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훗날 너희 자손이 묻거든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여호수아 4:21)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3년 01월 05일(목) 11: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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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는 이 요단강 밑바닥의 돌을 이스라엘 지파 수에 맞춰 12개를 가져오게 하고 이 강을 건넌 직후 거기에다 12개 돌을 쌓아 ‘요단강 도하 기념비’를 세운다. 이 기념비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이 12개의 돌로 된 기념비, 지도자 여호수아와 그와 함께 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간의 고생스럽게 걸어온 길들을 기념하는 것일까? 결코 아니다! 이 기념비를 세운 목적은 분명 미래에 있다. 여호수아 4장 21절 이하는 이것을 말해 준다.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가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분명 이 12개의 돌들로 된 기념비 건립의 취지는 ‘미래’에 있다.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라는 말이 나타내 주듯이 분명 이 기념비는 ‘후일’을 위한 것이고, 미래의 ‘자손’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미래의 후손들이 있기까지, 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에서 후손들이 누리는 행복에 이르기까지는 조상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알려주어야 할 것이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이 기념비를 세운 날을 성서는 여호수아 4장 19절에서 분명하게 정월 십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단지 날을 알리는 것이 아니다. 정월 십일은 이스라엘의 절기에서 출애굽 사건을 기념하는 유월절의 어린 양 희생 제물을 준비하는 날이다.
또한 이 기념비를 세운 장소가 ‘길갈’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길갈’이라는 말은 히브리 동사 ‘갈랄’에서 온 말인데 이 말은 ‘굴려버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호수아 5장 9절에서 말하듯이 길갈이라는 말은 이집트 종살이의 수치스런 과거를 벗어던졌다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풍요한 가나안의 삶을 누리게 된 데에는 이집트의 종살이를 벗어나기 위한 조상들의 엄청난 희생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바로 그 고난으로 답변하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런 질문과 답변이 없다. 지난 70, 80년대의 고속 성장으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 우리 선배들이 뜨거운 열사의 나라에 가서 온 몸으로 일한 대가가 아닌가? 그들이 젊은시절에 베트남 정글에서 소중한 목숨을 바친 대가가 아닌가?
그러나 희망이 사라지고 있다. 오늘의 부를 이루기까지의 질문과 답변이 없다. 그저 현재를 누리고 즐길 뿐이다. 국가부도사태 운운하던 것이 언제인데 무절제한 과소비는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래는 불투명하다.
왜 그런가? 이유는 분명하다. 오늘의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지나간 부모들의 수고와 땀을 잊었다. 아니 우리가 잊어버리게 했다. ‘이 돌은 무슨 뜻이냐?’라는 질문이 없었다. ‘쌓아온 경제 성장의 탑이 무슨 뜻이냐?’라는 질문이 없다. 그저 오늘을 누리고 즐길 뿐이다.
우리는 분명하게 대답해야 한다. ‘이 돌은 무슨 뜻이냐?’,‘저 경제 성장의 기념비가 무엇이냐?’고 오늘 우리가 누리는 풍요에 대한 질문을 하게 하고, 그리고 대답해야 한다.
“네 아버지가 밤을 낮으로 알고 일하면서, 때론 뜨거운 사막에서, 때론 무시무시한 정글에서 목숨을 바쳐가며, 오직 일만한 땀과 피의 결과들이지.”
그러나 오늘의 젊은이들이 이 대답을 긍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과소비와 무절제에 취해 있는 우리 사회를 보면서 과거에 그토록 고생스런 세월이 있었다는 것을 믿는 젊은이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그토록 고생하여 쌓은 부라면 그토록 낭비하며 절제 없이 살 수 있겠는가? 오히려 이렇게 말해야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운 좋은 증권투자, 급작스러운 땅값 상승, 집값이 별안간 뛰어서, 그리고 졸부가 되어서…….”
이제 깊이 생각해 보자. 그리고 원점으로 돌아가자.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우리의 경제 분배는 확실히 잘못되었지만, 크건 작건 오늘의 부가 어찌 투기놀음 덕택이겠는가? 분명히 우리네 선배들의 수고와 고난 덕택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결코 방향을 잃어서는 안 된다. 가나안을 향한 ‘광야 고난길’이 출발점이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코 ‘운 좋은 한탕주의’가 만든 것이 아니다. 분명히 우리는 이 경제 성장의 기념비가 무슨 뜻이냐고 물을 때 지나간 세월 우리 부모의 희생을 말해야 할 것이다. 그 희생을 마음에 둘 때에야 오늘의 무절제와 과소비가 해결될 것이다.
‘이 돌들이 무슨 뜻이냐?’는 질문은 단지 부에 대한 질문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돌탑은 신앙의 탑이기도 하다. 이집트 노예에서 가나안 주인이 되기까지, 하나님의 약속과 성취, 그리고 그 숱한 고난의 과정들이 쌓인 탑이다. 그 돌탑은 오늘의 교회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다운, 그리스도의 영을 쌓은 교회일까? 아니면 제 욕심을 성토하는 자리가 되었을까? 훗날 우리 자손이 ‘이 교회는 무슨 뜻이냐?’고 물을 때 우리는 자랑스럽게 신앙을 말할 수 있을까?
[약력]
현 목포산돌교회 목사
현 전남 NCC 회장
현 목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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