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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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
  • 입력 : 2021. 07.22(목) 10:13
  • 영암일보
박석구 시인


허기



송쿠를 아나요? 봄이 와 소나무에 물이 올라 솔가지를 낫으로 베어 껍질을 벗기면, 물기가 촉촉한 하얀 속살이 나오는데 그걸 살살 벗겨 먹었었지. 솔향과 함께 달짝지근한 맛에 손에 닿는 소나무 가지는 남아나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래도 허기는 여전했어.

겨우내 작은방에 쌓아두었던 고구마도 씨고구마만 남기고 동이 나고 땅 속에 묻어두었던 무도 이쯤이면 구덩이만 남았지. 어머니는 태어난 남동생이 막 젖을 떼기 시작했는데, 이제 서숙(조)과 미국이 원조한 굳어진 밀가루만 남았다고 한숨을 쉬곤 했어.

봄은 늘 허기와 함께 왔어.

[그림=김덕남]

어머니는 쑥이나 달래, 냉이, 곰밤부리 등을 밭 언저리에서 캐 와 국을 끓이거나 삶아 된장에 묻혀 밥상에 내왔지만, 우리들의 입맛엔 너무 쓰거나 아려 거의 먹지를 못했어. 그래서 우리들은 집안에 피어있는 동백꽃을 따 단물을 빨거나, 산을 쏘다니며 진달래꽃을 따 먹든지 칡을 캐어 찢어서 씹어댔지. 그래도 허기는 여전했어. 조연현이 그랬던가. ‘진달래꽃은 먹는 꽃, 먹을수록 배고픈 꽃’이라고.

연님이네는 먹을 것이 떨어져 고사리만 꺾어다 너무 먹어 일곱 명이나 된 온 가족이 설사를 하고 눈이 침침해져 며칠을 드러누운 사건도 있엇지.

논둑이나 냇가 둑에 가서 비비도 많이 뽑아 먹었어. 삐비 꽃이 피기 전, 삐비를 뽑아 껍질을 벗기면 하얀 속살이 나오는데 그걸 먹거나 껌처럼 씹기도 했어.

여름이 가까워지면 우리들의 입 주위는 항상 멍이 든 것처럼 진한 보라색으로 바뀌었지. 학교 옆 벚나무에 올라가 버찌를 다 먹던지, 내 건너 경윤이 집 옆에 있는 커다란 뽕나무에 올라가 오돌개(오디)를 하루 내 따 먹고, 시커먼 입술로 온 동네를 휘저으며 웃고 다녔어. 그래도 허기는 여전했어.
보리가 여물리 시작하면, 팔각형 성냥을 어머니 몰래 바지에 넣고 집을 나와 냇가에 불을 피우고 아직 여물지 않은 보리 모가지를 그을려 손바닥으로 비벼 먹곤 했어. 그래도 양이 차지 않으면 물속에 들어가 돌을 뒤져서 징거미 새우나 미꾸라지를 잡아 구워 먹곤 했지.

우리 동네에 아흔아홉 살 먹은 응골할머니네가 있었어. 그 집에 몇 달 되지 않은 황갈색 개가 한 마리 있었거든? 정말 예쁘고 토실토실한 강아지였어.

장마가 계속되는 어느 날, 그날은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날씨여서 무덥고 축축한 기운이 온 마을을 헤집고 다녀, 내가 경윤이와 앞 냇가에서 몸을 씻고 돌아오다 응골할머니 댁을 지나치는데, 그 집 식구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거야. 들여다보니 아궁이를 들쳐내고 있더군.

사연인즉슨, 어젯밤 하도 방안이 끕끕해서 응골할머니가 아궁이에 군불을 땠다는 것이었어. 알겠지? 한동안 불을 때지 않는 아궁이를 잠자리로 여긴 개가 그 속에 들어 가 자고 있었는데 그만 불에 타 죽은 거지. 얼마나 불쌍해. 하지만 응골할머니네 식구들은 아궁이를 뜯어내어 시커멓게 타버린 강아지를 아궁이 맨 끝 구석에서 찾아내더군.

먹기 위해서.

- 책 <추억의 사립문> 중에서




박석구 시인

영암 군서면 출신
2011년 에세이스트 수필 등단
2014년 에세이스트 베스트 10
2015년 문학 에스프리 시 등단
현)에세이스트작가회의 홍보위원장
2016년 광주 지송시회 8인 시 『연푸른 그늘에 앉아』 공저


영암일보 yailbo@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