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도시 지는 국가

<이병록의 책을 통해 세상 읽기> 부제: 고무풍선 상황에서 생각 나는 책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5년 02월 07일(금) 09:52
▲이병록 소장
벤자민 R. 바버의 <뜨는 도시 지는 국가>에서 시민사회 육성과 거버넌스 참여의 모범적 사례로 서울시 박원순 시장 사례가 나와서, 서울시 자문위원으로서 10여 년 전에 읽었던 책이다. 최근 고무풍선 대응에 대한 정부와 경기도, 강원도와 경기도 대응이 비교되면서 다시 보게 된다. 여기서 국가는 국민국가와 중앙정부 역할을, 도시는 서울과 같은 대도시 혹은 경기도와 같은 자치단체장의 역할이다.
통치와 행정 단위가 도시에서 국민국가로 변화한다. 국가의 행정력과 아리스토텔레스가 생각한 민주주의는 시민은 걸어서, 지배자는 말을 타고 움직이는 하루 교통권 영역의 크기로 제한된다. 고대 소도시에서 미덕이었던 시민참여는 제국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공동체를 다양화시키기에 도시국가는 편협하고 균질적이다. 도시 연합이 확장된 영토 규모 측면에서 협력했고, 한자동맹은 공동의 정책을 확보하면서 거의 300년 동안 성공적으로 유지된다.
잔 다르크가 프랑스를 만들어 내는 데 일조했듯이, 민족이라는 정체성(正體性)과 국민국가와 민주주의라는 정체(政體)가 만들어진다. 새로운 영토적 개체에 합법성을 부여하면서, 국민을 통치하기에 충분히 큰 국가를 만들었다. 국민국가는 내부 단결과 주관적 자주권을 극대화하는 데 힘써, 국민국가들 사이에 협력보다는 경쟁관계를 조성하는 경향이 있다. 결정적으로 주권 국민국가는 도시의 일반적 특징인 지역 상업을 이룩하기에는 덩치가 너무 크지만, 세계적 영향력의 중심이 되어 억제와 규제를 하기에는 너무 작다.
자율적 민족과 국가의 자유와 독립에 완벽한 정치적 해결 방안이었던 국민국가가 이제는 상호의존적 상황에는 맞지 않고, 경계를 초월한 도전을 다룰 수가 없다. 국가가 약해서가 아니라 이민, 질병, 테러, 기후변화 등 국가의 힘이 경계를 초월해 일어나는 수많은 도전과 연결되어 있지 않다. 국민국가의 주권이 오히려 걸림돌이 되어버렸다. 강대국은 주권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많은 국제조약을 거부하거나 폐기한다. 미국 연방정부는 기업 로비의 영향력 때문에 또는 법을 이유로 들어 기후변화와 환경 등 문제에서 보편적인 해결방안을 방해하기도 한다.
저자는 상호의존적 세상에서 전통적으로 국민국가가 수호해 온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늘어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 제도를 도시에서 찾는다. 도시야말로 전 지구적 거버넌스를 할 수 있고, 정치보다는 실용주의, 이념보다는 혁신 그리고 주권 대신 해결책을 강구하는데 상대적으로 기능적이다. 맹목적 애국주의를 제도화하기보다 공동체 참여와 자부심을 갖도록 돕는 데 주력한다. 애국자로서 시민은 거대한 이념에 의해 자녀를 군대에 보낼 희생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도시 거주민으로서의 시민은 지방 정부 당국이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교육해 줄 것을 기대한다.
세상 모든 도시는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조국’처럼 추상적이지 않고 집이며 마침표다. 시민들은 추상적이고 주권적인 ‘우리’에게서는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졌지만, 구체적인 지방자치의 ‘우리’에서는 멀어지지 않는다. 국가는 흥했다가 망하지만, 도시는 이겨내고 이어간다. 이런 장수성 덕분에 도시는 자유로운 기관과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전시킬 수 있다.
도시는 공동의 속성으로 묶이면서 공동의 가치로 연합한다. 도시는 예외주의가 아닌 협력을 고무하기 위해 애쓴다. 국회의원은 먼저 싸움을 걸 수 있지만, 시장은 지역에서 발생한 문제와 싸운다. 2010년 대 초반에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신뢰하는지 물어봤을 때 연방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다고 믿는다고 답한 사람은 15퍼센트였던 반면, 지방 정부에 대해서는 70퍼센트라는 수치가 나왔다.
뉴욕 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어떤 조치 실행은 도시 단계에서 이루어진다. 대통령들이 거들먹거리며 원칙에 대해 말할 때 시장들은 쓰레기를 줍는다”. 예루살렘 시장을 역임한 테디 콜렉은 고위성직자들의 종교적 가식에 대하여, “이것 봐요, 설교를 그만두면 내가 당신들 하수관을 고치겠소.” 이처럼 도시는 조약보다는 교통을, 원칙보다는 도로에 파인 곳을, 전쟁보다 쓰레기 처리와 관리에 신경 쓴다는 내용을 제시한다.
테러를 비유로 든 안보에 대한 국가와 도시의 대응 차이점을, 국가가 테러를 시작점에서 방지하려고 하며, 도시는 목표 도시에 테러를 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데 역점을 둔다고 설명한다. 이번 고무풍선 상황에서 정부와 강원도는 시작점을 우리의 표현의 자유에서 찾지 않고, 북한의 반응에 맞추고 있다. 반면에 경기도가 탈북단체 고무풍선 날리는 것을 시작점에 맞추면서, 경기도라는 목표 지점을 방어하고 있다.
저자 결론은 전 지구화된 21세기에 급속도로 진행되는 상호의존이 지금은 국가를 추월하고 다시 도시를 조명하고 있다. 상호의존 문제를 다룰 때, 최소한 협력 분야에서 주권은 강력한 국가를 약하게 만들고, 약한 도시는 강하게 만든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것을 방해하는 지역주의로 화석화되었다. 도시는 전 지구적이고 민주적인 거버넌스의 기초 요소가 될 수 있다. 가장 간단한 이유를 들자면, 미국과 중국이 서로 싸울 때 홍콩과 뉴욕은 협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약력]
정치학 박사
덕파통일안보연구소장
저서<관군에서 의병으로>
영암일보 yailbo@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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