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법도 법이다!”의 본래 뜻 - 소크라테스 재미있는 철학이야기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3년 11월 16일(목) 11: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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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스파르타는 아테네에 서른 명으로 구성된 과두 체제를 세워 공포정치를 실시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이 위원회에 끌려가서 교육을 그만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이 명령에 복종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었는데, 과두 체제의 지도자 가운데 그의 제자와 플라톤의 큰아버지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과두정치가 무너지고 다시 민주제로 바뀌자 소크라테스의 정치적인 기반은 상실되고 말았다. 또한 당시 아테네를 지배하였던 야심가들에게 진리와 도덕을 강조하는 소크라테스는 매우 위험한 인물로 비쳐졌다. 그들은 소크라테스가 ‘첫째, 청년을 부패시켰고, 둘째, 나라에서 인정하는 신을 섬기지 않고 다른 신을 믿는다.’는 애매한 이유로 고소하였다.
소크라테스에 대한 재판은 500명의 배심원들이 판결하는 법정에서 진행되었다. 원고 쪽의 고소이유서가 낭독된 직후, 소크라테스는 직접 자기 자신을 변호하였다. 그러나 그 장면은 마치 피고를 향해 나무라는 검사의 모습과 비슷했다. 결국 소크라테스가 유죄냐 무죄냐에 대해 280대 220이라는 적은 차이로 유죄가 선고되었다. 이어서 형량에 대한 투표가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360대 140이라는 커다란 표차로 사형을 선고받고야 말았다. 소크라테스의 계속된 제청이 그를 무죄로 판결한 배심원들의 비위까지 건드렸기 때문이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은 스물 네 시간 안에 처형을 받게 되어 있었다. 그러나 마침 델로스 섬에 있는 아폴로 신에게 감사의 제물을 바치러 떠난 배가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소크라테스에 대한 사형집행은 연기되었다. 무사한 항해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나라에서 사형집행과 같은 상서롭지 않은 일을 금했기 때문이다. 마침내 배가 들어오는 날 아침 일찍, 그의 아내와 친구, 제자들이 감옥에 모였다.
어렸을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크리톤은 “돈은 얼마가 들든지 관리들을 매수할 테니 탈출하게나.”라고 권유하였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이제까지 나는 아테네 시민으로서 아테네 법이 시민에게 주는 특권과 자유를 누려왔네. 그런데 그 법이 이제 내게 불리해졌다고 하여 그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비겁하지 않은가?”하며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 대목이 오늘날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 라고 말했다는 부분이다.
그러나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사망 당시에 “죽으라고 하면 죽겠다. 이 더러운 세상.”이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그렇다면,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탈옥하기를 권하는 크리톤에게 소크라테스는 “나라가 나에게 부당한 선고를 했다고 해서, 국법을 어기는 것은 옳은 것인가?” 하고 물었다.
이에 대해, 구스타프 라드부르흐(19세기 독일의 법철학자)는 소크라테스가 ‘법의 깨뜨릴 수 없는 성질, 법적 안정성을 위해’ 순교한 것으로 해석하였다.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 역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하였다. 물론 악법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뜯어고쳐야 한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악법’이라도 지켜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온 세상이 무법천지가 되어 ‘악법’을 준수했을 때보다 더 큰 혼란이 오고야 말 것이다. 더 큰 희생이 따를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우려한 부분은 바로 이 지점이었지 않을까 짐작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법’을 악용하지 않는 것, 이 역시 소크라테스의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 아닐까?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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