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침략인가?

김종수목사의 '하늘샘물 흐르는 곳에'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2년 12월 22일(목) 11:12
김종수 목사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하니라.(여호수아 6:21)

보통 사람이라면 구약성서를 읽으면서 하나님의 잔인성에 놀랄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며 벌인 전쟁에서 이방 국가의 한 사람도 남기지 말고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대하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가나안의 백성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죽인다. 솔직히 주일학교 학생들에게 가르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방의 남녀노소, 이방의 모든 것을 죽이고 태우는 것을 이스라엘 율법에는 ‘헬렘’이라고 규정하여 엄격히 시행했다. 이 잔인함은 오늘날 팔레스타인 난민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량학살과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이스라엘만을 위한 하나님만 존재한다. 오직 이스라엘만을 사람으로 알고 다른 백성들은 사람도 아닌 짐승이나 다를 바 없는 존재로 취급하는 하나님만 존재한다. 이것이 아직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이스라엘의 이념 즉 시온이즘에 나타나 있다.
이렇게 볼 때 가나안 정복은 불의한 침략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지나온 세기 동안 성서 신학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나라를 세운 것을 ‘가나안 정복’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그런데 이 정복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성취로 미화하였을 뿐 이 약속의 도덕적 정당성이 무엇인지를 규명하지는 않았다.
가나안은 당시 여러 개의 군주 도시국가로 되어 있었다. 왕과 왕족들을 중심으로 권력 구조가 이루어졌다. 많은 백성들이 왕의 사명 양성과 왕궁의 건립과 운영을 위한 과중한 세금과 노역에 시달렸다. 과중한 세금으로 땅을 잃고 소작인이 되고, 빚에 쫒겨 자신과 자녀들을 노예로 바치는 억울한 일들이 비일비재하였다. 억울한 백성들의 신음소리가 하늘에 닿는 듯 원성이 높아만 가고 있었다.
때마침 멀리 히브리 노예들이 거대한 이집트의 폭정을 견디다 못해 이집트를 탈출한 사건이 일어났다. 출애굽 사건이다. 출애굽의 행렬이 가나안으로 향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가나안 내부의 소외되고 억눌린 백성들이 동요하기 시작했고, 밖으로는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 노예들과 동조하여 전쟁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쟁사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은 분명 억눌린 백성에 대한 해방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바로 이 해방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바로 그 말 뜻처럼 인간이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이다. 인간이 제 욕심대로 권력을 잡고 같은 사람을 노예로 삼고 억압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는 누군 평등하며, 공정하게 분배 받은 땅으로 살아가며, 억을하게 땅을 빼앗기는 일이 없는 그런 나라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나라를 세우고 특정한 한 사람에게 권력을 집중시켜 준 왕권 정치를 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지방자치제 같은 판관체제를 이룬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나라를 처음 세울 때 12지파로 나누어 땅을 분배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여리고성을 함락시킬 때 일곱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불었다는 말씀이 나온다(여호수아 6:4). 양각나팔이란 수양의 뿔로 된 나팔이다. 수양의 뿔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요벨’이라는 말인데 이 말은 ‘희년’이라는 말의 어원이기도 하다. 희년이란 7년을 일곱 번 거친 후 다음 해 즉, 50년이 되는 해를 가리키는 것으로 레위기 25장 8절 이하에 자세하게 나와 있다. 이 날은 양각 나팔을 불며 해방을 선포하는 날이다. 헤위기 25장 10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십 년이 되는 이 해를 너희는 거룩한 해로 정하고 너희 땅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방을 선포하여라. 이 해는 너희가 희년으로 지킬 해이다. 저마다 제 소유지를 찾아 자기 지파에게로 돌아가야 한다.’
양간 나팔을 불며 해방을 선포하는 희년에는 노예를 해방시켜 주고 경제 실패로 땅을 잃은 사람들에게 땅을 돌려주어야 한다. 나그네를 대접하고 과부와 고아를 보호해야 한다. 인간 해방이다. 자연에 대한 해방이다. 이 희년법의 근간은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데에 있다. 사람이든 땅이든 인간의 영원한 소유가 될 수 없음을 말하고 있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땅은 내 것이요, 너희는 내게 몸 붙여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면서, 군주가 모든 것을 소유하는 체제를 무너뜨린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리고 함락은 바로 이러한 체제의 함락이라는 혁명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가나안 성취의 일환인 여리고 함락은 단순히 야훼 하나님에 대한 무조건적 순종과 그에따른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차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 사건은 정치적으로는 폭압적인 왕권 체제의 청산, 경제적으로는 봉건 국가의 청산, 나아가 종교적으로는 물질적인 풍요의 신인 가나안의 바알 신앙을 청산하고 도덕적이고 영적인 야훼신앙으로의 회복을 담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사건은 사람다운 삶에로의 해방을 선포한 것이다.
‘남녀노소 할 것 없니 죽이라.’, ‘모든 이방의 물건을 불사르라’는 하나님의 명령(헬렘)은, 알고 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철저히 쓸어버려야 할 바알 신앙, 물질적인 풍요를 절대화하는 황금만능주의, 사회적 지위와 학벌로 사람됨을 평가하고 평가당하며 그것의 노예가 된 우리의 의식을 함락시켜야 한다는, 그래야 인간이 해방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rfo야 인간이 인간답게 어깨를 펴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진멸시킨 헬렘은 사람을 죽이고 모든 것을 태우라는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을 지배하는 모든 잘못된 의식에 대한 진멸을 담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나안 전쟁사는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세우기 위한 혁명사이다.

[약력]
현 목포산돌교회 목사
현 전남 NCC 회장
현 목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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