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나 대학 원서 한번 써 보면 안 돼?”

기고
“아빠, 나 대학 원서 한번 써 보면 안 돼?”
  • 입력 : 2021. 07.15(목) 09:59
  • 영암일보
금정면 이영주 면장

“으~ 흐~ 흐~ 흐, 으~ 흐~ 흐~ 흐~ 흐.”

나의 울음소리다.

2016년 11월 17일 수능시험을 보고 바로 19일에 서울 고시학원을 가겠다는 딸을 대려다 주는 차 안에서 현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

한참 차 안에 적막이 흘렀다.

나는 속으로 울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19세 청춘은 다른 친구들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을 것이다. 대부분 대학에 간다. 대학을 가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고, 내 마음도 물론 보내주고 싶었으나 할 수 없었다. 아니,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국가와 인류 사회 발전에 필요한 학문을 연구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많은 학생들이 목적의식 없이 남이 가니까 간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가지 않으면 자녀 인생이 잘못될까 걱정되고, 보내지 않으면 나쁜 부모라고 비난받을까 봐 어쩔 수 없이 보낸다. 대학에 있는 동안은 심리적으로 편하기 때문이다.

한참 후에 나는
“현지야, 미안해. 아빠도 그렇게 해 주고 싶어. 다른 친구들 다 가는데 너도 당연히 가고 싶겠지…. 너는 공부를 다른 친구들보다 훨씬 열심히 했지만, 목숨 걸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안되었다고 했지? 대학 원서를 쓴다면 네가 배우고 싶은 학과에 쓰기보다는 분명히 합격할 수 있는 곳에 쓸 거야. 대학에 합격하면 네가 공무원 시험 공부할 때 마음이 더 편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공무원 시험은 대학 시험보다 훨씬 더 어려운데, 너는 생각 안 할지 모르지만, 공무원 떨어지면 학교에 가면 된다고 네 세포는 느낄 거야. 물러날 곳 없이 죽을 각오를 하고 해도 합격하기 어려운데 대학에 합격하면 정말 더 어렵지 않겠니? 대학에 합격하는 것이 너에게 도움보다 해가 더 될 거라고 생각해. 지금까지 열심히 했기 때문에 몇 년만 더 하면 분명 합격할 거야. 공무원 합격하고 대학에 가면 안 되겠니? 정말 미안해. 대학에 못 가는 것이 아니라 몇 년만 미루는 거야”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현지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바로 “아빠, 알았어”라고 해 주었다.

사람들은 대부분 비겁하다.

나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자기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했다. 많은 전문가들이 하는 말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따라하면 편하고 다르게 하면 불안하다. 가치관이 확실하지 않을 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부모가 선택하는 방법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그 말이 맞았다. 저학년일 때는 다른 아이들과 차이가 났으나 차츰 비슷해졌고 아이들도 점점 흥미를 잃었다. 자신만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서 점점 더 불안했다. 딸 성적은 중간 수준? 아들은 하위. 엄마, 아빠가 공무원이면서 아이들에게 공부도 안 시킨다는 얘기가 들렸다. 형님은 나에게 아이들이 커서 뭐가 되게 하려고 그러냐고 했다. 강제로 시키면 더 잘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그 시기도 이미 지나 버렸다. 내가 영원히 같이 해 줄 수도 없고 하라고 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비겁하다.

딸은 고민할 것 없이 영암여고에 갔다. 타지로 가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갈 실력도 안 됐다. 이것이 오히려 다행이었다.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공부란 평생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가 하고 싶고 필요할 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목표가 있으면 잠재 능력이 활동한다.

딸은 중학교 때까지 하고 싶은 것이 있긴 한데 그것이 확실한 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더 고민하더니 고등학교 1학년 때 공무원을 해 보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급속도로 공부에 집중하더니 그 결과 기적을 만들어 냈다. 1학년 말에 전체 석차가 51등이나 올랐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목표를 정한 것만으로도 숨어있던 잠재 능력을 500% 끌어낸 것이다.

고3 때부터 공무원 시험을 봤으나 합격선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아 다행이었다. 열심히 하면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을 갖고 혼자 인터넷으로 서울에 있는 고시학원에 상담 예약을 해놓고는 여름방학 때 가서 상담하고 1년분 학원비를 한꺼번에 다 주고 왔다.

