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책『순수 이성 비판』

재미있는 철학이야기(제 42화)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4년 12월 13일(금) 09:24
▲강성률 철학박사
칸트의 새로운 책을 기다리다 지친 애독자 가운데 라파에텔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1774년 2월 8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칸트에게 보낸다. “한두 서너 줄이라도 좋으니, 말씀해주십시오. 왜 저렇게 쓸 만한 능력도 없는 자들이 책을 쓰고 있는지, 그리고 탁월한 필력(筆力)을 가진 귀하는 왜 쓰지 않는지요?”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1781년의 어느 날, 한 작품이 탄생했다! 이름 하여 『순수이성비판』. 57세의 칸트가 이룩한 걸작이었다. 이 책에 대한 구상은 20여 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실제 작업 기간만 11년이 걸렸다. 물론 800여 페이지의 이 책이 오랫동안 고민한 산물이긴 하지만, 집중적인 집필 기간은 단 5개월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 대한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동료교수 헤르츠는 ‘미쳐 버릴 것 같은 기분’으로 절반도 못 읽고 칸트에게 돌려주었다. 철학자 멘델스존 역시 “신경을 쇠약하게 만드는 작품”이라 혹평을 했다. 중국의 린위탕(임어당)은 “ 『순수이성비판』은 3페이지 이상 읽을 가치가 없다”고 단언하였으며, 칸트 연구가인 캠프 스미스 역시 “이 책의 난해성은 자세히 연구하면 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늘어난다.”고 한탄하였다. 심지어 독일의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 책은 도대체 언제 독일어로 번역되는 걸까?”라는 우스갯소리가 유행하였다고 한다. 독일어로 쓰인 책을 독일 독자들조차 도저히 읽어나갈 수 없었던 것이다. 책의 분량이 엄청나게 많았을 뿐만 아니라 문장 자체도 너무 길고 어려웠던 탓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0년도 지나지 않아 이 책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철학책으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다. 왜 그랬을까? 그 난해한 문장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한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처럼, 그 책은 인간 지성의 목표를 향해 정확하게 날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이성비판』에서 칸트는 세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첫째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둘째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마지막으로 “나는 무엇을 바랄 수 있는가?”이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질문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한 가지 물음으로 묶어낼 수 있다. 첫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쓴 책이 『순수이성비판』이고, 둘째는 『실천이성비판』이, 마지막 물음에는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가 답을 하고 있다. 그리고 앞의 두 책과 세 번째 비판서 『판단력비판』을 묶어 칸트의 ‘3대 비판서’라고 부른다.

어떻든 『순수이성비판』이라는 책으로 칸트는 갑자기 유명해지고 말았다. 그의 철학은 거의 유행처럼 되어 그의 저서들이 귀부인들의 안방에 스며들었고, 이발사들이 그의 용어를 사용한다는 기록까지 나왔다. 칸트의 철학은 유럽의 거의 모든 대학에서 강의되었고, 쾨니히스베르크를 철학의 성지(聖地)로 여긴 젊은이들이 이 도시로 몰려들었다. “칸트 이전의 모든 사상은 칸트로 흘러 들어와 독일 관념론이라는 호수에 고여 있다가, 헤겔을 통해 흘러나가 이후 모든 사상의 원천이 되었다.”는 유명한 말이 있다. 하지만 이를 바꾸어, “세계 사상의 조류(潮流)는 모두 칸트 철학에로 흘러들어가고, 또 칸트로부터 흘러나왔다.”는 표현을 쓰는 학자도 있다.

1804년 2월 12일 새벽 1시 무렵, 물에 탄 포도주로 입술을 적신 80세의 칸트는 “Es ist gut!(좋다.)”라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어떠한 권위에도 압도당하지 않고 어떠한 편견에도 흔들리지 않은 채, 자기 자신의 독창적인 사고와 진리의 준엄한 명령에 따라 오직 앞만을 바라보고 뚜벅뚜벅 걸어 나간 작은 거인, 그 위대한 정신 앞에 옷깃을 여미어 본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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