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진실, 금지된 죽음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3년 12월 29일(금) 13:25
정순남 전 전남도 경제부지사 / 한국전지산업협회 부회장
의료기술의 비약적 발전으로 연장된 생명은 역설적으로 노년의 인간다운 삶을 훼손하는 치명적 사회적 시스템으로 굳어가고 있다. 우리들의 말년이 하나의 상품처럼 시장에서 공공연히 거래되고 있다.

도시주변에 우후죽순 생겨난 효(孝)로 포장된 요양병원과 시설은 `금지된 죽음`을 수용하는 합법적 감옥이 되고 있다. 오죽하면 요양원을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까지 부르게 되었겠는가! 저출산도 문제지만 고령층의 인간다운 죽음에 관한 불편한 진실을 더 심각하게 들여다 보아야 하는 이유다. 압축된 시간속에 급격한 산업화가 가져온 팍팍한 삶이 가져온 저출산과 고령화 추세는 한국의 곳곳에서 지방소멸, 생산인력 부족을 넘어서 심각한 국가위기로 다가오고 있다.

추석이나 설 명절이 되면 양로원이나 요양병원을 방문하곤 하였다. 요양원은 돌봄 자녀들의 부재나 자녀들의 경제적 이유로 인한 돌봄의 포기, 장기요양보험의 제도화 등 다양한 사유로 중증 고령층과 치매 어르신들의 마지막 길목이 되어가고 있다. 64년생 베이비 부머 후반 세대들이 정년을 맞고 있다. OECD 최저수준의 사회보장시스템 상황에서 750만명에 이르는 베이비 부머 세대도 직장을 잃는 순간 대부분 저소득층으로 전락하고 만다. 언젠가는 노화와 병마와 예정된 죽음의 몫은 마트의 떨이 상품처럼 통째로 요양시설로 팔려 갈 것이다. 요양시설로 가는 순간 이미 살아있는 내가 아닌 예정된 죽은 자로 불려지고 가족과 친구와 사회로 부터 잊혀져 간다.

3년여에 걸친 코로나로 요양원에 계신 부모님들의 면회금지의 기억은 상업적 동기와 인간의 본능과 결합 이러한 노령층의 고립화 추세를 더해가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이되 죽지 못하는 `금지된 죽음`이다. 빌딩마다 카페가 생기던 시절이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새로 지어진 건물지하마다 헬스클럽이 위치하고 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피할 수 있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의욕적으로 운동을 하고 아파트 게시판에는 개별 맞춤형 운동 프로그램 찌라시가 홍수를 이룬다. 주말이면 근교 산들은 중노년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조차 없다.

동네 산책로 마다 맨발 워킹족들로 붐비고, 파크 골프장엔 신중년과 고령의 어르신들로 넘쳐난다. 동네마다 쌈지공원이 생기고 짜투리 공간에 지자체의 포퓰리즘과 상업적 동기가 상호작용하여 녹슨 채 방치된 크고 작은 운동기구가 자리잡고 있다. 금지된 죽음으로 가는 여정이 시스템적으로 들어날 때 각종 건강과 사망보험 광고가 난무한다. 금지된 죽음의 금지 `해제 순간`을 노린 각종 상조보험 광고를 볼 때마다 가슴이 아린다. 부모님의 죽음을 가족의 가슴으로 아파하던 시절은 먼 옛날이 되었다. 이들 상품들은 살아가야 할 사람과 죽어가야 할 사람들의 갈등의 완충기제 같은 것이다.

유행처럼 번지는 저출산 지원이라는 젊은이의 특권을 강조하는 사이 고령층은 병마와 노화로 사회적 부담을 안겨줄 뿐인 거추장스런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죽음은 이미 돈으로 계산되는 사회제도 속으로 스며들었다. 병원에서 요양원으로 다시 장례식장과 소각장으로 향하는 시스템으로 굳어지고 있다. 정작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는 순간의 귀찮음으로 여겨지고 있다. 죽어가는 사람에게 주어져야 할 가치와 의미가 무엇이며, 죽어가는 사람 또한 애틋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이 깡그리 무시되는 것이다.

결국 죽어가는 사람의 삶의 의미가 형해화(形骸化)되고 무관심하게 홀로 방치된다는 점에서 우리시대가 죽음을 대하는 방식은 크게 잘못되었다. 타인의 죽음이 자신의 예견된 죽음임을 자각할 때 죽음은 우리를 깊은 사유의 영역에 머믈게 하는 것이다. 금지된 죽음이 아니라 ‘해제된 죽음’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것이다. 무담시 농촌 마을을 돌아다녀 본다. 만나는 분들이 제대로 허리를 펴지 못하고 먼 시선으로 나그네를 쳐다본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다. 도시로 떠나간 아들딸들의 관심에서 이미 멀어져간 우리들! 의료기술과 보험제도의 발달은 금지된 죽음의 시기를 연장하고 더 치명적인 공간으로 우리를 밀어 넣고 있다.

살아있음에 대한 기억조차도 멀기만 하다. 300명의 한국인이 조력사망을 돕는 스위스 4개 단체에 가입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2019년 3월 최초 보도했을 당시 한국인 가입자 100여명에서 3배가량 늘어난 것이다. 우리도 이제 진지하게 `금지된 죽음`을 `존엄한 죽음`의 영역으로 되돌려야 한다. 출산률 저하를 막기 위해 10여년간 200조원이라는 재원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어느 마을은 출산 축하금을 높이고 마을 육아공동체를 만들고 공짜에 준하는 임대주택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러나 금지된 죽음을 야기하는 논의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호스피스제도, 안락사, 웰다잉, 의사의 조력을 받아 죽을 권리 등은 학회 세미나실에서 불편한 시선속에 논의된다. 이미 전남은 전국 최고 수준의 고령화(25.2%) 시대에 접어들었다. 전남의 동부권 3개 도시지역, 남악신도시와 나주혁신도시를 제외한다면 읍면지역의 거의 절반이 사라질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마을 군데군데 파고드는 상업적 요양병원과 언제가 거기서 금지된 죽음을 맞아야 하는 우리들의 문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출산률 저하를 걱정하지만 한국의 인구밀도는 아직도 세계 최고수준이다, 우리가 더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것은 지금의 고령화된 우리의 남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보내는 것이다. 치유농업, 정원 가꾸기, 전통농업의 부활, 젊은 세대와 노인세대의 공존 프로그램, 도시농부 플랫폼 사업, 농촌 빈집활용 시니어 사업 등 이미 시행되고 있는 다양한 사업을 보완하고 고령화 세대의 참여를 활성화하여야 한다.

한국은 OECD 노인 빈곤률 1위국가다. 더구나 전남은 재정자립도가 전국에서 가장 낮다(21.7%). 지자체와 시민사회는 어르신들의 삶을 보살피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위한 특단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전통적 삶의 방식이 아직 살아있는 전라도 땅에 금지된 죽음이 해제되고 파릇파릇한 생명의 땅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약력]
제26회 행정고시 합격
산업자원부 시장관리과장
산업자원부 무역정책팀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경제국장
지식경제부 지역경제정책관
지식경제부 정책기획관
전라남도 경제부지사
목포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한국도시가스협회 상근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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