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처를 가진 추남-소크라테스 (1)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3년 11월 02일(목) 13:48
강성률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크고 둥근 얼굴에 벗어진 이마, 개구리처럼 툭 불거진 눈, 주저앉아 뭉툭해진 코, 두툼한 입술, 땅딸막한 키, 불거진 배, 그리고 오리걸음같이 뒤뚱거리는 걸음걸이, 여기에 몹시 거친 피부까지 거의 완벽에 가까우리만치 추남인 사나이, 과연 그가 누구일까? 바로 세계 4대 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소크라테스이다.
외모 지상주의가 팽배한 당시의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는 못 생기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고 한다. 철학자로서보다 먼저 ‘추남’으로 유명했던 그의 외모는 어린 시절부터 이미 장안의 화제였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이 아무리 놀려도 그는 밝고 건강하기만 하였다. 심지어 그는 자신의 용모에 대해 우스갯소리를 즐기기까지 하였다. 자기 눈은 사방을 잘 볼 수 있도록 툭 튀어 나왔으며, 길고 똑바른 코보다 뭉툭한 코가 냄새를 더 잘 맡는다고 자랑한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결혼할 당시 그의 나이는 50세, 아내인 크산티페는 25살이었다. 나이가 많은 추남과의 결혼에 대해 크산티페가 어떤 생각을 가졌을지에 대해서는 이후의 행적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소크라테스는 조각가인 아버지와 산파(産婆)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부친이 종사하던 직업이나 가족을 등한히 한 채, 후진 양성에만 전념하였다. 비록 가난하여 누추한 옷차림이었으나 그의 뒤에는 항상 많은 제자들이 따르고 있었으며, 그 가운데는 상류사회 출신도 끼여 있었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무보수로 이들을 가르쳤고, 기껏해야 저녁 한 끼로 만족하였다.
당시 철학자는 ‘가난’과 동의어였기 때문에 크산티페는 남편이 그 직업을 갖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썼다. 집에서 강론하는 남편을 들볶아대는데, 그 장면은 거의 지옥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그러나 아내가 잔소리를 할 때마다 소크라테스는 들은 척 만 척 했고, 그럴 때 아내는 더 큰소리로 욕을 하고 물을 퍼부었다.
이에 소크라테스는 “천둥이 친 다음에는 소나기가 오는 법이지!”라고 하며 껄껄 웃었다고 한다. 그녀는 심지어 남편을 뒤쫓아가 시장 한복판에서 옷을 마구 잡아당겨 찢기까지 했다.

이에 대한 친구들의 비난이 쏟아졌음에도 소크라테스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가 남편을 들볶아댐으로써 얻어지는 것이 있었으니, 크산티페가 못살게 굴면 굴수록 소크라테스는 불화가 끊이지 않는 집을 서둘러 나와 제자들과 철학적 담화에 빠져들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니체는 “소크라테스를 소크라테스로 만든 것은 크산티페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만일 그가 서재에만 파묻혀 지냈더라면 결코 그 유명한 철학자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다.

어느 날 스승의 ‘악처’를 염두에 두고 한 제자가 물었다. “선생님! 결혼하는 것이 좋습니까?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까?”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결혼하게. 온순한 아내를 얻으면 행복할 것이고, 사나운 아내를 얻으면 철학자가 될 테니!”그러나 악처는 한 명으로 끝나지 않았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아내’ 크산티페 외에 ‘어린 아내’ 미토르를 더 맞이한다.

소크라테스가 두 명의 아내를 가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기원전 404년)이 10년 차에 접어들어 소모전이 극심해진 데다 끔찍한 대역병으로 인해 아테네 성인 남자의 1/3이 사망해버린 시대적 환경이 놓여 있었다. 이 때문에 아테네 남성들의 중혼(重婚)을 허가하는 특별법이 통과되었던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두 아내와의 사이에서 아들 셋을 낳았지만, 여전히 살림살이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두 아내는 합세하여 남편을 향한 바가지를 무섭게 긁어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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