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염

기고
뇌염
  • 입력 : 2021. 07.08(목) 10:25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뇌염



그해 여름방학은 델 것처럼 더웠고 고요했습니다.

영곡아제의 집이 있는 골목길은 거의가 대나무 울타리여서 바람이 일면 대나무의 스슥이는 소리가 항상 머물고 있는 곳이었죠.

하지만 그해 여름 한낮은 바람도 죽은 듯이 잠들고, 동네사람들은 어찌된 일인지 다른 골목으로만 살금살금 다녔답니다.

오죽하면 이 울타리 저 울타리로 살살 날아다니던 대잠자리의 날갯짓 소리가 들릴 정도였으니까요.

우리 동창인 정희가 뇌염에 걸렸기 때문이었죠.

영곡아제 집 주위의 막막한 적막.

그해 여름은 영곡아짐의 그 시원한 웃음소리도 영곡아제의 큰 기침소리가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답니다.

햇살만이, 대숲이 약간 흔들릴 때, 졸음에 겨운 듯 끄덕이기만 했답니다.

언제나 말이 없이 조용하기만 했던 정희.

우리들이 숨바꼭질이나 비석치기를 할 때도 한쪽 구석에 쪼그려 앉아 미소만 짓던 정희.

갸름한 눈웃음이 너무 예뻤던 정희.

12살, 막 피어난 수선화 같은 정희.

영곡아짐의 울음소리가 들린 것은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이었습니다. 그것도 잠시.

백구만이 커엉컹 목이 멘 듯 서럽게 짖어댔답니다.

무내미 어느 소나무 옆에 돌무덤이 하나 생겼다고 누군가 내 귀에 속삭였던 때는 여름방학의 마지막 전 날이었습니다.

그제야 비가 억수로 내리고, 대숲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며 바람이 불고, 젖은 몸을 이끌고 자립문을 열면서 큰 기침 소리로 빗소리를 쫓아내던 영곡아제의 모습을 보았을 때는 우리의 여름방학이 끝난 날이었습니다.

첫 등교 날, 번덕지에 여느 대처럼 모여 학교로 몰려가던 우리들 속에 정희만이 볼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들은 어느 누구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림=김덕남]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