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그런 가족은 필요 없습니다

기고
가정의 달, 그런 가족은 필요 없습니다
  • 입력 : 2021. 05.17(월) 10:46
  • 영암일보
목포여성의전화 김영란 대표
목포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5월에는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 ‘부부의 날’처럼 가족과 관련된 날들이 있고, 그래서 우리는 5월을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가족으로 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조차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다. 바로 자기 가족 때문에 몸과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간혹 목숨까지 잃는 사람들이 그렇다. 모욕과 욕설, 구타와 살해에 이르기까지... 사회는 이런 일을 두고도 ‘그건 당신의 가정 일’이라면서 외면해온 지난 시간을 생각하면 매우 미개했던 시절로 기억할 수 있다.

1990년대에는 가정폭력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했고 오랫동안 남편으로부터 폭력을 당해온 여성들이 남편을 살해하는 정당방위 사건을 비롯해서 아들이 폭력 아버지를, 장모가 폭력 사위를 살해하는 정당방위 사건이 연이었다. 이에 한국여성의전화는 1994년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을 위한 전국연대’를 결성하고 1996년 10월 국회에 법 제정을 청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97년에 와서는 남편의 구타로 숨진 여성들의 가족이 한국여성의전화를 찾아와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다. 사건들은 언론에 보도되었고, 한국여성의전화에서는 5월 21일에 ‘매 맞아 죽은 여자들을 위한 위령제’를 지냈다. 그런데 우연히도 바로 그날 18년 동안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남편을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정폭력방지법 제정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이렇게 ‘죽거나 죽여야만 끝나는’ 가정폭력을 더는 가정 내에 맡겨두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커졌고, 드디어 1997년 ‘가정폭력범죄처벌등에 관한 특례법’과 ‘가정폭력방지와 피해자보호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아내폭력 피해 여성 중에는 법 제정을 알리는 기사를 오려서 안방 벽에 붙여 놓고, ‘네가 나 또 때리면 경찰에 신고한다’는 은근한 압박을 가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가정폭력은 마치 바퀴가 고장 난 수레 안에 놓여 있는 것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최근의 사건을 보자. 지난 5월 6일 법원의 ‘접근금지명령’이 나오자 피해자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가해자가 여전히 집에 있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출동한 경찰은 강제집행은 법원이 해야 할 일이라며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심지어 “남편의 얘기에도 일리가 있으니 떼쓰지 말고 (가해자와) 이야기해 봐라”, “양보하라” 등 한껏 가해자의 편에 서서 피해자를 탓하고 돌아갔다. 경찰이 출동한 현장에서 제대로 된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이 비단 이번만은 아니다. 2020년 한국여성의전화 상담통계 분석을 보면 가정폭력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피해자에게 “남편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라”거나 “별것도 아닌 일로 그런다”부터 “차라리 칼에 찔리세요, 증거가 남게”라는 막말까지 철저하게 남성, 즉 가해자 편에서 폭력 사건을 다루거나 “우리 집에 아무 일 없다”는 가해자의 말을 듣고 별다른 조치 없이 돌아가는 무능력을 보여왔다. 자신의 피해를 신고해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 경찰로 인해 피해 여성은 굶주린 고양이 앞의 쥐 신세로 남겨진다.

이러한 경찰의 일상다반사로 인해 목포여성의전화를 포함해서 전국 25개 지부가 동시에 진행하는 ‘가정폭력 없는 평화의 달’의 올해 캠페인 슬로건은 ‘가정폭력처벌법은 가정폭력을 처벌할까요?’이다. 특히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조항을 개정하고 강력한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목적조항이란 법이 달성하려는 목적과 입법 취지를 국민이 이해하도록 밝혀둔 조항이다. 또한 이로써 법령의 개별 조문에 대한 해석과 집행 지침을 제시하게 되는, 해당 법령 중 치명적으로 중요한 조항이다. 가정폭력처벌법 제1조 목적조항은 가정폭력범죄를 범한 사람에 대하여 환경의 조정과 성행의 교정을 위한 보호처분 하도록 하고 가정폭력범죄로 파괴된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가꾸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즉 법명은 가정폭력‘처벌’법이지만 상담과 교육으로 처벌을 대신하자는 것이고, 처리는 가정의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는 방향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그 방향은 대체로 피해자가 변해서 가해자와 잘 지내기를 바라는 쪽으로 남성중심적인 판단자에 의해 실현된다. 이런 식이기 때문에 2018년 신고된 가정폭력 중 입건 처리된 건수는 16.7%에 불과했고,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가정폭력 기소율은 7.1%에 그쳤다. 그러므로 가정폭력처벌법의 목적조항은 ‘피해자 인권 보호’와 ‘가해자 처벌’로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세상에 ‘좋은’ 폭력은 없다. ‘좋은’ 폭력과 ‘나쁜’ 폭력을 구분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치는 순간 폭력이 정당화될 수 있다. 세계적인 석학 슬라보예 지젝은 “폭력은 ‘죽음의 힘’”이라 했다. 만의 하나 ‘좋은’ 폭력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 역시 죽음의 한 자락이므로 결코 좋을 리가 없다. 사회의 통념상 세상 인연 중 가장 소중한 관계라고 알려진 가족 사이에 이런 ‘죽음의 힘’이 퍼져 있는데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면서 허용하거나 묵인하는 것은 오히려 더 참혹한 절망이자 두 번의 죽임이다. 그러니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사회가 나서게 하자. 이 글을 읽고 동의하신다면, 옆의 QR코드에 핸드폰 카메라 초점을 맞추어서 가정폭력처벌법 목적조항을 개정하는 캠페인에 서명하는 것부터 시작하자.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