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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말 무덤, 언총(言塚)이었다. 필요 없는 말로 인한 분쟁을 원치 않던 선인들의 염원이 담겨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말이 많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무엇이 진실인지를 헷갈리게 한다. ‘남아일언중천금, 침묵은 금, 경청’을 해야 한다면서도 혀는 따로 논다. 실천하지 않은 양심은 위선이라 했는데도, 말도 안 되는 말을 하며 본질까지 왜곡시킨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를 아는지 모르는지, 정말 마음이 담긴 말을 찾을 수가 없다.
상대의 말을 높이면서 본인은 겸손하게 하고,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한 요한복음의 시작과 같이, 그 가르침을 믿는 그대로 행하면 되는데도 그렇지 못한다. 이럴 때, 한번쯤 가볼만한 곳이 있다. 장흥 관산 곁마실에 위치한 ‘방촌유물전시관’이다. 500년 장흥위씨 터에 2005년 개관했다. 1993년부터 정부에서 추진한 전통마을 조성사업의 하나였다. 주민들도 정성을 모아 가보까지 전시유물로 내놓았다. 다른 지역에서도 시도해볼만 한 일이다.
입항조인 안항공 위덕후(1556~1615)의 계자서誡子書) 중 ‘형제간에 화목해라. 자손을 잘 가르쳐라’가 유독 눈에 들어온다. 존재 위백규(1727~1798) 선생의 학규에는 ‘말은 신중해야 하니, 문자 예법 의리에 관한 것이 아니면 하지 않는다. 화목, 공경, 실수를 바로 잡고 선을 권하는데 힘쓸 것이며, 교만하지 말고 자신이 옳다는 생각만 하지 말아야 한다.’고 쓰여 있다. 매일 오경(새벽 3~5시)에 일어나 정리정돈을 하고 글을 읽었다고 한다.
얼마 전엔 강원국의 ‘나는 말하듯이 쓴다.’를 보았다. 말 같은 글, 글 같은 말이 되어야 한다며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이 없다고 한 책이다. 말미에선 ‘자나 깨나 말조심’하라고 한다. 남의 험담과 사생활을 논하고 이간질을 하면 구설에 오르게 되니,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조심해라. 특히 화났을 때, 술을 마셨을 때, 임기응변의 유혹에 빠졌을 때와 수다를 떨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를 경계하라. 좋은 말도 여러 번이면 소용없는 소리가 되니 적을수록 좋고, 잔소리를 많이 해도 변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했다. ‘우리끼리’라고 하며 폭언, 저주, 야유, 비하, 조롱, 혐오스런 말을 해도 안 된다. 하늘이 알고 녹음까지 된다며, 내게서 나간 것은 반드시 내게로 돌아온다고 한다.
소통 방법도 제시했다. 상대의 주파수, 수준, 기대, 유형, 능력, 반응에 맞춰라. 이를 위해 공유, 헌신, 분수처럼 오르는 말도 있게 하며 가슴으로 들어라. 원칙, 정체성, 일관성, 멀리 보는 안목, 인내, 소신, 진정성과 용기가 있어야 하고 당장은 손해가 나더라도 나를 던질 줄 알아야 한다. 이를, 위대한 영혼 간디(1869~1948)는 ‘내 삶이 곧 나의 메시지다(My life is my message)’라고 그의 묘비에 적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과 글에는 한 사람의 인품과 성격이 들어간다. 그래서 말이 어려우면 먼저 글로 쓰면 된다. 말을 잘할 수 있고 만상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생의 타이밍을 위해 신중하면서도 결단을 할 줄 알게 된다. 누구에게 축하, 위로, 사과, 지지를 보낼 수 있고 내가 받을 수도 있게 되는 일이다. 차츰 행동하는 양심과 생각으로만 끝나는 회한의 차이가 어디서부터인지를 가늠하게 된다. 지식이 아니라 실천에 대한 성찰의 문제라는 거다. 이제 좋은 말은 모으고 막말은 묻어가는 일상을 열어갈 시간이다. 내 마음의 문고와 말 무덤을 하나씩 만들어 두는 것도 좋겠다. 그런데 내 고향의 말 무덤은 잘 있는지 모르겠다. 한번 가봐야겠다.
- 본 기고는 글쓴이의 허락을 맡아 익명으로 게재하는 글입니다.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09.23(수)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