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향기, 나주!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1년 01월 25일(월) 19:22
김형진 박사
몇년전 나주혁신도시에서 목포까지 한동안 출퇴근을 할 때가 있었다. 주로 나주 외곽도로를 타고 가다가 왕곡을 지나고 동강과 일로를 거쳐서 목포하당까지 가는 국도를 이용했다. 거리는 약 46km로 50분정도 걸렸다. 오가면서 배나무 꽃, 복숭아 꽃 피고 과일 열리고 수확하는 광경과 논에 못자리부터 벼이삭이 누렇게 되어 타작할 때까지의 들판에서 농부들의 모습들을 지나다 보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느끼곤 했다. 퇴근할 때에는 주로 늦게 오게 되는데 나주 근처에 가까이 오면 밤이 될 때가 많았다. 항상 느끼는 것이 있었다. 왼쪽 편에 보이는 천년의 도시 舊도심과 오른쪽 편의 5년여전 건설된 新시가지를 한눈에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문명의 발달의 힘이 이렇게 작용할 수 있을까 누가 봐도 장엄하게 쭉쭉 뻗은 고층빌딩에 화려하게 비치는 불빛들 특히 고층아파트의 창문사이로 비치는 네모난 창가에서 나오는 불빛과 직진성이 좋은 LED가로등이 촘촘하게 일렬로 설치되어서 멀리까지 적막한 농촌의 어둠을 뚫고 뻗어 비치는 그 경치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지지 않을 수 없다. 혁신도시 쪽 외곽도로에서 멀리서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구도심은 어둠속에 한일자로 늘어져서 비치는 가로등 불빛들만이 그쪽 방면에도 도시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을 볼 때마다 나는 호롱불로 나지막하게 비치는 것 같은 희미한 구도심의 그 불빛을 추억 속에 그리며 더욱 아름답고 고향처럼 푸근한 마음을 같은 향기를 느끼게 하였다.

나주 잠사
나주는 통일신라시대에 지명이름으로 불리어져서 고려시대 성종 때에는 나주목이 설치되는 등 호남지방의 주요 도시 중에 하나로 천년을 지키고 있는 관록 있는 도시이다. 과거 직장에 ‘80년 9월에 입사하여 첫 부임지가 전라남도지부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내가 자발적으로 지원했던 곳이기도 하다. 사무실은 금남로에 있었는데 전남 관내에 기업체나 대형건물에 에너지관리지도와 기술업무로 출장을 다니는 일을 주로 하였다. 전남의 어느 지역을 출장하더라도 광주를 출발하면 동쪽방면을 제외하면 나주를 거쳐 가게 된다. 버스를 이용할 때도 있고 기차를 이용할 때도 있었는데 기차는 여건이 좋지 않아서 대부분이 버스를 타고 다녔다. 전남은 비포장은 많았지만 버스노선이 아주 잘되어 있었다. 시·군을 이동할 때는 직행버스를 타고 군내에서는 완행버스를 타고 면단위로 이동하였다. 목포나 순천, 여수 등은 직통버스가 있어서 편리하였다. 광주에서 출발하여 나주 쪽으로 가다보면 확 트인 활주로 도로를 지날 때 좌우를 둘러보면 남평, 산포 들녘의 곡창지대가 펼쳐져있었다. 영산강 다리를 건너면 왼편에 국내에서 유명했던 화남식품이라는 통조림회사가 있었고 시내에는 전남의 섬유산업을 대표했던 나주잠사가 있었다. 지금은 엘지화학나주공장인 한국종합화학에서 생산한 비료를 사용하여 한국의 식량위기를 풍년 농사로 바꿔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 회사도 있었다. 그곳은 에너지설비가 많아서 자주 방문했던 회사이기도 하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만 전국에서 소주분야의 70%를 점유했었다는 삼학소주가 나주영산포를 바라보는 쪽에 나주공장이 있었다. 그때는 회사가 여러 사정으로 정리단계였는데 설비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자주 방문하였다. 나주읍내와 면소재지의 막걸리 주조장은 당시에 지역의 유지들이 운영하였는데 술밥을 찌는 가열로 폭발사고 방지를 위해 열설비 관리차원에서 간혹 들렀다. 나주막걸리는 나주곰탕만큼이나 맛이 좋았다.

