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적 김종수 목사의 '하늘샘물 흐르는 곳에'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3년 02월 02일(목) 10: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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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놀라운 기적 사건이 일어나자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아 따르려고 했다. 요한복음 6장 15절을 보면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으려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 눈에는 예수님이 분명 경제적 메시아였다. 저분을 섬긴다면 우리가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이런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 따르자 예수님은 그들의 마음을 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이 구절에서 ‘표적’이란 말에 주목하기 바란다. 일반적으로 기적은 희랍어로 ‘두나미스’라고 하는데 병자가 낫고 바다 위를 걷는 등 놀라운 기적 사건을 일컫는다. 그러나 표적은 희랍어로 ‘세메이온’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의미가 있는 기적, 메시지가 있는 기적을 말한다.
단지 외양으로 드러난 기적이 아니라 메시지를 담은 기적이다. 그렇기에 그 메시지를 보지 못하고 단지 먹고 배부른 것만을 보며 예수님을 따라온 무리들을 향하여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요한복음 6장 27절에서 말씀하신다.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것이 바로 오병이어의 표적이 주는 메시지이다.
단지 먹고 배부르게 하기 위해,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으킨 기적이 아니라는 말이다. 옛날 어른들 말에 ‘무식한 도깨비는 부적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아무리 중요한 내용의 부적일지라도 도깨비가 그 뜻을 모르면 그 부적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과연 이 기적, 이표적의 의미는 무엇일까? 예수님이 이 기적을 통하여 보라고 하신 ‘썩는 양식이 아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란 무엇인가? 육신적으로 배고픈 것은 정말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정신까지 흐려 놓는다. 언젠가 나도 학생 시절에 사정이 있어 몇 끼를 굶어 본 적이 있는데 배만 고픈 것이 아니다. 정신까지 이상해져 책상의 책이 갈비로 보이지 않겠는가?
몇 해 전 내가 목회하던 교회에서 청년 두 명과 금식 기도를 하러 기도원에 간 적이 있다. 대학 입시 재수를 앞두고 새로운 결단을 위해 나를 따라 금식 기도원에 가겠다고 해서 데리고 갔다.
이 청년들은 처음 해본 금식 기도였다. 두 끼를 굶고 밤이 되었는데 이 청년들이 기도는 안 하고 둘이서 밤새 먹는 이야기만 했다. 언젠가 맛있게 먹은 자장면 이야기, 불어 터진 라면도 맛있었다는 등. 다음 날 아침, 두 녀석 다 보이지 않았다. 날이 새자마자 산 아래 가게로 달려가 정신없이 빵을 먹고 있었던 것이다. 배가 고프니 기도도 안 나오는 것을 보았다.
배가 고프면 배만 고픈 것이 아니다. 가난하여 배고프면 고독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때론 비굴해지기도 한다. 배고픔,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래서 배고픔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단 내 배가 부르면 남의 고픈 배도 생각하고, 삶의 여유도 생기고, 인간성도 너그럽고 부드러워질 것이라고 여긴다.
과연 그럴까? 배부르면 인간성도 달라지고, 남도 돕고, 선한 일도 많이 하면서 살아가나?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 인간의 모든 문제가 풀리나?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안다. 부유하고 건강하면 남에게 베풀기도 하며 선한 일을 많이 하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가 더 잘 안다. 배를 채우고 나서는 맛있는 것, 더 쾌락적인 것을 추구한다. 범죄는 다 건강한 사람이 저지른다.
그렇기에 예수님이 썩지 않을 양식, 표적의 양식으로 오병이어의 사건을 보여준 것이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 비록 작은 것일지라도 나눔이 있다면 그 나눔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것이다. 썩지 않을 양식은 사랑이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풍성해진다. 이것이 오병이어의 표적이다.
[약력]
현 목포산돌교회 목사
현 전남 NCC 회장
현 목포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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