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집 한 채

기고
무서운 집 한 채
  • 입력 : 2021. 04.15(목) 15:22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무서운 집 한 채




예전에 마을의 산 어귀에 낡고 슬프고 무서운 사연의 작은 집 한 채가 있었다.
이름하여 ‘상엿집’

1.
맨 앞에는 백구 한 마리가 뒤돌아보고 또 다시 뒤돌아보다가 달려 나가고, 그 뒤엔 요령소리와 함께 몸 속 깊은 곳에서 그렁 올라와 굵고 쉰 한숨 깊은 여운의 소리가 있다.

어어허 쩔렁 어어허 쩔렁 어너리 넘자 어어허 쩔렁
이제 가면 쩔렁 언제 오나 쩔렁 서러워서 못가겠네 쩔렁


그 위엔 여섯 장정의 상여꾼이 메고 가는 하얀 꽃상여가 길 모양 따라 흔들거리고, 요령꾼의 소리에 화답하는 상여꾼의 소리가 있다.

어어허 어어허 어너리 넘자 어어허

그 뒤엔 상주들이 삼베옷에 삼베 건을 쓰고, 볏짚으로 새끼를 엮은 허리띠를 추스르며, 지팡이를 짚고 ‘아이고 아이고’ 곡哭을 하며 뒤따른다. 여인네들은 머리에 볏짚 끈을 매고 하얀 소복에 볏집 허리띠, 지팡이를 두드리며 통곡의 슬픈 곡소리로 뒤따른다.

그 뒤엔 주변 마을에서 하나 둘씩 모여진, 대나무 장대에 매어져 펄럭이는 오색 만장들이 뒤를 따르고 있다.

근조 함양박공지구謹弔 咸陽朴公之驅 대형 통곡大兄 痛哭

자신의 마음을 담은 여러 문구들이 자신의 이름이나 마을 이름과 함께 적혀있었던 것인데, 아마 지금의 화환과 같은 의미였을 것이다.

[그림=김덕남]

그 행렬은 마을 돌아 나와 장지까지 신작로를 거쳐, 산길로 접어들어 멀어져갔다.

펄럭이는 만장들 앞으로 하얀 점들의 행렬. 그 모습이 봄철 진달래꽃 밭을 지날 때면 아름답다 못해 황홀함이었다.

고인의 무덤이 만들어지면 하얀 꽃상여와 만장들은 불에 태워지고, 만장에 쓰였던 대나무 장대나 새끼줄로 묶어 상여를 받혔던 나무틀들은 다시 해체되어 상엿집 구석으로 되돌아갔다.

2.
“두부나 먹을까?”

밤이 어느 정도 깊어가고 수십 번 보아서 닳을 대로 닳아진 길창덕과 김종래의 만화책을 하릴없이 뒤적이고 있을 때, 마을형님의 그 말은 갑자기 방 안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옆 마을 두부 집은 지금 한창 맷돌로 간 콩들이 가마솥에서 보글보글 끓으며 익고 있을 것이다. 두부에 김치를 잘게 송송 썰어서 바가지에 넣고 숟가락으로 뭉텅뭉텅 비벼 한 입씩 떠먹는 그 맛을 어찌 모를 것인가.

“단.”

마을형님이 단서를 달았다.

“너희들 중 둘이서 상엿집에 가 나무를 하나만 가져오면 너희들 배가 터질 만큼 사 주지.”

어린 우리들은 순간 모두 움찔거렸다.

이 달 밝은 밤, 항상 어둠의 두려움에 밤이면 측간도 제대로 가지 못한 나이들이 아닌가. 더구나 마을을 조금 벗어나 산 어귀에 홀로 있는 상엿집은 측간보다 너무도 멀고, 원한많은 귀신들이 허이허이 운다는 소문도 있는 곳이 아닌가.

“둘이 보낸다잖아. 사내새끼들이 그것 하나 못해? 잠지를 떼어버려, 잠지를.”

우리들은 결국 가위바위보를 하였고 언제나처럼 나와 상걸이가 뽑혔다.

‘니가 먼저 가라, 니가 먼저가’하며 서로의 등작을 밀며 둘은 상엿집으로 향했다.

달은 한없이 밝았는데 그 그늘은 더욱더 어두운 법이어서, 어쩌다 쥐새끼라도 지나치면 둘은 소스라쳐 뒷걸음을 쳤다. 그리하여 소름의 끝마저 가득 세우고 상엿집에 도착했을 때 소쩍새가 울었다. 그 소리가 귀신의 울음으로 들렸다.

문짝도 덜어진 상여집 속은 달빛 한 조각 들지 않아 어둡고 깊은 상자 속 같았다.

둘이 손을 꽉 붙잡고 문을 들어서려는 순간, 그 어둠 속에서 갑자기 시커먼 두 개의 형체가 후다닥 뛰쳐나왔다.

상걸이는 그 자리에서 넘어져버리고, 나는 그 공포의 끝에서 마을 쪽으로 달려 사라지는 두 남녀를 가물거리는 의식으로 바라보면서, 달빛에 보이는 한 사람의 머리모양이며 옷매무새가 어쩐지 우리 사촌누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은 어쩔 수 없다. 지금 생각하면 마을형님은 이미 그걸 알고 우리를 보냈던 듯싶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마을에 들어서자, 마을형님은 어귀에서 우리를 기다리며 비식비식 웃고 있었던 것이었다.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