‘80년대 당시는 누가 뭐라 해도 나주는 전남지역의 중심이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나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나주금성과 나주역이다. 나주금성은 천년의 역사가 살아 숨 쉬고 있는 현장이다. 최근에는 시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과거를 되살리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내가 찾았던 삼사십년 전만하더라도 관리가 잘 안되었었다. 금성관 관내에는 행정업무와 주부교실 같은 시민단체 사무실도 있어서 행사도하고 주부들 대상 강의도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즈음엔 서울 직장과 나주 집을 자주 왕래하고 있는데 다녀올 때마다 SRT나 KTX를 타고 나주역을 자주 이용하고 있다. 그곳을 이용할 때마다 40년 전에 내가 다니던 舊나주역이 생각난다. 그곳은 항상 내 마음을 무언가 움직이는 곳이기도 하다. 내가 아는 나주역은 지금의 신청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위치는 지금 신청사에서 광주방향으로 약2km 남짓 전방에 죽림동에 있는데 광주전남 시민들은 대부분 잘 알고 있는 광주독립학생운동의 진원지이기 때문이다. ’80년대에는 나주역을 자주이용하면서도 그 의미는 알았지만 감동은 별로 느끼지 않았었다. 전남 근무를 마치고 서울 본사에 올라가서 지낼 때 명절 때마다 처가댁인 어른들에게 문안인사 드리러 광주에 오면 인사만 하고는 실은 여기저기 전남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여행을 다녔다. 업무출장하면서 볼 때와 여유를 가지고 여행자의 마음에서 볼 때는 사뭇 다른 새로운 느낌을 받게 되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나주역이었다. 뭉클한 울림을 주었던 장소였기에 2000년 초 광주전남 지사장으로 부임하였을 때에는 일부러 나주역을 다시 찾은 적도 있었다. 그때는 이미 신청사 자리로 옮기고 허름한 스레트지붕 그대로였는데 도기념물 18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었다. 이 허름한 건물 구나주역은 일제가 호남일대에서 자행한 토지 수탈의 근거지였다. 일제시대 이전까지 목포 앞바다에서 영산강으로 이어지는 뱃길이 이어져있는 지리적 특성이 있다 보니 나주는 일본인들이 관심이 많았던 지역이었다. 대동아 전쟁을 준비하던 때 일본 입장에서는 널리 펼쳐진 비옥한 호남평야의 쌀과 곡식을 차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나주역은 일본군의 식량 보급기지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해방 이후 60년대 초에는 나주 비료공장이 준공되면서부터 나주역은 비료수송으로 활기가 넘쳤다. 식량부족으로 보릿고개를 겪던 시절, 정부는 식량증산을 농업의 최대목표로 삼고 나주에 대규모 비료공장을 설치하고 거미줄처럼 촘촘히 얽힌 철도를 이용, 전국 각지로 비료를 수송했다. 충주와 나주에서 생산되는 비료덕분에 당시에 식량은 많이 증산이 되었지만 지나치게 화학비료를 사용, 토지의 산성화와 환경오염이라는 부작용이 남기도 하였다. 나주 비료공장은 한국종합화학으로 인수된 뒤 현재는 LG화학에서 생활건강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전환하여 운영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는 국내나 국외를 여행할 때 높은 빌딩을 보러가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에 여행 올 때 주로 찾는 곳이 남대문, 한옥마을, 성곽, 현충사 또한 경주 불국사, 석굴암 등 오래되고 역사가 있는 곳을 찾는다. 새로운 신도시가 아니라 허름하더라도 오래된 건물이나 시설들 역사의 스토리가 있는 곳들을 찾다보니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주는 천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국내나 외국인들에게 아주 매력적인 볼거리가 있는 곳이다. 5년된 화려한 신도시가 전부가 아니라 누추한 것 같이 보이는 천년의 구도심과 에너지밸리가 어울리면서 더욱 값진 도시로 변모하고 있다. 아직 복구공사가 덜되었더라도 현재있는 것 그대로라도 자부심을 가지고 구석구석 스토리를 만들고 가꾸고 다듬어서 두고두고 추억속의 향기를 내는 아름다운 나주가 되기를 기대한다.

나주역



김형진 박사

공학박사
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 소장 역임
한국신재생에너지학회 부회장
한국수력원자력 혁신성장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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