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백제 부활의 꿈 이야기

기고
찬란한 백제 부활의 꿈 이야기
심심풀이 우리역사
  • 입력 : 2021. 08.05(목) 11:09
  • 영암일보
월봉 김오준 시인
금정면 출생 / 광주문인협회 이사

우리는 백제가 660년, 고구려가 668년에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의 신라에게 백제의 수도 부여와 고구려의 수도 평양이 함락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다고 배워왔다.

사실은 실제와 너무도 다르다. 668년에 멸망한 고구려도 수도 평양 이남 지방에 당나라가 안동도호부를 설치해 다스렸을 뿐 요동 지방의 고구려성 30개 중 요동성을 비롯한 11개 성은 점령되지 않았고 고구려 장군 대갈중상의 아들 대조영이 고구려 유민들을 규합해 30년간 투쟁 후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광활한 영토의 발해를 건국한 것이다.

백제도 백제 멸망 후 16년간 신라의 문무왕이 당나라 군대를 완전히 몰아냈던 676년까지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이 아닌, 당나라가 웅진도독부를 백제땅 공주에 설치해 당나라의 식민지 통치지배를 했다.

신라와 당나라의 마지막 전투인 기벌포 전투에서 고구려, 백제 유민들과 신라군의 연합작전으로 당나라 군대를 축출하기까지 백제인들은 온갖 착취와 약탈을 감내해야 했고 우리 영암지방은 웅진도독부 동명주 월나군의 관할에 속했다.

당나라 통치를 거부한 백제인들은 곳곳에서 강력하게 당나라 군대에 반항했고 오히려 초기에는 신라까지도 간접적 지원을 했다.

마침내 663년 왜에 건너간 의자왕의 아들 부여풍을 중심으로 도래인들이 왜왕을 움직여 병선 500여척에 27.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백제를 되찾기 위해 백제의 백강구에 상륙하다 지휘부의 판단 미숙으로 백강구전투에서 대패해 부활에 실패했고 이후에도 끈질기게 항거가 이어졌다.

660년 7월 의자왕과 백제인 10000여명은 포로로 당나라에 끌려갔고 의자왕은 석 달 만에 화병으로 병사했다.

의자왕의 급작스러운 죽음으로 당나라에 있던 백제 유민들은 분개했고 사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당나라는 회유책을 썼다.

‘구당서’의 기록에도 의자왕의 맏아들 부여웅을 ‘대방군왕’에 봉해 요동의 옛 고구려의 ‘건안고성’을 내주면서 흩어진 백제 유민 수만명을 모여 살게 했고, 백제 출신인 흑치상지, 사타충의, 난원경, 순장군 등을 요직에 기용했다고 나타난다. 심지어는 수도사령관격인 궁성수비대장도 백제 출신이 맡게 했다.

건안고성의 백제가 820년 발해에게 멸망하기까지 150년간 백제의 명맥은 이어졌고 백제의 유민들은 백제 부활을 꿈꾸었다.

이처럼 당나라에 끌려간 백제의 유민들이 그나마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백제의 한 여인이 치른 희생의 대가였으니 그 주인공이 바로 부여태비다.

부여태비(扶餘太妃, 690년 ~ 738년)는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증손녀이자 부여융의 손녀이며 부여덕장의 둘째 딸이다.

부여태비는 711년 이옹의 두 번째 부인으로 혼인하고 718년 괵왕비에 책봉됐다. 이옹은 당 고조 이연의 증손자로, 당의 수도 장안 외곽의 영토를 다스리는 괵왕(虢王)에 봉해진 제후왕이었다.

727년 남편 이옹이 죽고 맏아들 이거(李巨)가 왕위를 이어받은 4년 뒤 태비로 책봉됐다. 738년 49살로 죽어 이옹과 합장됐다.

중국 산시성에서 발견된 부여태비의 묘지명에는 부여태비가 “남국(南國) 사람의 얼굴처럼 아름다우니 봄날의 숲과 가을 단풍 같았다. 아주 좋은 집에서 살았으나 아침 햇살처럼 조용히 움직여 드러나지 않으니 세상에 드물게 어진 사람이며 덕이 있어 외롭지 않았고 속마음과 겉으로 드러난 모습이 같았다” 또한 “이옹과 혼인한 후 집안을 일으켰다”고 적혀 있다.

백제인들이 부활을 꿈꾸고 당나라 왕실에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 섬서성에서 발견된 ‘부여태자비’의 묘비가 발견되어 큰 화제 속에 새로운 백제사 연구의 단초가 된, 의자왕의 증손녀요. 부여덕장의 딸 ‘부여태비’의 헌신적 희생의 덕이었다.

부여태비는 백제의 마지막 공주로 뛰어난 미모에 덕을 겸비한 여인으로 백제를 구하기 위해 나이 든 당나라 왕족으로 본부인을 때려죽인 막장드라마 주인공 이옹에게 22살의 나이에 재취로 들어가 49세로 죽을 때까지 백제인들의 후견인 역활을 했던 것이다.

한번 물면 끝까지 놓지 않는 끈질긴 백제 여인들의 숭고한 희생정신!

잊힌 역사를 통해 다시 한번 옷깃 여민다.

▲ 중국 산시성 시안시에서 발견된 부여태비 묘지석 탁본 [사진=국립공주박물관]



김오준 시인

금정면 출생
다산학회 회원
영암학회 회윈
광주시인협회 회원
광주문인협회 이사
한국지역문학회 이사

영암일보 yailbo@daum.net