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와 돈

재미있는 철학이야기(제 41화)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4년 11월 29일(금) 09:19
▲강성률 철학박사
칸트의 증조 할아버지는 쾨니히스베르크의 북쪽 작은 도시에서 점포를 빌려 주막을 경영하다가 근처의 주막집 딸과 결혼하였다. 또한 칸트의 할아버지(한스 칸트)는 피혁상(皮革商)이었으며, 칸트의 아버지(요한 게오르그 칸트)는 이 피혁상의 둘째 아들이었다. 쾨니히스베르크로 옮겨온 그는 가난 때문에 서른 살이 넘어서야 피혁상의 딸과 결혼할 수 있었다. 칸트는 부모님의 형편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부유하지는 않았으되, 가난으로 인하여 고달플 정도는 아니었다. 집안 살림을 꾸려나가는 일과 자녀 교육에 필요한 돈은 갖고 있었다.”

과연 그랬을까? 칸트가 13세 때 어머니가, 23세 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는데, 두 사람의 장례식에 대해 교회 장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조용하고, 가난하게’. ‘조용하게’란 말은 찬양을 불러줄 성가대가 없었다는 뜻이며, ‘가난하게’란 말은 장례 비용을 시(市)에서 감당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볼 때, 칸트의 가정 형편은 그다지 여유롭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칸트는 개인교사 생활로 학비를 벌면서 대학을 다녀야 했다. 학생 활동이나 오락거리에 관심을 가질 수 없었던 상황이었지만, 당구 치는 일에는 열심이었다. 재주도 있어서 내기에서 돈을 따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또한 구둣방을 경영하는 큰아버지의 도움과 성적이 뒤떨어진 동급생들의 공부를 도와주는 등의 아르바이트로 대학 생활을 꾸려나갈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칸트는 우선 생활비부터 마련해야 했다. 이를 위해 22세 때부터 31세 때까지 시골에서 가정교사 생활을 하는데, 이에 대해 칸트는 “나는 좋은 원칙을 갖고 있긴 했으되, 나쁜 가정교사에 지나지 않았다.”고 고백한 바 있다. 위대한 철학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준다거나 때때로 벌을 주어야 하는 ‘가정교사로서의 뛰어난 기술’은 없었던 것이다.

약 8년 동안의 가정교사 생활을 마치고 쾨니히스베르크로 돌아온 칸트는 석사학위를 받고, 곧이어 대학교수 자격을 얻는다. 이때부터 시간강사 생활을 시작하는데, 그가 가르쳐야 할 과목은 수학, 자연과학 등 광범위하기 짝이 없었다. 더욱이 1주일에 20시간씩 강의를 해야 하는 중노동에 그는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러면서도 무리하게 강행군을 해야만 했던 까닭은 자신의 생활비뿐만 아니라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시절에 생활고가 극심하여 심지어 끼니를 거르기도 하였다. 그런 가운데에도 병이 생길 경우를 대비하여, 매월 20 타아르의 돈을 저축해 놓고는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 이러한 가난이 얼마나 사무쳤던지, 칸트는 제자들에게 결혼을 권유하면서도 ‘정열적인 애정보다도 냉철한 이성에 따르며, 미모보다 지참금을 먼저 고려하라!’고 충고하였다.(제39화 참고)

월세, 전세 등을 전전하던 칸트가 자신의 집을 갖게 된 것은 63세 때의 일이다. 그럼에도 집을 꾸미는 일에는 매우 검소하여 방안에는 책상과 책꽂이 이외에 책장 두 개가 있었고, 벽에는 루소의 초상화 한 장이 걸려 있었을 뿐이다.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빚 놀이를 하여 그 이자로 돈을 불려나가는 한편 검소한 생활로 나이가 들어서는 비교적 풍족하게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죽은 후에는 1만 4천 4백10불의 현금 외에 집터와 거기에 딸린 정원 등 2만 타아르나 되는 많은 유산을 남겼다. 2만 타아르는 오늘날 약 2천만 원 정도에 해당하는데, 당시 학자로서는 꽤 큰 금액이었다. 이 유산은 평생의 봉급과 강연료, 저서로부터의 인세, 이자가 합쳐진 것이었다. 물론 빚은 전혀 없었다. 스스로는 근검절약하면서도 친척이나 해고시킨 하인 등, 생계가 곤란한 이웃 사람들에게는 연금 등을 지불하며 도왔다. 형제들과 친족들에게 보조금으로 매년 200불 정도를 지급하기도 했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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