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 생 군서 문인의 이야기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4년 02월 02일(금) 1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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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오늘 보름이니까 저녁은 우리 집에서 같이 먹게.”
손사장은 읍내에 있는 바둑동호회에서 만난, 급수가 비슷하여 가끔 수담을 나누거나 서로 농사일을 교류하면서 술을 마시기도 하는 사이였다. 명절이 돌아오면 꼭 명절 음식을 해 음식상에 올려 그때마다 나와 친구들은 그곳을 들르곤 했다.
요새는 보름이라 해도 마을에 사람 구경하기 힘들어 예전처럼 보름달이 뜨면 마을 앞 공터에 모여 강강술래나 달집태우기를 하는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되고 말았다.
이제는 그저 오곡밥에 나물 종류를 만들어 먹는 날이 되어버렸고 더구나 혼자 사는 이들은 몇몇이 모여 보름 음식을 제공하는 곳에 가서 저녁을 먹으며 어릴 적 대보름 시절을 반추하며 보낼 수밖에 없다.
전화가 또 울렸다.
“점심 먹었어?”
“아직.”
“이리 와. 오곡밥 했어.”
“동네 분이 가져다준 거 먹을 거야.”
“혼자?”
“응.”
“염병.”
“왜?”
“그래. 평생 혼자 잘살아.”
전화가 또 울렸다.
“3시경에나 와. 바둑 두다가 저녁 먹게.”
“알았어요.”
빈 바둑판을 바라보다 두는 첫 착수는 항상 이길 수 있는 기대감 때문인지 놓는 소리가 크게 들린다.
바둑은 361개의 교차점에 서로 한 수씩 두어가며 자신의 영역을 더 많이 확보해야 이길 수 있다.
되도록 최선의 수를 두어서 물 흐르듯 흘러가며 상대방을 공격해야 한다. 생존과 미생은 상대방의 착수에 따라 판단하는 자신의 선택이다.
먼저 생존을 도모하는 기풍은 집 부족에 늘 시달려야 하며, 아직 미생이지만 상대방을 몰아치는 기풍은 허점이 많이 노출되어 끊겨서 죽는 경우가 많다.
생존 후 공격은 늘 손사장의 기풍이고 공격 후 생존은 나의 기풍이다. 나는 세 판의 대국 중 자꾸 ‘혼자 잘살아’라는 아까의 전화가 떠올라 두 판을 지고 말았다. 그래, 혼자.
찹쌀, 차조, 붉은팥, 검은콩, 차수수가 들어간 오곡밥. 새꼬막 무침. 돼지고기 주물럭. 토하젓. 고사리, 토란대, 무, 시금치, 도라지, 시래기, 고구마순 등 일곱 가지 나물. 동네 아줌마가 부쳐 왔다는 감자전, 김치, 열무 물김치, 멸치볶음, 고등어조림, 소고기가 들어간 미역국, 거기다 소주.
이 음식들을 먹으며 손사장과 나는 소주잔을 부딪쳤다.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면서 백세가 넘은 강진아제가 날마다 유모차를 끌고 동네를 도는 모습을 안쓰러워했다.
‘목숨의 욕망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더해가는 것 같다’고 맞장구도 치며. 예전의 보름날은 연줄을 끊어 월출산 너머로 날려 보낸 추억도 공유했다.
손사장이 화장실을 간 사이, 나는 가만히 식탁에 놓인 음식들을 바라보다가 언뜻 ‘이 수많은 생명을 날마다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먹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하나 세어보니 스물두 가지 재료나 되었다. 거기다 마늘, 고추, 참깨 등 음식을 만드는 조미료까지 계산하니 서른 가지도 넘는 것 같았다. 이 모든 생명을 한 끼 식사에서 내 목구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생각이 미치자 가슴이 멍해졌다.
씨앗들이야 삶의 정점이어서 괜찮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종족을 위해 땅에 묻히면 다시 싹을 틔워 생을 시작하는 중간 단계가 아닐까?
우리는 다 살아있는 생명을 오직 한 끼를 때우기 위해 무자비하게 삶고 지지고 볶고 끓여서 자신의 포만을 유지하는 게 아닐까? 손사장 부인이 입가심이라며 접시에 사과를 깎아 담아왔다.
‘인생은 미완성’이란 노래를 흥얼거리며 집에 도착하여 마루에 앉아 하늘을 보니 유난히 보름달이 환해 보였다. 겨우 내 가지치기를 한 나무들이 자신의 그림자를 땅에 깔고 누워있었다. 그 음영이 너무도 또렷하여 그 깊은 어둠에 내 몸을 숨바꼭질하듯 숨기고 싶었다.
전화가 울렸다.
“집에 왔어?”
“방금.”
“이런 날 혼자 먹으니까 좋아?”
“미안해.”
“알았어. 나도 혼자 먹었어.”
“술도 마셨구나?”
“그래. 마셨어. 당신 땜에.”
헤어질 무렵, 손사장이 내게 넌지시 한 말이 떠올랐다.
“혼자 사는 게 좋아?”
“간섭받지 않으니까요.”
“그건 미생이야.”
“왜요?”
“어차피 둘이 지내라고 자네가 남자로 태어났으니까.”
“그런다고 같이 사는 삶이 다 완생일까요?”
“그래도.”
영암일보 ya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