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4년 갑진년 어떤 용(龍)이 될 것인가 》

늘 새로운 아침, 늘 새로운 생각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4년 01월 25일(목) 15:09
김경호 변호사
오늘은 작년 필자의 독특한 경험 2가지 중에 「첫 번째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 부끄러운 경험일 수 있으나 「매우 현실적인 경험」이기에 사람과의 관계, 특히 《야전 지휘관의 부하와의 관계에 대한 통찰(insight)》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필자가 공유하고 자는 내용은, 사람을 믿고 결국 배신의 감정을 갖는 것은 사람의 리더로서 극히 경계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즉,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 오히려 사람에 대한 믿음을 그래도 이어 갈 수 있다는 필자가 칭하는 『모순』의 힘에 관한 이야기이다.
재미 삼아 읽어 보실 것을 청한다.
2024년 갑진년 『용(龍)의 해』를 맞이하여, 먼저 우리 군의 모범을 보여할 지휘관분들과 「어떤 용(龍)이 되실 것인가」의 화두를 던지고, 함께 생각하는 시간을 ‘청(請)’하고 있다. 오늘은 그 마지막 시간이다.
세상에서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종교의 가르침은 사랑과 자비이다. 실제 인간 사회에서 이것의 발현은 용서라는 지극히 실천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용서는 바로 자신의 부정적이고 폭발적인 갈등 증폭의 감정에 대한 반대의 차분히 갈등을 해결하고자 하는 모순의 감정이다. 즉, 물러날 줄 아는 감정이자 물러날 줄 아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
필자에게 작년 이맘 때쯤 이런 부끄러운 경험이 있었다.

▶ 신성동 길거리에서 폭행 사건
대전 유성구 신성동은 복잡하다. 많은 예비역 군인들이 거주하는 동네의 넓이에 비해 도로가 매우 협소하다. 그래서 가장 번잡한 곳에 일방 통행 구역이 있다.
사건 발생은 이렇다.
필자가 작년 이맘 때 “머리”를 치료받고 있어 일명 군고구마 장수 “빵모자”를 쓴 채로 그 일방통행로를 걸어가고 있는데, 맞은 편에서 외제차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 매우 이례적이어서 순간 두 손으로 ‘X’ 표시하고, 뒤로 차를 물리라는 손표시를 해 주었다. 그런데 아랑곳하지 않고 지나가려 했다.
그 지나가려는 차의 뒷 좌석쪽 차체를 “여기는 일방통해 위반”이라는 의미로 손으로 한 대 ‘톡’ 쳤다. 그래도 지나가길래 그냥 가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뒤통수를 가격하는 힘이 느껴졌고, 순간 앞으로 쓰러질 뻔 하다가, 앞에 있는 간판으로 인해 겨우 넘어지는 것은 면했다. 순간 이어지는 폭행 여부를 확인했으나 흥분하여 큰소리 칠 뿐 이어지는 폭행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주변 CCTV를 확인해서 사진을 찍고, 차량 번호도 찍고, 112 신고를 했다.
그때 한마디 한 것은 “이제 30대로 보이는데, 길거리에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50대를 뒤에서 일방적으로 가격하면 되나?” 그리고 신고했다.
나중에 외제차 차주는 경찰에서 수사를 받고, 사무실 국장을 통해 필자의 직업을 알아차린 듯 하고, 연신 사과와 합의를 요청해 왔다.
이때 합의의 목적은 아무리 외제 차를 타고 다니면서 ‘조금’ 성공했더라도 대한민국에는 “어른에 대한 예의”하는 “도덕”이 살아있는 사회라는 점을 잠시나마 각인시켜 주고 싶었다.
다만 당시 차 번호를 찍는 순간 뒷좌석 창문을 내리는 사람이 있었고, 차주의 아내로 보였고, 뒤에 아이가 타고 있었다. 순간 뒤에서 놀랐을 것이라는 점은 매우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 『70만원』 의 합의
이 사안은 일방통행 위반과 뒤에서 일방적 가격으로 그 위법이 명백하다. 다만 세상에 감정 대립은 「100대 0」은 없다. 그 차주는 필자가 비록 알지 못했으나 뒷좌석 아내와 아이의 놀란 감정으로 흥분하여 그런 폭행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생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비록 당시 치료 중인 뒷통수가 많이 아팠지만, 별도 진단서는 준비하지 않았고, 합의금도 “파렴치한 사안이 아닌 이상” 정신 한번 차리라는 의미로 70만원에 합의했다.
그 당시 필자는 물러날 줄 아는 감정을 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런 감정이 지금의 필자를 있게 하는 힘인 것 같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 「갈등」은 나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할 수 없다
필자가 가장 안타까워하는 것은 야전에 「용서」라는 감정이 매우 메말랐다는 것이다. 단순 사안의 경우도 같은 군인이었으면서도 “자신만 옳다는 감정”에 휩싸여 몇 백이나 천만원 단위 합의금을 부르는 경우를 너무나 자주 본다.

종교의 가르침인,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에게도 잘못이 있을 수 있다는 물러날 줄 아는 감정과 이에 기반하여 용서에 있다는 것을 되새겨 보는 한 해의 시작을 “청(請)”한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이 기사는 영암일보 홈페이지(www.yailbo.com)에서 프린트 되었습니다.

URL : http://www.www.yailbo.com/article.php?aid=1534046570
프린트 시간 : 2026년 09월 25일 20:2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