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시인들의 동네 군서 문인의 이야기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4년 02월 22일(목) 12:15 |
|
올해는 서리도 한 달 내내 내렸지만 비가 적당히 와 땅도 촉촉하다. 작년 가을에 심었던 마늘과 양파도 무럭무럭 커서 그들의 크기와 싱싱함도 언뜻 보아 평년의 두 배는 될 성싶다.
동네아줌마들은 다 점쟁이다.
3월 중순 경, 마을회관 앞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아들네들이 있는 서울 병원에서 돌아가신 구림댁의 노지장례식을 치르던 날, 영곡댁이 영정사진에 절을 하고 물러서면서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나보다 먼저 가니 좋겠소.
이제 나도 안 아픈 곳이 하나도 없는 몸뚱이만 남았소.
아이고 형님, 작년에 그 몸뚱어리로 죽자꾸나하고 마늘을 겁나 심고 있을 때 알아봤지라.
그것 심고 나자빠질 때 마늘도 못보고 갈 줄 알았어.”
영동댁이 옆에서 거들었다.
“이 양반 말이 좀 많아? 그 말이 많던 구림댁이 비실비실 웃기만 할 때 알아봤지.
자식놈들이 다 무슨 소용이 있어. 지 몸뚱이들 건사하느라고 보일러 고장 났어도 일주일간 아무도 안 오더라고. 그때 저 인간이 감기에 추위에 죽을 성 싶었던가 세상에 ‘엄니, 나 엄니 보러 가요.’ 하더라니까.”
“그래도 저 양반은 영감이 상 하나는 잘 만들어 팔아, 먹고 사는데 걱정은 없었지.
지금 우리 마을회관 상들도 다 그 영감이 만든 거여.
그런데 혼자 밥 먹고 있는데 상다리가 부러졌다는 거여.
내가 그래서 저 양반에게 영감이 부른 모양이네 한 말이 영 걸리더라고.”
광암댁이 엄지와 검지를 코에 대고 팽하고 코를 풀면서 한 말이었다.
4월이 오자, 나도 덩달아 바빠졌다. 100여 평 넘게 심은 감자의 순이 트자, 멀칭한 비닐을 일일이 가위로 자르고 흙으로 북을 돋아주어야 했다. 하지만 감자는 심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는지 반도 틔우지 못하고 썩어버렸다.
처음 짓는 감자농사라고 애써 자위하며 이번에는 땅콩을 포트에 심고 싹을 틔웠다.
작년에 600포기의 땅콩을 심어 한 달여의 가뭄과 더위에 좋은 품질을 겨우 12킬로그램밖에 건지지 못한 것을 잊었는지 이번에는 1000포기나 심은 것이다.
농사란 오기도 발동해야 한번은 성공한다는 어설픈 직관을 믿으며. 고추모종을 1500포기나 심어야 하는데 일 할 사람이 없다며 뒷산 아래 밭을 짓는 장암아제가 나를 불렀다. 모종삽만 달랑 들고 밭에 이르렀더니 정지댁과 조기사댁이 먼저 와 있었다. 고추모종을 반 정도 심고 나자 장암댁이 점심을 전동휠체어에 싣고 왔다.
“밥 먹고 하드라고.”
큰 소리로 외치는 장암댁 뒤에 정지댁 큰딸이 서 있었다.
“무슨 일로 나를 보러 왔냐? 지금은 일철이라 갖고 갈 것도 없는데.”
정지댁은 19살 때 시집 와, 정지아제가 40살도 되지 않았을 때 병으로 죽고 나서부터 딸 셋을 키워 이곳에서 시집을 보냈다.
지금 정지댁 나이가 70대 중반이니 얼추 큰딸도 50대 중반일 거였다.
그녀가 정지댁을 산 속으로 데리고 가면서 말을 하는데 조금 있다가 악다구니 비슷한 정지댁의 언성이 온 산에 울려 퍼졌다.
“가거라. 가. 또 엎어지지 말고. 네가 살다가 엎어진 게 한두 번이냐?
하여간 조금만 잘해주는 뭣 달린 것들만 보면 앞이 캄캄해져 어쩔 줄 모르는 이년아.”
정지댁이 돌아왔다.
