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재인가, 괴물인가?-셸링 재미있는 철학이야기(제46화)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5년 02월 07일(금) 09: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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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백여년 전에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철학자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독일의 관념론자 셸링(1775~1854년)이다. 그에 의하면 첫째, 자연은 영혼을 소유하고 있으며, 모든 생물이나 영혼적인 존재와 마찬가지로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심지어 죽어있는 무기물(無機物)도 살아있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비록 운동이 저지당하고 있긴 하나 보편적인 자연의 생명으로 나아가려는 충동을 항상 자기 안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생명의 배후에 정신이 있는 것처럼, 생명으로서의 자연은 또한 정신이기도 하다. 자연은 눈에 보이는 정신이요, 정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자연이다. 따라서 자연과 정신은 동일하다. 셸링의 이러한 주장은 환경 파괴와 기후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에 들어와 재평가되고 있다.
어떻든 듣기에 따라 혼란스러울 수 있는 셀링의 철학은 일찍부터 이중적인 평가를 받아왔다. 셸링 철학은 ‘뻔뻔스럽게 거드름이나 피우는 호언장담’인가 하면, ‘신에게 선택받아 이 시대의 스승으로 온 천부적인 철학자의 가르침’이기도 하였다. 셸링의 적대자들이 그를 유다(예수를 팔아먹은 제자)나 악마와 비교하는 반면, 숭배자들은 그를 제 2의 예수 그리스도로 만들어버릴 정도였다. 그에 대한 평가만큼이나 그의 성격 또한 이중적이었다. 셸링은 강하게 밖으로 발산하려는 성격과 함께 자신을 숨기려는 충동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셸링은 독일의 레온베르크에서 태어났다. 조숙했던 그는 이미 열다섯 살에 튀빙겐 대학 기숙사에 들어갔고, 여기에서 같은 고향 출신의 헤겔 및 휄더린(시인)과 사귀었다. 피히테의 『지식학 원리』가 발간되자 스무 살에 지나지 않은 셸링은 그 근본 사상을 오히려 저자인 피히테보다도 더 날카롭게 분석하여 발표하였다. 그리고 이에 관심을 기울인 괴테(독일의 유명한 시인)의 추천으로 23세의 젊은 나이에 예나 대학의 부교수로 초빙되어 갔다.
예나에서 셸링은 많은 사람들과 교제를 나누었는데, 12년이나 연상인 이혼녀 슐레겔과 결혼한 것도 바로 이때의 일이다. 그러나 그의 이중적인 성격은 여기 예나에서도 드러난다. 강의할 때에는 모든 수강생들을 압도하려는 듯 맘껏 호령하다가도 따로 여럿이 모인 장소에서는 매우 어색해 했다. 친구들이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때, 그는 계속 입을 다문 채로 앉아 있곤 하였다. 때때로 절망하여 자살까지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친구들과 잘 지내다가도 갑자기 쌀쌀맞게 대하기도 하였다. 첫 번째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셸링은 아내의 친구인 파울리네 고터와 결혼했다. 이 결혼은 잘 어울리는 것 같았으나, 슐레겔에게 느꼈던 뜨거운 열정을 동일하게 느낄 수는 없었다.
1841년 국왕인 빌헬름 4세는 고령의 나이에 접어든 셸링을 베를린대학으로 초빙하였다. 국왕은 ‘천재적인 철학자’ 셀링을 모심으로써 자신의 힘을 키워나가는 한편, 시대를 풍미하던 헤겔 학도들을 제압하려는 의도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셸링은 이곳에서 다시 한 번 대중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한 제자가 쓴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셸링은 마치 무슨 괴물이나 형체가 없는 공포의 대상 같은 느낌을 준다. 그때마다 나는 어떤 알 수 없는 아시아의 신이 열 두 개의 발을 가진 괴물의 모습을 하고 걸어와서는 열두 개의 팔을 벌려, 여섯 개의 머리 위에 쓰인 여섯 개의 모자를 들어 올릴 것 같은 느낌을 받곤 하였다.”
[약력]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
철학박사
소설가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상임위원
한국 산업인력공단 비상임이사
한재골 아카데미 원장
유튜브 채널 '강성률철학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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