하인 맥아더와 친구로 일찍이 인연을 맺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후 전범으로 의당 처형되어야 함에도 아베의 조부와 외조부까지도 그 오랜 인연의 끈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

맥아더 원수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 채 지금도 진행되고 있다. 맥아더가 한국전쟁에서 세운 그 공적은 인정하나 안타깝게 우리 대한민국보다는 친일 계 군인이었다는 사실은 너무도 분명했고 아베의 조부와 외조부를 일찍이 알게 되었고 해 묵은 인연 때문에 전범들을 살려줄 정도로 가까웠다는 사실을 우리는 직시 해야 한다.

조선 총독을 지낸 아베의 조부 노부유키는 조선을 떠나면서 망언하기를 "일본은 망한 게 아니다.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조선은 향후 100년은 일어서지 못한다. 일본이 강한 식민교육을 심었기 때문이다."라고 떠벌였으며 또한, "조선인은 무식하고 비위생적이다. 절대로 그들이 하나가 되어서는 안 된다. 분열만이 조선 통치의 지름길이다."며 태평양 점령군 육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와 군정장관 하지에게 조선을 인계할 때 사정없이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을 비하하며 1945년 9월 9일 항복문서를 조인했던 주무자였다.

이처럼 아베의 조부 노부유키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와 군정장관 하지는 우리나라를 무시한 채 1945년 9월 7일 맥아더 포고령을 내리고 점령군사령관이 되어 김구 등 상해임시정부 요인들과 몽양 여운형 등 국내의 민족지도자들을 철저히 배제한 채 이승만과 한민당 등 친미. 친일 세력들과 손을 잡고 신탁통치 기간을 길게 잡아, 우리나라의 정치적 한란을 더욱 가중한 그 배경에는 아베의 조부 아베 노부유키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베의 부친 아베 신 따로는 닛폰 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기자 생활하다가 장인인 기시 노부스케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하여 외상과 참의원을 지냈다. 아베의 큰 아버지인 사토 에이사쿠는 총리대신까지 올랐고 작은아버지는 항공대 장교로 영국군과 교전하다 전사했다.

외가 쪽을 살펴보면,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는 동경제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만주국 총독과 산업 차관을 지내며 만주국의 산업화 및 환경 개선 운동을 적극적으로 실시했다. 특히 박정희의 육사 스승으로 훗날 새마을운동의 기초를 기시 노부스케에게서 배웠고 쿠데타 후 의장이 되어 왜국을 방문했을 때 일부러 '다 까기 군'이라 불렀던 오만방자한 자였다.

아베 신조는, 공부를 지독히 싫어해 명문대를 진학하지 못하고 사립 세 이케이 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마친 후 친가와 외가의 든든한 배경을 큰 발판으로 일찍이 정치계에 입문한 금수저였다.

친가와 처가의 튼튼한 바탕에 힘입어 승승장구했고 정권 연장을 위한 노련한 극우 정치 곡예 등 온갖 줄타기를 하며 총리를 지내며 때때로 친한파와 반한파로 정치 노선을 바꿨던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었던 야누스적 정치인이다.

분명한 사실은, 외 조부 기시 노부스케와 조부 노부유키의 영향을 받고 자란 뼛속까지 철저한 극우파로 극우파들을 결집하고 조부의 가르침대로 "한국인은 무식하다. 그들과는 대화가 안 된다. 언젠가 닛폰 대제국의 찬란한 영광을 재현해야 한다."고 1급 전쟁범죄자였던 조부와 외조부를 모신 야스쿠니 재임 중 수차례나 신사 참배하며 해마다 총리 관저에서 '벚꽃 보는 모임'을 개최하며 찬란했던 대일제국의 망상의 섣부른 굴기를 꿈꾸었던 2,799일 동안 일본의 최장수 총리를 지낸 인물이다.

[약력]
다산학회 회원
영암학회 회원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한국지역문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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