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 가는 날

기고
시집 가는 날
  • 입력 : 2021. 03.18(목) 13:45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시집 가는 날




젖무덤이 빵빵해지고 가슴과 함께 엉덩이도 벌어져, 네 것이 크냐 내 것이 더 크냐 할 때가 되면 밭을 매러 가드라도 새마을 모자에 수건이라도 둘러쓰고 얼굴에 신경을 써야했던 동네 큰애기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어릴 때 시집간 고모나 언니 뒤에서 눈짐작으로 배운 십자수 뜨기를 한다.

무명천에 풀을 살짝 메겨서 밤새 방망이질로 녹작하게 만들고, 그것도 모자라 숯덩이에 불을 일궈 다리미질을 해서 야체같이 동그란 수틀에 꽉 끼워 넣고 천을 팽팽하게 한 다음, 검정 실, 빨간 실, 파란 실 노란 실을 섞어 스위트 홈(SWEET HOME)이라고 영어로 뜨고는 원앙이나 꽃들을 바탕에 까는 수를 놓곤 했다.

지금은 아주 초보적인 십자수였지만 그때는 바라만 보아도 참 아름다웠다. 그 십자수는 누나들이 시집가면 남편이 장가올 때 마련한 단 한 벌의 먼지 가리개였다.

우리 동네 재규 누나들은 다 예뻤다. 너무 예뻐서 지나치면 눈이 부시고 어찌나 상냥한지 나만 보면 가끔 먹을 것도 주곤 했다.

그런 재규 둘째누나가 시집을 간다.

재규집 앞마당에는 덕석을 서너 개 깔아 초례청을 만들고, 그 가운데로 상을 길게 놓아 떡이며 산자며 과일들을 놓고, 살아있는 암수 닭을 다리와 날갯죽지를 묵어 앉혀 놓았다.

신랑은 파란색 예복에 사모관대를 하고 마을 첫머리에서부터 천천히 재규집을 향해 걸어온다. 신랑 주위는 청등을 든 신랑친구가 앞장을 서고 나머지는 신랑을 호위하고 있다. 그러면 우리 동네청년들은 신랑 앞에 다가서서 짚단 하나를 앞에 탁 놓고 “누구냐고 여쭈어라”하고 다그친다. 신랑은 “머식이에서 온 거식이라고 여쭈어라”하고 받아친다.

우리 동네 청년은 “머식이가 전부 댁네 집이냐고 여쭈어라”하고 또 받아치고, 그리하여 “여쭈어라” 공방이 신랑이 이기면 할 말이 없어진 동네청년이 물러나고, 다시 신부집쪽으로 걸어가지만 얼마 못가서 다른 청년을 만나 ‘여쭈어라’ 말씨름은 계속된다.

만약 신랑이 말씨름에 져서 꼼짝 못하고 있으면, 재규 어머니는 술이든 주전자와 안주가 놓인 술상을 받쳐 들고 와 “어다 인자 그만하고 언능 보내주게나”하고 통사정을 하곤 했다.

신랑이 집에 도착한다. 검은 건을 쓰고 흰 한복을 입은 동네어르신께서 큰 기침을 하고 ‘홀기’를 펴들고 읽기 시작한다.

[그림=김덕남]

홀기를 읽는 순서에 따라 식은 거행되고, “신랑 일 배”하면 신랑은 기운차게 넙죽 신부를 향해 절을 하지만, “신부 일배”하면 내내 서 있던 신부는 색동 예복의 긴 팔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동네아줌마 두 사람의 부축을 받으며 예쁘게 절을 하지만, 그만 엉덩이를 덕석에 주저앉히고 만다. 그러면 동네 여인들은 깔깔거리고 동네남자들은 “거, 애기 한번 잘 낳컸네”하고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를 내던진다.

“신랑 주 일 배”하면, 신랑이 술을 쪽 소리가 나게 받아먹자 뒤에서 누군가가 “저 놈 술로 망할 놈일세”하고 종알거린다.

“신부 주 일배”하면 신부는 그제야 그때까지 가리고 있던 팔소매를 조심스럽게 내리고 그 곱디고운 얼굴을 내밀고는 마시는 시늉만 하고 술을 물리친다.

그런저런 동장 하나하나가 웃음 속에 마무리되어지면 신랑은 신부 옆에 서게 되고, 동네사람들에게 절하는 순서를 끝으로 식은 끝난다.

하지만 마지막은 사진사의 몫. “자, 찍습니다”하고 고개를 이리 틀라 저리 틀라 하면서 펑 소리를 내며 신랑 신부 찍고 가족사진 찍으면 끝.

그날 저녁, 신랑은 동네청년들에게 대들보에 매단 광목에 발목을 묶여서 “왜 우리 동네처녀 가져가냐?”며 발바닥을 여러 차례 맞고 노래도 하고, 신부 데리고 와서 노래를 시키라며 또 몇 차례 맞고는 결국 술잔치를 하면서 밤을 보낸다.

옆방에서는 동네여인들이 모조리 모여 가운에 상하나 놓고 주섬주섬 별 이야기를 다하며 보낸다.

모든 이들이 밤이 이슥해져 물러나면 신랑은 신부가 호롱불을 밝히고 혼자 앉아있는 작은방으로 간다.

“잘 자소.”

재규 어머니의 한마디. 재규 아버지의 큰 기침.

술상을 앞에두고 어색하지만 신랑 신부의 첫 만남.

고만고만한 동네 청년처녀들이 창호지문에 침을 발라 뚫어서 내다보는 호기심.

재규 아버지가 작대기로 마당을 내려치며 호통하는 소리에 아쉽지만 집으로 향하는 동네 청년처녀들. 둘만 남은 신랑 신부는 그제야 서로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는다.

다음날 아침, 트럭이 왔다.
시나브로 마련한 장롱이며 이불장, 경대들이 실려지고 그릇이며 찬기도 차로 옮겨진다. 이불이며 이불 속에 곱게 넣어 두었던 십자수로 이불보자기에 쌓여 실리고, 마당을 나오자마자 떠나는 아쉬움에 신부는 펑펑 눈물을 쏟는다.

차에 탈 때까지 다시 돌아보고 울고, 다시 돌아보고 울고하는 재규 누나가 그때는 무척 떠나기 싫은 줄 알았다. 신부는 가운데, 신랑은 조수석에 타고 재규 어머니의 손 흔듦과 재규 아버지의 아쉬운 기침소리와 함께 차는 떠났다.

그 뒤에 친정에 온 재규 누나는 그때 흘린 눈물만큼이나, 보는 사람마다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