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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채 아래 대문 가까운 곳에 사랑채가 있었고 그 가운데 사랑방이 있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나는 할아버지를 본 적이 없다. 오직 할머니만이 나의 군대시절까지 사셔서 내 어린 기억 속의 사람들 중에 5할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할머니는 내가 자신의 환갑 때 태어났다고 늘 나를 ‘갑이야’라고 불렀다. 그리고 너무 부지런했던 덕택에 점점 휘어져 가는 할머니의 등을 기억하고 있다. 돌아가실 무렵에는 지져 가는 할머니의 등을 기억하고 있다. 돌아가실 무렵에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모습이 거의 기억자에 가까웠다.
생각해보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나이가 된 내가 이 글을 내몰고 있다.
사랑채는 쇠양간과 사랑방, 곳간 이렇게 세 칸으로 구분되었다. 쇠양간에는 사랑방을 데우는 큰 무쇠 솥을 건 아궁이가 있었고 그 솥에는 늘 볏짚을 썰어 만든 쇠여물이 끓고 있었다. 솥에서 김이 푹푹 올라오기 시작하면 바로 옆 쇠양간의 소가 고개를 틀면서 ‘음매’ 소리를 질러댔다.
내가 태어나기 전,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절의 방의 구조는 이러했을 거였다. 본채 큰 방은 할머니, 부엌방은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건넌방은 시집 안 간 고모들이 거처했을 거였다. 할아버지는 늘 사랑방에서 손님이나 친구들과 마주했을 것이고 밤에는 큰방으로 스며드셨을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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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시점의 사랑방은 일꾼 삼식이의 방이었다. 그리고 큰방은 큰아버지와 큰어머니, 부엌방은 할머니, 건넌방은 고모들이 다 결혼을 하여 비어있었다.
일꾼 삼식이의 밥그릇을 지금도 기억한다. 반찬 서너 가지에 국 한 그릇, 놋쇠 밥그릇에 그 밥만큼 고봉으로 올라간 밥, 내 얼굴만큼한 밥을 그는 어느새 다 먹고는 늘 아쉬운 표정을 짓곤 했다. 그러면 나는 할머니가 곳간에 숨겨둔 곳감이나 고구마, 무 같은 먹을거리를 몰래 훔쳐다 삼식이에게 주었다.
그 겨울, 송판을 덧대고 소나무 각목을 대패로 밀어 못을친, 두 개의 짝으로 된 마구간 문을 두 손으로 끼이익 소리까지 밀고 들어가서, 아궁이 옆 대쪽으로 빗살처럼 살을 만들고 창호지를 바른, 그러나 바른 지 너무 오래되어 여름엔 구멍이 숭숭 뚫린 곳을 창호지 조각이나 신문지 조각으로 덕지덕지 때워놓은, 다시 사랑방 문고리를 잡아당기면, 거기 삼식이가, 그때 유일하게 살이 덕지덕지 찐 이 지역 국회의원의 바래인 사진이 동그랗게 찍힌 한 장으로 된 일 년치 달력이 벽지처럼 붙여진 옆에서, 볏짚으로꼰 새끼를 덕석을 만들고 있었다.
내가 고무신을 벗고 곱은 손을 만지며 문지방을 넘어서면 삼식이는 내 손을 잡아당겨 항상 담배 냄새가 나는 입으로 호호 불어주곤 했다. 그리고 그 방은 삼식이가 피우는 담배 냄새와 거의 추위가 오면 목욕을 안 한 관계로 삼식이의 머리와 몸에서 나는 쉰내와 발 고린내, 볏짚의 냄새 등이 어우러져,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냄새가 항상 가득 배어있었다.
나는 거기를 좋아했다.
삼식이가 덕석이나 망태, 가마니, 소쿠리나 소 입마개, 맷방석이나 새끼줄을 만들면서 도란도란 들려주는 심청전이나 장화홍련전, 홍길동이나 임꺽정 등의 옛날이야기를 거기서 섭렵했다.
벼룩이가 톡톡 튀면 담뱃불 자국이 숭숭단 방바닥을 손바닥으로 치고는 했고, 볏짚으로 사람이나 동물모양의 서투른 형태도 만들기도 했고, 땟물이 칠을 한 듯한 못침에 볏짚을 몇 가닥 얹고 이야기를 듣다가 그만 잠에 빠지곤 했다. 그러면 삼식이는 자신이 덮던 때가 묻고 고린내가 나는 이불을 다락에서 꺼내어 나에게 살며시 덮어주었다.
아, 지금도 보고 싶은 삼식이. 삼식이는 이제 어떻게 늙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섣달 그믐날이 되면, 모처럼 새 옷을 챙겨 입고 삼식이는 뭍 아래 동네에서 지개를 지고 올라온 자기 아버지와 함께, 새경으로 받은 볏가마니를 나누어 짊어지고, 우리 식구들의 배웅을 받으며 설을 쇠러 자기 집으로 갔다.
그리고 한 달 후, 2월 하드렛날이 되면 다시 사랑방으로 돌아왔고, 그날 괭이와 삽을 들고 칡을 캐러 산으로 올라갔다.
더럽다기보다는 포근한, 어지러운 방이라기보다는 정겨운, 그 묘한 그리운 냄새와 사랑방의 풍경을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세월이 흘러 삼식이도 떠나가고, 소도 없어지고, 쓸데가 없는 물건들을 보관하는 장소로 변해버리고, 그곳이 낡아 허물어지는 곳이 점점 많아지자, 더 세월이 흐른 뒤 나는 그 사랑채를 굴삭기를 불러 추억으로 만들어 버렸다.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
2026.09.23(수) 17: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