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보 영암일보 yailbo@daum.net |
| 2021년 01월 21일(목) 17: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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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그때 우리 모습을 그려보자.
남자들은 빡빡 밀어버린 중대가리에, 이미 노래질 대로 노래진 하얀 화이셔츠, 혹은 색깔이 있더라도 다른 천으로 곁달아 꿰매어 놓은 털실로 된 셔츠. 목은 이미 햇볕에 탈대로 타서 아궁이 숯검정이 묻어도 모를 정도였고, 명주 천을 허리띠로 한 반바지에 검정고무신.
여자들은 몽실이형 단발머리 –이발소 아저씨가 옆머리에서 뒷머리까지 목덜미와 수평으로 자른 모습-에 옷깃이 동그랗게 여며진 블라우스, 혹은 저고리. 줄줄줄 잘도 내려가 옷핀 깨나 꽂았던 검정 반치마에 검정고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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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다 학교를 가려면 책보(책보자기)를 맸다. 허리춤에 수평으로 매거나 한쪽 어깨에서 다른 쪽 겨드랑이 사이에 사선으로 매고는 졸랑 졸랑 학교에 갔다.
책보 속에는 그날 배울 책과 공책, 연필 몇 자루와 손잡이도 없는 면도칼, 그리고 네모난 알루미늄 도시락이 차지하고 있었다. 도시락 안에는 쌀밥이 보일락 말락 들어있는 보리밥과 젓가락, 도시락 한 귀퉁이에 자리잡은 조그맣고 네모진 반찬통 속에 담긴 새빨간 김치와 멸치볶음이 전부였다.
도시락은 오래되다 보면 점점 삭아져서 구멍이 뽕뽕 나는 경우가 많아, 김칫국물이 보리밥 사이를 타고 그 구멍으로 흘러나와 책과 공책은 늘 김치 냄새와 그 얼룩들로 젖어있기 마련이었다.
하굣길엔 빈 도시락 속에서 반찬통과 젓가락이 부딪히는 소리가 걸음에 맞춰 딸랑거렸다.
현숙아, 빨리와. 알았어.
딸랑 딸랑 딸랑 딸랑
오, 애절하고 안타까운 기억.
우리 마을에 연님이라는 동창인 여자애가 있었는데 도시락이 없어서 놋쇠 밥그릇에 점심을 싸 오곤 했다. 그런데 아침 수업에 책보를 풀다가 그만 밥그릇이 떨어져, 풀기 하나 없는 꽁보리밥이 제각기 교실바닥에 쏴 하니 흩어졌던 기억. 그 위에 주저앉아 눈물을 훔치던 그 애. 그걸 다시 꺼내 먹던 그 애.
그 애는 지금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 당시에 학교 운동장은 지금처럼 반반하지 못하고 군데군데 웅덩이가 파인 곳이 많아 오전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학교 뒤 냇가에서 책보에 돌멩이와 모래를 퍼 날라다 운동장을 매우는 일을 얼마나 했던가. 별로 튼튼하지 못한 무명보자기는 돌멩이 몇 개와 모래를 몇 번 나르다 보면, 푹 터지던지 쭉 찢어져 꿰맨 자국은 또 얼마나 많았던가.
우리의 수많은 책보는 결국 우리 집의 걸레가 되고 학교 운동장은 그만큼 반반해졌던, 아름다워라 책보의 쓰임새여.
언젠가 우리가 학교에 다시 모여 운동장에 서면 책 몇 권과 빈 도시락을 싼 책보를 매고 달리기 경주라도 하면 어떨까.
딸랑 딸랑 딸랑 딸랑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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