딸은 스스로 독 안에 든 쥐가 되는 선택을 했다.

서울에 올라갈 때 딸에게 스마트폰을 사 주겠다고 했더니 그것이 있으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거라며 안 사겠다고 했다. 공부하면서도, 집에 왔을 때도 친구들에게 전혀 연락하지도 않고 집 밖으로는 나가지도 않았다.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밖에 나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좀 놀고 가라고 했는데도 시험 당일 올라가거나 집에서 잠만 자고 바로 올라갔다.

“현지야, 왜 밖에도 안 나가고 친구도 안 만나니?”

“친구들 만나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고 밖에 나가면 아는 사람 만나게 되고 그 사람들이 뭐 하냐고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할 것 같아서 그래.”

현지는 학원에서도 동료들과 공식적인 인사만 하고 친하게 안지낸다고 했다. 친해지면 얘기하고 싶고 그러면 시간을 빼앗겨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학도 안 가고 친구도 안 만나면서 시험에 떨어지면 자기가 쪽팔린다는 얘기였다. 마음이 아팠다.

현지가 전화해서 엉엉 울었다.

학원 선생님께서 영어 기초가 너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쪽팔림은 독한 마음을 먹게 한다. 독 안에 든 쥐는 독을 만든다. 독방은 강한 인간이 창조되는 공간이다. 첫해 시험을 4번 봤는데 자기 실력을 아는지 합격자 발표도 확인하지 않았다. 나는 5년 안에만 합격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공부에 지치지 않기만 간절히 바랐다.
2018년 6월 전남 지방직을 봤다.

점심 먹으며 채점을 하더니 좀 어렵겠다고 했다. 다행히 실망하기보다는 영어를 잘 봤다며 좋아해서 대견했다. 7월에 합격자 발표하기 전에 도청 아는 형님께 물어봤더니 그 점수는 어려울거라고 했다. 당연히 안 될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서운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현지 합격]

기적이 일어났다. 내가 합격한 것보다도 더 기분 좋았다. 이번에 문제가 어려워서 합격선이 낮아졌단다. 문제가 어려웠는데도 현지는 평소 자기 실력의 200%를 발휘했기 때문에 합격한 것이다. 5년을 계획했는데 ‘1년 반’ 만에 합격해 버렸다. 얼마나 감동적인가!

스마트폰, 친구, 쉬는 것, 대학을 미룬 것, 영어 실력이 없다는 선생님의 직언, 쪽팔림과 목숨을 건 노력의 대가다. 무엇보다 공무원이 되겠다는 강한 목표를 가지고 스스로 독 안에 들어가서 독을 품고 잠재 능력을 끌어내어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었다. 서울대학교 합격한것보다도, 사법고시에 합격한 것보다도 좋았다.

지금 현지는 공직생활을 하면서 만족하고 있다. 어려서 적응하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젊어서 그런지 나보다도 더 잘하고 있다. 현지는 자기가 대학을 가지 않고 공무원을 택한 것은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석현이는 고3 때 나와 미션을 수행하면서 자존감을 키웠고, 자격증도 캐드와 목공, 도장까지 무려 3개를 취득했으며 운전면허증까지 땄다. 게다가 졸업도 하지 않은 학생이 군대를 지원해서 2019년 3월에 입대하여 군 생활을 충실히 하고 있다. 지금도 자기가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매일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직업은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내가 원하는 곳은 가기 어렵고,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거의 없다. 준비 없이 어떤 일도 이룰 수 없고 한 번에 되는 일도 없다. 자주 반복해서 익숙해지기 전에는 처음에 다 어렵다.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야 한다.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하고 싶은 일은 취미로 부담없이 즐기면 된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할 수 있는 일’이 ‘하고싶은 일’로 바뀔 것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면 잘하게 되고, 잘하면 좋아하게 되고, 하고 싶은 일이 되어 자신의 천직이 된다. 좋은 일, 훌륭한 일을 천직으로 만들면 된다.

아이들에게 이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책 <좋은 아빠 훌륭한 아빠> 중에서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