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풍

기고
소풍
  • 입력 : 2021. 06.17(목) 09:46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소풍



장롱 속 깊은 구속엔 설날에 입고 개켜 두었던 내 꼬까옷이 있었죠. 나는 어머니 몰래 그걸 꺼내 입어보곤 했었죠. 봄 소풍날이 곧 돌아온 겁니다.

소풍날이 돌아오면 왜 그리도 내내 맑던 하늘이 어두워지고 비만 올려 하는지. 어린 마음은 애가 탑니다. 하기야 총 열두 번의 소풍날 중에서 아마도 두세 번은 찢어진 종이우산을 쓰고는 책보를 매고 울면서 학교를 가야만 했으니까요.

그날은 날씨가 너무 화창하였죠. 삼십년이 넘는 벚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있는, 구림鳩林에서 죽정竹亭으로 난 신작로를 따라, 우리는 학년 별 반 별로 열을 맞추고, 선생님이 ‘하나아 두울’ 하면 우리들은 목소리도 우렁차게 ‘세엣 네엣’ 하면서, 항상 그렇듯이 도갑사道岬寺로 향했고요.

우리의 행렬 뒤에 따라오는 이들은 늘 아이스께끼나 사이다를 파는 장수들이었습니다. 다른 장수들은 기억이 잘 나지 않네요. 아이스께끼통 주변으로 얼음에 소금을 뿌려 더 차갑게 한, 보기에도 크고 묵직한 통을 아저씨는 지게에 지고 땀을 뻘뻘 흘리며 따라왔던 것 같네요.

아, 미화표 사이다. 찬물에 사카린만 쳐도 그 단맛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으려고 혀끝을 내밀어 그릇을 흔들었던 우리들이 아니었어요? 그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면, 입속을 토도독 쪼아대는 상쾌함. 더구나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조여 오는 짜릿한 느낌. 그리고 위 속에서 타다닥 퍼지면서 다시 솟구쳐 올라 ‘어허억’하며 트림까지 쏟아내는 개운한 만족감. 더불어 얼음 속에서 갓 꺼낸 시원함까지. 그래서 어머니가 준 1원짜리 몇 개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얼마나 많이 만졌는지 모릅니다.

우리들은 지금은 저수지가 들어선 자갈과 돌들이 많은 계곡길을 따라 도갑사를 거쳐 조금 올라가면, 화강암을 쪼아 만든 거북이 형상의 거북등에, ‘도선국사 수미비道詵國師 守眉碑’가 있는 공터에 도착합니다.

예쁘고 도무지 말도 없고 새 하얀 피부가 너무 고왔던 우리 동창인 딸을 가진 교장선생님의 길고 긴 주위 말엔 모두들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어머니가 어젯밤부터 된장 속에 파묻어 두었던 걸 꺼낸 잘잘 썬 돼지고기와 단무지 등을 넣어, 참기름에 볶은 밥을 고소한 김에 돌돌 말아 가지런히 자르고, 두 단으로 정성스레 도시락에 꽉꽉 담아준 김밥과, 껍질을 까고 한 입 깨물면 입속을 아찔한 맛으로 휘감았던 삶은 계란 몇 개, 아이스께끼와 사이다 생각뿐입니다.

[그림=김덕남]

하지만 그때는 얼마나 가난했던지 이 전체를 단념해야 했던 애들도 많았습니다.

후우, 연님아.

노래자랑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유행가라는 거 몰랐어요. 오로지 음악책에 나오는 동요만 불렀죠.

-퐁당퐁당 돌을 전지자 누나 몰래 돌을 던지자
-초롯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
-엄마가 섬그늘에 굴 따러 가면
-반짝 반짝 작은 별 아름답게 빛나네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너무 잊어버렸네요. 지금 이런 동요 책이 있으면 다 부를 수 있을라나? 지금의 초등학교 음악책엔 이런 동요가 있을까요?

아무튼요. 아이들이 두 손을 모으고 입을 쪽쪽 벌리면서 이런 동요를 부르면요. 신스미자 선생님은요. 연필 한 자루나 공책을 주면서 ‘참 잘 했어요’ 하셨어요. 그때 나는 노래를 부르는게 너무 부끄러워 6년 내내 한 번도 못 나갔던 거 같아요.

점심시간이 돌아왔습니다. 너무나 아까워 조금씩 나눠 마셨던 사이다 한 병과 김밥과 삶은 계란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요. 옹기종기 모여 맛있게 점심을 먹던 광경이 여러분도 상상이 가시죠?

점심이 끝나면 그래도 허기진 아이들은 산속으로 들어가 아직 어린 푸른 맹감을 따 먹기도 하구요. 아이스께끼를 핥으며 도선국사 수미비의 거북이 목에 올라 무등을 타거나, 도갑사 계곡으로 흐르는 차갑고 맑은 물에 들어가 발을 담그거나 가재를 잡기도 했고요. 여자애들은 저희들끼리 빙 둘러앉아 수건놀이도 햇던 것 같아요. 어떤 애들은 공터를 에워싸고 있는 잡목들이나 돌들을 유심히 살펴보곤 했답니다. 왜냐고요? 다음이 보물찾기 시간이었거든요.

보물은 늘 똑같습니다. 종이쪽지에 적힌 보물은 책받침, 공책, 연필, 크레용, 지우개 딱 이 다섯 가지뿐입니다.

선생님들이 보물이 적힌 종이쪽지를 군데군데 숨기고 있는 동안, 우리들을 모여 놓고 시간을 끌던 선생님의 노래를 기억하나요? 선생님들도 절대 유행가는 안 불렀어요. 딱 하나 기억나는게 있다면, 총각 선생님이었던 한경철 선생님의 <고향생각>입니다.

-해에는 져어서 어두우운데 찾아오오는 사람 어없고 밝으은 다알만 쳐다보오니 외에롭기 짜아기 어없네

지금 생각하면 어엿한 가곡이지만 선생님은 트로트풍으로 불렀나 봐요. 너무 구성져서 그대는 꼭 배우고 싶었죠.

우르르 우리들은 공터 숲 속으로 달려 흩어집니다. 몇몇의 아이들은 벌써 보물쪽지를 주어들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나도 열심히 좇아가 돌 틈이나 나뭇가지 속을 뒤져보지만 이번 소풍에도 내 손엔 보물 쪽지는 없습니다.

눈물이 그렁 맺힙니다.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