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수의 전성기를 엿볼 수 있는 조훈현 바둑기념관으로 영암일보 박소연기자 yailbo@daum.net |
| 2023년 02월 02일(목) 1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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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주인공인 조훈현 9단의 인생을 담은 조훈현 바둑기념관을 알아보고자 한다. 조훈현 9단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처음 바둑을 접해 바둑판 앞에서 어린아이답지 않게 엄청난 집중력으로 아버지를 이길 정도로 금방 성장해왔다고 한다.
이에 조훈현 9단의 부친은 ‘유달기원’을 찾게 된다. 당시 다섯 살이었던 조훈현 9단은 기원의 원장과 대국에서 9점 바둑을 이기며 바둑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다.
한국기원 원생 시절에는 조훈현을 막냇동생으로 아끼고 도움을 준 선배 기사들이 많았다. 특히 동향 선배로 나중에 국수가 되는 김 인이 각별하게 조훈현 9단을 아꼈고 원생들의 사범을 자처했던 정창현이 반상 너머 조훈현 9단을 상대하며 튼튼한 실력을 키워냈다.
이에 1962년 그는 제16회 프로 입단대회를 통과해 최연소 프로바둑기사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아홉 살 프로기사의 탄생은 일본에도 없었던 전무후무한 일로 언론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세간의 화제가 됐다.
조훈현 9단은 1966년 만 13세의 나이로 일본기원 프로기사 입단했으며 1967년에는 2단으로 승단, 1969년에는 만 16세의 나이로 3단으로 승단했으며 1970년에는 만 17세의 나이로 4단에 승단해 4단이 될 때까지 33승1무5패의 무려 88.6%의 승률을 보였다.
조훈현 9단은 한국 바둑의 위상을 세계 정상으로 드높인 ‘바둑의 황제’, 기네스북 최다우승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의 트로피들과 그가 걸쳐간 바둑판, 상패 등, 그 당시 조훈현 9단의 대단한 업적들을 볼 수 있는 조훈현 9단의 고향인 영암에 있는 바둑기념관에서 바둑과 함께한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어떠할까 싶다.
조훈현 9단은 국내는 물론 세계 바둑 역사에서 유례없이 빛나는 업적을 세웠지만, 제자 이창호를 비롯한 후배 기사들의 도전이 거세지며 패배의 쓴맛을 상당수 맛보며 정상과 밑바닥을 여러 차례 오가는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생각의 힘’을 깨닫고, ‘인생에서 승패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라는 깨달음과 초연함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바둑을 대중적으로 확산시키기 위해 인터넷 바둑사이트에 투자와 경영을 맡는 한편 많은
젊은 바둑인들을 만나고 바둑 문화사업에 관심을 가졌다. 바둑황제 조훈현의 인생은 무수한 승부의 연속선에서 크고 작은 동락을 거듭하여 가파른 곡선을 달려왔다. 이제는 국제대회에 참가한다 해도 최고령 참가자가 될 만큼 숱한 격전을 치러온 터라, 그에게 남은 소명은 바둑 문화사업, 그는 지금도 바둑 문화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이제 바둑 문화사업은 그에게 필생의 과제가 되었다.
‘사람들은 현실에 불만을 갖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면 더 좋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깨달은 바로는 지금 여기, 바로 이 순간이 최고의 환경이다.’ -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에서
조훈현 9단은 아플수록 복기하라고 조언한다. 지금 현재가 지치고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조훈현 바둑기념관에서 조용히 그의 발자취를 따라 걸어보며 조언을 찾는 것은 어떨까.
영암일보 박소연기자 ya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