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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인간이 옷을 입고 이불을 덮고 잔 이후로 인간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세 종족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빈대’, ‘벼룩’, ‘이’ 였다.
이 종족들의 속성은 밝은 곳보다는 어두운 곳을, 낮보다는 밤을 좋아했던 바, 거의 벌거벗고 살았던 우리들 어린 시절의 여름보다 구들장이 달구어진 방안에서 옹기종기 한 이불을 덮고 자던 한 겨울의 밤이, 이들의 가장 활발하고 신나는 잔칫날들이었던 것이다.
온 식구가 긁으면서 자고 자면서 긁었다. 그렇지 않아도 긁어부스럼이라고, 피어있는 버짐은 더욱 덧나고 머릿속 기계독은 진물이 좔좔 흘러 아침이면 머리칼이 빳빳해져 있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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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란 놈은 ‘빈대도 낯짝이 있다’는 역설적인 속담처럼 새끼손톱만한 몸뚱어리에 머리는 맨드라미 씨앗만 하여, 대가리를 살 중에서 가장 여린 땀구멍에 온통 박아놓고 피를 빨아야 했던 탓에 뒤척임에는 요리조리 잘 처신하지만, 가끔은 느닷없이 긁어대는 손톱의 공격에는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찢기고 압사하여 피투성이인체로 사체가 되어 속옷에 붙어있곤 했다.
또한 이 족속들의 습성은 낮에는 어두운 벽과 달력의 틈새나 터진 벽지 속에서 집단으로 서식하기 때문에, 가끔씩 점검하는 아버지께 들킬 때면 우글우글 모여 있는 벽면이나 달력을 향해 빨래방망이로 냅다 타다닥 갈겨버린 통에, 벽이나 달력이 검은 피범벅이 되곤 하였다. 결국 우리 식구의 피였겠지만.
벼룩이란 놈은 몸은 작지만 다리가 길고 탄력이 좋아, 혹시나 자신이 발견이라도 될 량이나 싶으면 엄청난 점프력으로 톡톡 튀어 방구석이나 이불더미 속으로 숨어버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
하지만 ‘뛰어야 벼룩’이라는 속담처럼 숨어야 할 거리가 너무 멀다든가 방향을 잘못 잡아 우리의 눈에 띄는 벽에 부딪히기라도 하면, 늘 우리의 검지에 짓눌려 뭉개지곤 하였다.
가끔은 동생들과 벼룩을 한 마리씩 잡아 마루에 놓아놓고, 손바닥으로 마루를 탁 치고는 어떤 놈이 높이 뛰는가 마빡 맞기 내기를 즐기기도 했다.
그래도 세 종족 중 제일 정이 가는 건 이다.
빈대처럼 밝은 기氣만 느껴지면 제 은신처로 숨어버린다든가 벼룩처럼 톡톡 튀어 잡기 힘든 것이 아니어서, 그저 낮에도 몸 어딘가 간질거린다 싶으면 꼴마리 -속옷이나 내의의 허리춤 부분- 를 까서 보면, 참깨만한 이가 방금 빨아먹은 피를 몸속에 가득 담고 곰실곰실 기어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 엄지와 검지로 살포시 잡아 두 엄지손톱으로 꽉 누르면 톡하고 터지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양 손톱에 피가 번지는 기쁨이란.
한 겨울 눈이 내리는 날, 식구들은 아침을 먹고 어머니께서 고이 담아온 화롯불을 가운데 두고 이를 잡는다. 그때는 거의 맨몸에 내의만 걸칠 때여서 새 옷을 갈아입고 입었던 옷은 까뒤집어, 옷의 마무리 선을 따라 숨어있던 이를 찾아내 화롯불에 던지면 조금 있다가 이의 몸이 열기에 팽창해 화롯볼 속에서 톡톡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얼마나 즐거워했는지.
또한 이들은 번식력도 대단해 옷 솔기따라 이 똥과 함께 하얗게 알을 슬곤 했는데, 이것을 서캐 혹은 서까래라고 했던가? 두 엄지손톱을 그것들에 대고 꼭꼭 누르면 따닥따닥 따다닥 싱싱하게 터지는 소리란.
어쩔 땐, 아버지께서 허연 분말봉지를 가지고 와 온 방이며 벽, 그리고 우리들의 머릿속, 사타구니까지 분탕질을 하곤 했는데 그것이 사람 몸에 안 좋은 디디티DDT라고 알았던 것은 그 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어떤 친구들은 길거리를 가다 옷 위로 기어가는 이를 발견하자 “너 추운데 왜 나왔어?”하며 다시 옷 속에 넣어주는 섬세한 배려와 정도 있었다.
그리하여 어릴 적 우리들에게서 떼어내려야 뗄 수 없었던 인연과 피를 나눈 사이였으며 약하지만 성가신 존재였던 종족들은 연탄이 도시와 시골로 보급되기 시작하자, 일산화탄소라는 가공할 치명적 가스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래도 몇몇은 종족보전의 사명감으로 어찌어찌 살아남았지만, 인간이란 작자들이 한 달에 한번이나 빨거나 감았던 옷과 머리도 날마다 벗어던지고 감고하는 통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사라져 가고 말았다.
머릿속 이들을 촘촘하게 빗어 잡아냈던 참빗이란 무기와 함께.
지금도 보고픈 이.
그리운 이.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09.23(수)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