내가 “뭔 소리요?”했더니 먹고 있던 밥을 꼴딱 삼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오매, 썩을 년이 또 남자랑 산다고 염병하네. 지 남편하고 이혼하고 나서 이번이 네 번째구만.
저년은 남자 없으면 못사니 내가 속이 터지지. 글지만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해. 나는 남자라고는 아제밖에 모르는 숙맥이었으니.
나도 외로웠어. 얼마나 외로웠는지 몰라. 외롭고 외로운 그때 내 마음을 자네가 알거나. 하, 이제는 그런 마음 없어져 버린 지 오래이구만.
지금은 밥이 내 애인이여. 그런데 저 썩을 놈의 철쭉은 왜 저리 환장하게 피어있다냐?”
5월이면 온 동네가 벼농사 준비에 여념이 없다.
논을 트랙터로 갈아엎고, 퇴비와 비료를 뿌린 다음, 물을 채워 넣는다. 논에 물이 채워지고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트랙터에 써레를 달아 논을 평평하게 다듬어 놓는다.
그리고 마당이나 공터에서 모판에 흙을 채우고 물로 침지한 벼를 깔고 다시 흙을 덮어, 날마다 물을 주며 모를 키운다.
자라는 고추에 2,3일에 한 번씩 물도 주어야 하고 생강이나 토란도 심고 땅콩도 심어야 한다. 어떤 집은 고구마도 심어야 하고.
모처럼 비가 오고 어둠이 깔릴 즈음 당숙모인 영호동댁이 무언가를 채반에 싸 가지고 나를 찾아왔다.
“오늘이 당숙 제산데 애들도 안 오고 나밖에 없어서 그냥 일찍 지내버렸다. 제사음식 조금 갖고 왔다.”
마루에 앉아서 떡을 하나 먹고 있는데 당숙모가
“아이고 개구리 소리가 별나게 요란하네.” 하면서 말을 이어갔다.
“개구리소리가 와글와글, 바글바글 하게 들리면 풍년이 오고 꼬르륵꼬르륵, 골골골 골골골 하고 들리면 흉년이 온다고 했단다. 네 귀에는 어떻게 들리냐?”
“와글와글 하는데요?”
“다 마음이지야. 자신 처지나 몸이 안 좋으면 골골골 골골골 하게 들리고, 마음이 포근하면 바글바글 들리겠지야.
네가 여기 와서 이 집 고치고 잘 정리해 놓으니 얼마나 좋으냐. 네가 여기서 잘 적응하고 있다는 뜻이란다.
둥지를 다시 튼다는 게 어려운 일인 줄 알지만 나도 이리 시집와서 없는 살림에 고생 무지하게 하며 살았다.
그래서 한 달만 살아보자, 한 달만 살아보자 하며 사니까 지금까지 살게 되더라.”
며칠 전 해질녘, 매실나무 아래 풀밭에서였다.
이제 노랗게 스러지고 있는 별꽃풀들 사이에서 몸을 곧추세우며 여기저기 무섭게 자라고 있는 풍년초를 호미로 캐거나 뽑고 있는데, 유모차를 몰고 지나가던 화산댁이 무얼 하나 궁금한지 나한테 왔다.
“뭘 해?”
“풍년초가 너무 많아 뽑고 있어요.”
“풍년초 그것 징해야. 잘 뽑고 있다. 그것 씨 날리면 잡도 못한다.
서울년들은 풍년초로 나물도 무쳐먹고 꽃 피면 차도 달여 마신다는데 뽑은 것 택배로 보내. 좋아할 거다.”
“세상에, 요새는 못 먹는 것이 없네요. 요것도 먹는 모양이네요.”
화산댁이 해가 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혼잣말처럼 말했다.
“해질녘 구름색깔이 지금 피어있는 어떤 꽃하고 같은가에 따라서 날씨를 알 수 있어야.
지금 지고 있는 갓꽃처럼 노란색이면 비가 자주 온다는 뜻이고, 저 작약처럼 빨갛게 물들어 있으면 가뭄이 든다고 했어.
아카시아나 찔레꽃처럼 하얀색이면 비가 적당히 와 풍년이 든다는구만. 지금은 하야니 마음은 푸근하네.”
영암일보 yailbo@daum.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